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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 지옥 같던 터널 주행...'고양이귀 국수'로 보상받다

중앙선데이 2012.09.09 03:29 287호 24면 지면보기
터널 5개를 통과해 중국의 남북을 가르는 친링산맥을 뚫고 나가자 내리막길 양쪽으로 수려한 풍경이 펼쳐졌다. 시속 40㎞로 달리다 급제동해 한 장 찍었다. 산맥 남쪽에선 비가 오락가락하는 흐린 날씨였지만 북쪽에는 뇌쇄적인 햇빛이 한창이었다.
만약 이 사실을 알았으면 처음부터 시안(西安)에서 특정한 날짜에 만나자는 무모한 약속에 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행을 출발하기 전 지인은 한국에서 항공편으로 오고 나는 상하이부터 자전거를 달려 시안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4월 18일 시안으로 들어가는 312번 국도의 마지막 터널인 무후관(牧護關)이 막혔다. 산사태가 나서 도로를 덮친 것이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언제 통행이 재개될지 몰랐다. 우회로도 마땅치 않다. G40 고속공로는 자전거 진입이 허용되지 않고 다른 우회로로 가면 시안에 언제 닿을지 기약이 없다.

홍은택의 중국 만리장정 20 친링산맥~시안

몰라서 그런 약속을 했고 몰라서 결과적으로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312번 도로관리공사가 내가 자전거로 통과하기 하루 전에야 통행을 복구한 걸 터널 앞에 아직도 수북이 쌓인 돌 더미 흔적을 보고 알았다. 만약 내가 자전거로 지나갈 때 산사태가 나면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은 잘 안 하는 편이다. 실제 무후관에 앞서 통과한 마제링(麻街<5CAD>)에선 지난해 9월 돌 더미가 차량을 덮쳐 2명이 사망하고 1명이 중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더라도 말이다.

1 무후관 터널은 산사태로 20일 넘게 폐쇄됐다가 내가 통과하기 하루 전 극적으로 열렸다. 터널을 지나고 나서야 터널에선 자전거 주행이 금지됐다는 걸 알았다.2 지유링 터널을 넘고 나니 상가(喪家)에서 농민들이 음식을 먹고 있다가 내게 권했다. ‘누들로드’ 312번 국도에서 먹은 최고의 국수인 고양이귀 국수였다
산시(陝西)성 상난(商南)에서 시안까지 가는 마지막 229㎞ 구간은 후포산(琥珀山)·우관(武關)·지유링(資<5CEA><5CAD>)·마제링·무후관 등 터널 5개를 통과해 친링(秦嶺)산맥을 뚫고 나간다. 한국에서도 집 근처에 일원터널이 있고 서울 도심으로 자전거 통근을 할 때 금호·옥수터널, 홍천 다녀올 때는 6번 국도의 여러 터널 등을 겪어봐서 터널 주행에 관한 한 역전의 용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친링의 터널들은 왕릉에 생매장되기 위해 지하갱도로 들어가고 있는 순장자의 공포를 연상시켰다. 언젠가 뒷문이 닫히면서 어둠 속에서 눈은 달려 있어야 할 의미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처음 만난 터널인 후포산 터널에 선글라스를 쓴 채로 들어갔다가 대낮에 암실에 들어간 것 같은 먹장의 어둠에 갇혀버렸다. 터널 내 전등이 전부 꺼져 있었다. 선글라스를 벗었지만 어둠은 밝아지지 않았다. 멀리서 무시무시한 굉음이 들려오고 노면은 울퉁불퉁해서 정주행하기가 어려웠다. 자전거 전등을 켰지만 촛불보다 더 가냘팠다. 공기는 차갑고 축축하다. 오히려 맞은편에서 차가 와줬으면 좋겠다. 앞길을 밝혀주고 뒤에서 오는 차에 나의 존재를 부각시켜줄 수 있을 테니까. 다시 터널 전등에 불이 들어온다. 전등의 간격은 넓고 셋 중 둘은 꺼져 있어서 여전히 나를 드러내지 못한다.

