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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지도부 힘 빠져 극단적 민족주의로 가면 위험

중앙일보 2012.09.10 00:29



[김환영의 해외 석학 인터뷰] 로버트 코핸 미 프린스턴대 교수

물고기 눈으로 바라본 세상과 인간 눈으로 본 세상은 다르다. 색안경의 색깔에 따라 세상은 파랗게도 보이고 검게도 보인다.

학문 세계에서 눈이나 안경의 역할을 하는 것은 이론이다. 이론이라는 시각은 고유의 관점에서 세상을 이해하고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게 해준다. 이론 없이 세상을 바라볼 수 없다. 지금은 기존 이론의 설명력이 떨어지는 혼돈의 시대다. 아주 작은 선진국이라도 덩치 큰 후진국보다 국내총생산(GDP)이 더 많았던 시대가 있었다. 선진국 국민은 대부분 잘 살던 시대도 있었다. 지금은 아니다.



국제정치의 구조도 바뀌고 있다. 중국의 급부상과 미국·유럽·일본의 상대적인 쇠퇴 때문이다. 미국 중심의 패권·헤게모니(覇權·hegemony) 구조에서 세력균형(balance of power) 구조로 바뀔 조짐이 보이고 있다. 새로운 이론이 필요한 시대다. 이론을 모색하려면 우선 기존 이론이 오늘과 내일을 어떻게 조망하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미국 국제정치학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이론가인 미국 프린스턴대 우드로윌슨스쿨의 로버트 O 코핸(70) 교수를 인터뷰했다.



언론에서 상호의존이나 패권이라는 말을 애용하게 된 배경에는 코핸 교수의 저작인 『권력과 상호의존(Power and Interdependence)』(1977·하버드대 조셉 나이 교수와 공저)과 『헤게모니 이후: 세계정치경제에서 협력과 불화(After Hegemony: Cooperation and Discord in the World Political Economy)』(1984)가 있다. 코핸 교수는 국제정치 전문지 ‘포린 폴리시’의 1월 설문조사에서 ‘미국 외교정책의 가장 큰 문제·도전은?”이라는 질문에 “중국의 부상”, “미국 안보에 가장 중요한 지역은?”이라는 질문에 “동아시아”라고 대답한 바 있다. 그만큼 동아시아에 속하는 한국의 국제정치 문제에 적절한 대답을 해줄 가능성이 큰 학자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



국제정치는 구조 못지않게 과정 중요

-19세기는 세력균형의 세기, 20세기는 패권의 세기였다. 중국의 부상으로 21세기는 다시 세력균형의 시대로 회귀할 것인가. 국제체제가 불안정돼 전쟁 가능성이 높아질까.

“세력균형과 패권이라는 국제정치의 구조(structure)는 종종 공존한다. 세력균형이나 패권이 국제정치의 유일 원리로서 한 시대를 지배하는 것은 아니다. 19세기 영국은 중남미·동아시아·인도에서 패권국의 위치에 있었으나 유럽 대륙에서는 세력균형의 논리가 지배했다. 1949~89년의 경우에도 패권과 세력균형이 공존했다. 미국은 동구권·중국 등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미국은 소련의 영향권 바깥에 있는 국가들에만 패권을 행사했다.



미래에는 국제정치의 구조가 보다 세력균형적으로 바뀔 것이다. 미국은 계속 국제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행위자(actor)이지만 90년대와 같은 지배적 위치는 상실했다.

구조 외에 과정(process)도 중요하다. 21세기가 세력균형 구조로 회귀하더라도 21세기 국제정치의 과정은 19세기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첫째, 국가 간 상호의존, 상호연결성(interconnectedness)의 정도가 매우 높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경제적인 상호의존뿐만 아니라 정보의 상호의존이 매우 높다. 비정부기구(NGO)의 중요성도 19세기와 비교가 안 된다.



둘째, 우리는 국제제도화의 농도가 높은 시대에 살고 있다. 유엔·국제통화기금(IMF) 등 잘 알려진 국제기구뿐만 아니라 수많은 국제기구가 있다. 지난 40여 년에 걸친 연구에 따르면 이들 국제기구는 국가의 행위에 영향력을 준다. 예를 들면 수차례 경제 위기가 있었으나 무역전쟁은 없었다. 19세기 같았으면 보호무역주의와 무역전쟁이 빈발했을 것이다.



