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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쓴소리’가 헌재에 간다면

중앙선데이 2012.09.09 03:57 287호 31면 지면보기
다음 ①②③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①종합보험에 가입한 운전자는 교통사고로 피해자에게 중상을 입혀도 형사처벌되지 않는다.
②5급 공무원 공채에 응시할 수 있는 연령은 32세 이하로 한다.
③구속되거나 징역형을 살다가 무죄 판결을 받은 경우 내려진 형사보상 결정에 대해선 불복 신청을 할 수 없다.

답은 두 개입니다. 헌법재판소가 “헌법에 어긋난다”고 결정한 법 조항들이지요. 또 하나의 공통점은 일반인이 변호사 도움을 받지 않고 “이건 상식적으로 위헌 아니냐”며 위헌심판을 청구한 뒤 국선대리로 재판이 진행됐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 제기가 있을 때까지 판·검사, 변호사들은 왜 잠자코 있었던 걸까요. 판사 출신의 어느 변호사는 “법조문에 얽매여 뒤집어볼 생각을 못했던 것”이라며 “중상해 교통사고 같은 중요한 사안을 별 생각 없이 넘겨왔다는 건 법조인 모두가 반성할 일”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재판 받는 쪽뿐 아니라 재판 하는 쪽에 비(非)법조인이 들어갈 수는 없는 걸까요.

이제 곧 헌법재판관 9명 중 5명의 얼굴이 바뀝니다. 대선 바람에 가려 주목받지 못하고 있지만 국민 실생활을 좌우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내정·추천된 이들의 면면을 보면 한결같이 50대의 고위 법조인들입니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이진성 광주고법원장, 김창종 대구지법원장을 내정했고요.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각각 안창호 서울고검장, 김이수 사법연수원장을 추천했습니다. 여야 합의 몫으론 강일원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추천됐지요. 이번엔 변호사 출신이 없습니다.

헌재를 법조인으로 채우는 게 당연한 일일까요. 대법원과 별도로 헌법재판기관을 둔 나라 가운데 우리처럼 재판관 자격을 ‘법관의 자격을 가진 사람’(헌법 111조), 즉 법조인으로 못 박은 곳은 많지 않습니다. 프랑스나 체코·남아공 같은 나라는 특별한 제한을 두지 않고요. 포르투갈이나 벨기에·폴란드·인도네시아 등은 대학 때 법학을 전공했거나 교수·행정공무원을 거친 사람도 재판관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대법원에 해당하는 일본 최고재판소의 경우 행정관료·외교관·대학교수 출신이 각각 한 명씩 들어가 있습니다. 헌법을 다루는 재판기관은 10년 후, 20년 후를 내다보고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정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수십 년간 사건 당사자와 기록만 본 판검사 또는 의뢰인을 대리해온 변호사만으론 세상의 흐름을 읽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떤 사람이 재판관을 해야 하느냐고요? ‘미스터 쓴소리’로 불리는 조순형 전 의원 같은 정치인은 어떨까요. 그는 대학 때 법학을 전공하긴 했지만 사법시험 합격자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법조인 출신 의원들로 가득 찬 국회 법사위에서 그 누구보다 매섭게 법원과 검찰의 문제점을 비판했습니다. 2006년 전효숙 헌재 소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때 “전 후보자가 재판관직을 사퇴해 소장 자격이 없다”는 점을 짚어낸 것도 조 전 의원이었습니다. 그런 소신이라면 재판관들이 법조인의 고정관념에 빠져 있을 때 국민의 관점에서 쓴소리, 바른 소리를 해주지 않을까요. 또 사회 문제를 수십 년간 천착해온 학자나 외교 현안에 관한 안목을 갖춘 외교관 출신이 헌재에 간다면 법원·검찰청 바깥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을 겁니다.

정치인·학자·외교관은 법률 소양이 모자라 미덥지 않다고요? 변호사 자격증을 가졌거나 헌법학을 전공한 헌법연구관들이 재판 실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법조인, 그것도 고위 법관 출신들이 대법원과 헌재에 나눠 앉아 같은 사건을 놓고 핑퐁 게임하고 있는 지금이 더 이상한 것 아닌지요. 대학부터 사법연수원, 법원·검찰까지 20∼30년씩 알고 지내던 이들 사이에 참신한 토론이 가능할지도 의문입니다. 법조인 풀(pool)에서만 재판관을 뽑는 현재의 선발 시스템엔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게 엉뚱한 생각은 아닌 게 이강국 헌재 소장도 “재판관 9명 중 3명 정도는 법조가 아닌 다양한 직역에서 오도록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때로는 일반인의 상식이 전문가의 함정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에서 임금님의 행진을 멈추게 한 건 통념에 빠진 어른들이 아니라 맑은 눈동자와 정직한 가슴을 지닌 아이였네요. 자, 여러분께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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