3 친링산맥 남쪽 사면엔 앵두가 지천이었다. 주민들이 다디단 앵두를 바구니에 담아서 길에서 파는데 1위안(180원)만 내도 한 움큼 집어준다.
터널 끝에서 작은 흰 반점이 점점 말발굽처럼 커지더니 진출구가 어렴풋이 보인다. 햇빛이 왜 광명인지 알 것 같다. 휴우, 빠져 나왔다. 세 번째 통과한 지유링 터널이 가장 무서웠다. 길기도 했지만 완전무결한 어둠의 고문을 당했다. 공포를 필요 이상 느끼는 이유는 중국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없을 거라는 짐작 때문이다. 한 개인의 죽음에 그렇게 연연해하지 않을 것 같은, 14억 명의 나라다.

지유링 터널을 빠져나오자 흰 종이꽃으로 장식한 천막에 사람들이 모여있다. 장례 치르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마주친 것이다. 그들의 마음을 다칠까 봐 자전거를 길가에 대고 기색을 살폈다. 사람들이 그렇게 슬퍼하는 눈치가 아니어서 ‘악상(惡喪)’은 아니라고 생각해 다가갔다. 그들은 기꺼이 맞아주면서 식사를 권했다. 점심도 거르고 길을 서두르던 차여서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어 있었다. 염치없이 큰 양은냄비가 놓인 탁자 앞에 자리를 잡았다. 이게 상갓집의 육개장 같은 음식인가 보다. 양고기 국물에 감자·두부·배추를 넣고 걸쭉하게 끓여서 노란빛이 돈다. 오랫동안 사용한 듯 냄비 밑동은 찌그러져 있다.

느끼할 것 같았는데 도리어 구수하다. 중국식 고추장을 풀어서 먹으니 느끼함도 없다. 특히 탕 안에 든, 국수 같지도 않고 마카로니 같지도 않은 작은 덩어리가 쫀득쫀득했다. 자세히 보니 고깔모자처럼 생겼다. 이걸 뭐라고 부르지? 주민들은 합창하듯 ‘마오얼둬(猫耳朶)’라고 얘기해줬다. 못 알아듣자 누군가 귀를 잡고 누군가는 동물 우는 소리를 냈는데 고양이를 흉내 내는 것 같다. 순간 머리 속에 환한 불이 들어왔다. 이게 책에서 보고 꼭 한번 먹고 싶었던 고양이귀 국수였던 것이다. 마오(猫)는 고양이, 얼둬(耳朶)는 귀를 뜻한다.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으로 밀가루 반죽에서 뜯어낸 조각을 손바닥에 놓고 엄지손가락으로 누르고 돌리면 이런 모양이 나온다. 산시성에서만 맛볼 수 있는 그 특별한 국수를 친링산맥의 외진 산골에서 먹는다. ‘누들로드’ 312번 국도에서는 단연 최고의 국수다.

아마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았으면 양은냄비를 두 팔로 안아 코를 박고 흡입해 버렸을 것이다. 두 그릇 연거푸 퍼먹고 나자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장송곡이 귀에 들어오면서 망자에 대한 예의를 먼저 차렸어야 한다고 뉘우쳤다. 천막 안으로 들어가 영정을 찾았는데 망자의 사진이 책상 위에 놓인 액자사진만큼 작다. 연로하신 할아버지 얼굴이다. 1934년에 태어나셨다. 한국에서처럼 분향은 하되 재배는 올리지 않고 가볍게 묵념했다. 멀고 먼 이국의 문상객이 자신의 영전에 찾아온 걸 이 할아버지는 굽어보고 있을까? 굴건을 쓴 상주들이 흐뭇한 눈으로 쳐다본다. 한 그릇 더 먹고 가라고 붙잡는 걸 사양하고 길을 재촉했다.