셋째, 19세기와 비교했을 때 국내정치에서 엘리트가 차지하는 비중이 줄었다. 중국 같은 독재국가(autocracy)에서도 정부는 여론을 중시해야 한다. 커뮤니케이션의 발달, 도시화, 시위 때문이다. 특히 정부는 민족주의 시위를 주시해야 한다. 오늘의 세계에서 민족주의는 매우 강력한 대중 현상이다. 예전과 달리 권력이 축소된 엘리트가 통제하기 힘든 현상이다. 대중의 민족주의적 압력의 결과로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커졌다. 19세기에도 그런 현상이 있었다. 미국이 1898년 스페인과 전쟁을 치른 것은 민족주의적인 여론의 압력 때문이었다. 민주화는 전쟁 발발 가능성을 줄이지만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서는 그 가능성이 더 커진다는 게 숙제다.

전 미국 국무장관 도널드 럼즈펠드는 ‘알려진 미지(未知·known unknowns)’라는 표현을 사용한 적이 있다. 이 개념을 원용하면 21세기 국제정치에 이미 말한 세 가지 과정이 영향을 미칠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알 수 없다. 19세기와 다를 것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한편 ‘알려지지 않은 미지(unknown unknowns)’도 있다. 예측이 전혀 불가능한 것들이다. 수십 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소셜미디어 혁명 같은 것들이다. 국제정치에서 2040년, 2050년에 벌어질 일 중에는 ‘알려지지 않은 미지’가 있을 것이다.”



제국주의 개념은 학문적 효용성 상실

-독재를 대신해 권위주의라는 말을 쓰는 것처럼 패권, 헤게모니는 제국주의에 대한 완곡어법(euphemism)인가.

“제국주의는 학문적 효용성을 상실한 개념이다. 모든 종류의 지배에 적용되는 개념이 됐기 때문이다. 패권은 제국주의에 대한 완곡어법 표현이 아니다. 국제정치학에서 패권은 구체적으로 정의되는 개념이다. 패권국은 일련의 국제정치경제적 규칙을 설정하는 국가다.”



-중국의 부상에 대해 국제정치학계의 현실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은 생각이 비슷한가.

“현실주의나 자유주의나 이익·권력의 개념을 공유하고 중시한다. 두 이론 모두 권력의 구조를 들여다 본다. 다만 자유주의는 국제정치에다 제도와 상호의존의 중요성을 추가했다. 두 학파 모두 ‘덜 중요했던 국가’가 부상하는 시기는 위험한 시기라고 본다. 국제 제도, 동맹관계, 국제적 행위에 대한 기대가 바뀌기 때문이다. 17세기 영국, 19세기 말 미국, 20세기 초 독일의 부상은 국가 간 충돌을 초래했다. 중국은 급속도로 부상하고 있는데 미국은 상대적으로 쇠퇴하고 있다. 중국의 대중은 매우 민족주의적이다. 그들은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제대로 된 대접을 받기를 바란다. 현실주의·자유주의가 공통적으로 동의하는 내용이다. 다만 자유주의가 결과에 대해 어느 정도 더 낙관적이다. 중국이 전쟁을 치르기에는 국제경제에 아주 깊숙이 연관돼 있다. 국제기구들도 안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미국이 유럽과 힘을 합쳐 ‘미·유럽합중국(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nd Europe)’을 결성하거나, 영국·호주·캐나다·뉴질랜드와 앵글로색슨합중국을 결성하면 향후 수십 년간 중국의 부상에 대해 우려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러다 보면 중국의 경제 발전이 완성되고 정치도 민주화돼 중국에 대한 우려를 할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

“그럴 가능성은 없다. 유럽은 공동화폐(유로화) 문제로 여력이 없다. 미국은 다문화주의적인 국가다. 미국은 유럽보다는 한국·일본·인도네시아 같은 국가들과 협력해 중국이 좀 더 온건한 국제정치 행위자가 되도록 유도하고 있다. 미국은 유럽이 아니라 아시아로 기울고 있다. 유럽은 보다 고립주의적인 지역이 되고 있다.”



-중국이 예상보다 빨리 민주화된다면 ‘민주 중국’이 미국에 더 큰 위협이 될 가능성은 없는가.

“중국의 민주화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보지만, 민주적인 중국은 모두에게 좋다. 위험한 것은 엘리트의 리더십이 약하고 대중은 민족주의적인 ‘독재국가 중국’이다. 지도부가 살아남기 위해 극단적인 민족주의를 표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환영 기자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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