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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박사 임금, 의약계의 64%로 악화

중앙일보 2012.09.10 01:12 종합 8면 지면보기
한국씨엠씨의 신현국 사장이 서울 구로동 본사의 텅 빈 교육장에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이 교육장에서 길러낸 건설사업 관리 분야 인재들이 대거 대기업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신 사장은 요즘 사업에 집중할 수가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신인섭 기자]


인천남동공단에서 페인트를 생산하는 A사는 지난해 새로운 도료 개발을 위해 박사급 연구원을 영입해 연구팀을 꾸렸다. 그러나 연구를 주도하던 박사급 연구원이 10개월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대기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연구원에 연구 전체를 의지하고 있던 A사는 더 이상 연구를 진척시키지 못하고 팀을 해체했다. 10개월간 쏟아부은 3억여원의 연구비만 탕진했다.

이공계 기피 15년

인재 부족 근원은 낮은 처우 … 인문사회계에도 뒤져



  한국씨엠씨의 신현국(56) 사장은 이공계 인재를 건설사업관리 분야로 끌어들이기 위해 ‘무료 교육’이라는 묘안을 짜냈다. 전국 대학의 건축 등 관련 학과 재학생을 방학기간 모집해 건설사업관리 분야 교육을 공짜로 가르친 것. 교육과 동시에 회사의 비전을 보여주자 지원자가 늘기 시작했다. 구로 본사(1000평) 내 세 곳(300평)의 교육장이 수강생으로 가득 차기도 했다. 그러나 교육을 끝내고 대기업 건설현장에 파견시키면 얼마 안 가 대기업으로 자리를 옮기는 사태가 속출했다. 120명 직원 중 매년 25명씩 빠져나갔다. 신 사장은 “대기업들이 신사업 분야의 인재를 마구 흡수해가니 중소기업의 피해가 막심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처럼 중소기업에 특히 이공계 인재가 부족한 것은 이공계 기피 현상 15년의 업보와 무관치 않다. 이공대 진학 인재가 점점 줄어 대기업들이 개발 현장에서 쓸 만한 인재를 찾아 중소기업까지 휘젓고 다닌 결과다. 실제 삼성전자와 현대기아차를 제외하면 대기업이라도 경쟁력 있는 이공계 인재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기업연구소 한 곳당 평균 연구원 수가 점점 줄어드는 추세가 심각성을 말해준다.





 중앙일보가 산업기술진흥협회와 함께 24명의 최고기술책임자(CTO)와 기술연구원장에게 ‘이공계 인재를 충분하게 확보하지 못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25%가 ‘인력공급이 양적으로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67%가 ‘양적 공급은 충분하나 필요한 능력을 갖춘 인력이 부족해서’라고 답했다. 신입 연구개발 인력의 평균 능력수준에 대해서도 ‘약간 부족’이라는 의견이 67%로 부정적 의견이 많았다. ‘신입 연구개발 인력의 능력수준에 대한 만족도를 5년 전과 비교해 달라’는 질문에는 42%가 ‘약간 악화’, 38%가 ‘변화 없음’이라고 응답했다. 연구인력 부족을 어떻게 해소하는지에 대해선 ‘R&D 외부 위탁 확대’가 71%로 가장 많았다.



  이공계 인재 부족의 근원은 처우에서 시작됐다는 지적이 많다. 최근 한국고용정보원의 조사에 따르면 남성 이공계 박사급 인력의 임금이 2001년 의약전문가 대비 79.4%였으나 2009년 63.7%로 떨어졌다. 금융계를 포함한 인문사회 전문가에 비해서도 같은 기간 104.5%이던 임금이 94.3%로 떨어져 역전됐다. 더 큰 문제는 박사급 연구인력의 66.1%가 대학에 근무하고 있으며, 기업체 종사자는 18.3%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 홍성민 연구위원은 “기업을 중심으로 세계시장에서 통용될 수 있는 탈추격형, 창조형 R&D 역량이 절실한 시점에서 고급인력의 대학편중 현상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산업기술진흥협회 김이환 부회장은 “기업 내 이공계 인재 부족은 내부에서 인재가 서서히 고갈돼 어느 한순간에 기업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특히 삼성과 애플, 코오롱과 듀폰의 경우처럼 글로벌 시장에서의 특허전쟁이 본격화하고, 한국 기업에 대한 선진국의 견제가 거세지고 있는 만큼 위험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는 “인재를 확보할 수 없으면 길러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며 본받을 만한 시스템의 예로 핀란드의 TMAK(Tampere University of Applied Science) 공대를 들었다. 이 대학은 기업에서 현장에 바로 투입할 수 있을 정도로 실습 위주의 교육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기계공학부의 경우 30학점에 해당하는 810시간의 산업현장 실습을 거치고 졸업논문도 기업에서 쓰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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