마지막 터널인 무후관을 통과하고 나서 사진을 찍기 위해 뒤돌아봤을 때 자전거 진입금지 표지판이 보였다. 이제야 보기에 천만다행이다. 산사태 여부를 떠나 원래 갈 수 없었던 길이었다. 하지만 이 터널들이 없었더라면 자전거로 친링을 넘을 수 없었을 것이다. 상난현이나 단펑(丹風)현의 지세는 모두 산에 둘러싸인 손바닥 모양이다. 상난현은 80%, 단펑현은 90%가 산지다. 한(漢)고조가 되는 유방이 이 산길을 넘어서 시안으로 쳐들어갈 때 병사들이 겪어야 했을 고초가 상상이 안 된다. 그 때는 터널도 없었을 텐데.
그들에게 비할 바 아니겠지만 나도 난징을 떠난 이후 12일 동안 하루도 쉬지 않은 강행군이었다. 막판에 오르막길과 역풍의 악몽적 조합으로 자전거 바퀴는 원형에서 십이각형, 육각형, 이제는 사각형으로 변해버린 듯하다. 페달 한 발을 밟는 데 온몸을 실어야 한다. 이미 앞 기어는 1단으로 내린 지 오래다. 앞 기어 1단에 뒤 기어 1단까지 내려놓고 갈지자로 최대한 노면의 기울기를 낮춰서 오른다.

길가에서 강아지랑 놀고 있는 청년을 지나쳤다. 이 청년은 자전거에 상자를 매달고 강아지를 싣고 가다가 쉴 때면 강아지를 꺼내서 같이 놀았다. 처음엔 약간 모자라는 사람처럼 보였다. 내가 쉴 때는 그가 지나가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몇 번 마주친 이후 말을 붙여봤다. 얼마나 더 가야 이 지긋지긋한 오르막이 끝나느냐고. 지금까지 중국 사람들의 길 안내는 틀리거나 부정확했다. 하지만 그의 안내는 놀라울 정도로 정확했다. “2㎞만 더 올라가면 터널이 나오고 그 이후로는 시안까지 내리막이다. 저녁 8시 전에는 시안에 닿을 것이다.”

그의 말대로 마지막 터널인 무후관이 나오고 무후관부터는 이렇게 내려가도 되나 싶게 내려간다. 길 표지판에는 35㎞의 내리막길이라고 해서 다시 오르막이 나올까 봐 조마조마했지만 그의 말대로였다. 시안까지 60여㎞가 기본적으로 내리막이었다. 도중에 몇 번 더 그와 마주쳐서 말을 나눴다. 그는 중국 전역을 강아지 한 마리와 여행하는 중이었다. 그냥 세상을 보는 게 좋아서가 이유다. 꾸밈없는 여행자의 풍격이 느껴진다. 여관에서도 안 자고 캠핑 장비도 없다. 다리 밑이나 버려진 집 안에서 자고 먹고 여행한다. 자전거 짐칸에는 천으로 둘둘 만 침낭이 묶여 있고 앞 핸들에는 커다란 원형의 플라스틱 통을 매달았다. 나처럼 24단 기어가 달린 산악자전거도, 균형을 맞추기 위해 자전거 양쪽으로 짐을 싣는 패니어 가방도 없지만 주유천하하는 데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란티엔(藍田)현의 109번 성도(省道)변 다리 밑에서 누군가 소리쳐서 쳐다봤더니 그가 한 손에 맥주병을 들고 나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나는 이미 가속하고 있는 상태여서 손만 흔들어주고 내처 갔는데 그게 그와의 마지막 스침이었다. 그는 그때까지 내가 만난 유일한 장거리 자전거 여행자였다. 지금 이 시간에도 그는 중국의 어딘가를 돌고 있을 것이다.

무후관을 통과하고 나서는 전혀 다른 세계다. 친링산맥의 북쪽 사면은 암벽으로 이뤄진, 내리막에서 보기 아까운 절경이다. 시속 40㎞로 내리막길을 질주하면서 바라보는 경치는 물에 젖은 스케치북처럼 몽롱하다. 그래도 멈추고 싶지는 않다. 어떻게 확보한 높이인데 야금야금 내려오고 싶지 않았다. 장쾌하게 내달려 해발 2000여m의 고지에서 해발 500m의 중국 통일제국 최초의 수도 시안에 뚝 떨어졌다. 지인들은 약속장소인 호텔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상하이를 떠난 지 18일 만에 1700㎞를 달려 약속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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