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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건전한 상식의 배심원, 믿지 못할 이유 없다

중앙일보 2012.09.10 00:39 종합 33면 지면보기
박민제
탐사팀 기자
‘피고인이 눈물 한 번 흘리면 상황 끝이다’ ‘법률 전문성 없는 일반인이 판결에 관여하면 인민재판과 다를 게 뭐냐’.



 국민참여재판이 처음 시행됐던 2008년 초 법조계 주변에 나돌던 부정적 전망이다. 일반인 배심원들이 감정에 휩쓸려 정확한 법률적 판단을 내리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상당수 법조인은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한국판 배심원의 등장을 지켜봤다.



 처음엔 우려가 일부 현실로 나타나기도 했다. 대구에서 열린 첫 국민참여재판에서 피고인의 여동생이 아기를 안고 나와 눈물로 호소하는 전략을 써 집행유예를 얻어 냈다. 울산에서는 피고인이 죄를 자백한 사건에서 배심원들이 가엾은 피고인에게 법정형이 너무 가혹하다며 무죄 평결을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제도를 도입한 지 5년이 지나 재판에 참여해 본 배심원이 5000명이 넘는 지금은 어떤가. 일부 극단적 경우를 제외하고는 ‘건전한 상식을 지닌 배심원’의 판단에 대한 우려는 기우(杞憂)였다는 게 참여재판 경험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지난 4~5월 참여재판을 담당했던 80명의 법관 설문조사에서 92.3%가 배심원 평결에 동의했다고 응답했다. 14건의 참여재판을 경험한 서울중앙지법 설범식 부장판사는 “배심원 만장일치 사건에서 내 결론과 배심원 판단이 달랐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까지 했다.



 본지가 지난 5년간의 국민참여재판 판결문 546건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배심원 판단의 신뢰성은 매우 높았다. 분석 결과 배심원이 양형을 판단할 때 고려하는 주요 요소들이 법관과 대부분 일치했다. 유무죄 판단에 있어서도 배심원과 법관의 판단이 달랐던 경우는 9.3%에 불과했다.



 국민참여재판은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대법원이 참여재판의 지속 여부와 향후 적용될 형태를 최종 결정하기 위해 지난 7월 국민사법참여위원회를 발족한 상태다. 새누리당 등 정치권에서도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비리사건은 국민참여재판을 받는 걸 원칙으로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참여재판 경험이 없는 일부 법조인은 아직도 ‘배심원의 상식’에 대해 미덥지 못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번 취재 과정에서 만난 경력 10년이 넘는 한 판사는 “아마추어에게 사람 목숨을 맡기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사실 전문 법관에 의한 재판과 배심원이 참여한 재판 중 어느 쪽 결론이 더 옳은지를 딱 잘라 말하는 건 아직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최소한 배심원 판단을 못 믿겠다는 시각은 틀렸다고 본다. 지난 2개월간 546건의 참여재판 판결문을 분석하고 수십 명의 법조인·배심원을 만나 취재한 결과 내릴 수 있었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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