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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기피 15년, 재앙이 시작됐다

중앙일보 2012.09.10 01:32 종합 1면 지면보기
태양광 사업에 올인하고 있는 한화그룹은 지난달 독일 태양광업체 큐셀을 인수했다. 큐셀에 555억원을 지급하고 말레이시아 공장의 부채 3000억원까지 떠안았다. 한화는 태양광 연구개발(R&D)을 강화하기 위해 2010년부터 330억원을 들여 미국 태양광 벤처업체 세 곳에 지분 투자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구하기 힘든 태양광 인재를 아예 해외기업 인수를 통해 확보한 셈이다.


대기업 22곳 모두 “현장에 핵심 기술인력 부족”

국내서 인재 못 찾자 아예 해외기업 인수

 한국씨엠씨는 지난해 매출 80억원을 올린 직원 수 120명의 중소기업이다. 업종은 건설사업관리. 건설공사 전 공정계획을 짜 전체 공사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건설매니지먼트다. 국내에선 생소한 개념이지만 해외 건설현장에서는 이를 필수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무려 25명의 개발 인력이 사표를 냈다. “잠깐 쉬겠다”던 이들은 일제히 대기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3년간 80여 명이나 된다. 이공계 인재 부족 현실이 대기업·중소기업 간 인재 유출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는 것이다. 신현국(56) 사장은 “새로 사람을 뽑으려 해도 쓸 만한 이공계 인재가 없고, 뽑아서 교육시키면 대기업으로 다 옮겨가 허탈한 심정”이라고 하소연했다.



 우수 인재 이공계 기피 현상 15년의 ‘재앙’이 시작됐다. 기업의 우수한 R&D 인력은 1997년 외환위기 때 우선적으로 감원 열풍의 철퇴를 맞았다. 당시 등 떠밀려 회사 문을 나섰던 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내 자식은 절대 이공계 안 보낸다.” 이후 수능 고득점자들은 서울대 물리학과나 전자공학과 대신 의예과를 선택했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지금 삼성·애플 소송 같은 글로벌 특허전쟁이 본격화하는 시대에 기술 혁신의 주역인 이공계 인재가 부족한 사태를 맞고 있다.



 이는 중앙일보와 산업기술진흥협회(산기협)가 대기업 22개사 최고기술책임자(CTO)·연구원장 24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났다. ‘미래 산업의 핵심 기술인력을 얼마나 확보하고 있나’라는 질문에 모두가 ‘부족하다’고 답했다. ‘이공계 기피 현상이 산업기술계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열에 여덟이 ‘산업기술 인력의 질적 수준 저하’를 꼽았다. 83%는 ‘이공계 인재 부족으로 미래사업 준비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했다.



 산기협 김이환 부회장은 “일본이 20년간 경기침체를 겪으면서도 국가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은 부품소재 같은 분야에서 세계적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들이 있기 때문”이라며 “기술 혁신이 성장을 주도하는 요즘 이공계 인재 부족은 한국 경제에 경고등”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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