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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설계의 5적 돌파하는 법

중앙선데이 2012.09.09 03:26 287호 23면 지면보기
0·10·40·50·100-.
퇴직 등 현업 은퇴 이후를 고민하는 이들에겐 마(魔)의 숫자들이다. 0%로 수렴하는 금리, 10%로 치솟는 체감 물가, 40%를 넘는 금융소득종합과세 최고 세율, 50%로 떨어지는 집값, 수명 100세를 뜻한다. ‘은퇴 설계 5적(五賊)’이라 불러 손색이 없겠다. 은퇴자산 관리는 이제 이미 바닥 없는 금리에 나날이 오르는 물가, 대책 없이 떨어지는 집값, 장수의 재앙에 시달리고 있다. 여기에 세제 개편에 따라 세금 부담까지 늘어날 판이다.

김진영의 돈 버는 은퇴 학교


최근 세제 개편안을 보면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이 넓어지고 장기채권·물가채와 장기 저축성 보험 등 은퇴 관련 금융상품의 세제 혜택은 대폭 축소된다. 연 4000만원 이상인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은 5만 명 정도였다. 과세 기준이 3000만원으로 낮아지면 대상은 8만 명으로 늘어난다. 그러나 비과세·분리과세 등 범위는 줄어드니 과표에 잡히는 금융소득은 더 늘어나 과세 대상은 8만 명보다 많아질 공산이 크다.

명목수익률 대신 실질수익률 따져야
금융자산의 평균 수익률을 연 3%만 잡더라도 금융자산이 10억원만 넘으면 금융소득이 3000만원을 웃돈다. 프라이빗 뱅킹(PB) 용어로 이른바 ‘HNW(High Net Worth)’들, 즉 고액 순자산가로 분류되는 부류다. 최근 KB경영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HNW는 14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전에는 부유층 중에서도 돈이 많은 일부만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이었으나 이제는 부유층 거의 대부분 들어간다고 보면 된다. 세제 개편 이전에 절세상품 막차를 타려는 유휴자금이 대거 물가채나 즉시연금에 몰리는 것을 보면 이런 분위기를 알 수 있다. 오히려 생명보험사들이 몰려드는 돈의 운용 부담 때문에 즉시연금 판매를 자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나마 부자들은 굴릴 돈이 많아서 걱정이지만 퇴직금 정도 들고 빠듯하게 계산기 두드리는 보통 은퇴계층 입장에선 저금리·고물가·세금·부동산 침체·장수라는 악재가 정말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은퇴 5적 시대를 헤쳐나가는 방편은 무얼까. 우선 내 자산의 운용수익률이 실질적으로 얼마인지 정확히 따져봐야 한다. 실질수익률이란 투자수익률에서 물가와 세금을 뺀 것이다. 그런데 심리적인 물가와 부과되는 세금은 사람마다 다르니, 같은 곳에 투자해도 실질수익률 역시 서로 다르다. 얼마 전 은퇴 설계 설명회에서 “물가 상승까지 고려하면 즉시연금 상품의 수익률이 낮다”는 점을 지적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 말이 예기치 못한 결과를 낳았다. 우리 회사의 프라이빗 뱅커(PB)가 강의를 들은 이 고객과 상담하는 과정에서 즉시연금을 추천했다. 그 고객은 “당신네 회사 소장이 별로라고 한 상품을 왜 추천하느냐”고 그 PB에게 따졌다고 한다. 그런데 알아보니 사정이 있었다. 그 고객의 전체 자산을 보니 그해에 금융소득이 많아져 다른 상품에 투자할 경우 금융소득이 4000만원을 넘어서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이 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현재 소득세 최고세율은 38%이고 이것이 종합소득에 적용돼 세금 폭탄을 맞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PB는 수익률은 좀 낮더라도 비과세상품인 즉시연금을 권유한 것이다. 이처럼 실질 투자수익률은 그 상품 자체의 운용수익률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내야 하는 세금, 심지어 자신의 체감 물가까지 감안해 판단해야 한다.세금 문제를 점검하고 체감 물가 수준을 파악했다면 실질수익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위험을 지더라도 투자수익률로 이들을 커버할 수 있는 상품을 골라야 한다. 본인에 맞게 자산을 재배분해 투자수익률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금융상품 조합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절세 방법은 비과세·분리과세와 수익의 분산을 이용한다. 그런데 비과세와 절세상품의 선택 폭은 크게 줄었다. 금융자산을 가족별로 나누는 것도 차명계좌 단속 규정이 강화돼 어렵다고 봐야 한다.

중간 위험의 ‘강남 스타일’ 투자 인기
따라서 투자 수익을 받는 시기를 분산하거나 뒤로 미루는 방법을 써야 한다. 그래서 요즈음 세제 혜택은 없으나 이자 지급 시기를 분산하고 다소 높은 확정금리를 받을 수 있는 상품에 관심이 쏠린다. 이자를 나눠 받음으로써 금융소득을 분산시켜 과세 대상 기준을 넘지 않는 수준으로 유지하고 수익 관점에서도 나쁘지 않은 상품들이다. 게다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원금도 어느 정도 방어하는 상품을 선호한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요즘 관심을 끄는 상품은 중(中)위험·중(中)수익의 월지급식 ELS(주식연계증권)다. 은행에서는 월지급식 ELD(주식연계예금)로, 자산운용사들은 월지급식 ELF(주식연계펀드)로 판다. 수익 분산으로 절세효과까지 노릴 수 있다. 요즘처럼 주가가 오랜 박스권을 유지할 때 특히 인기를 끄는 상품으로 금융 투자의 ‘강남 스타일’ 격이다. 기대수익률이 높은 대신 위험성도 큰 일반 ELS 상품과 차별화된다.

이 상품이 은퇴자산 관리 환경과 관련해 왜 각광을 받는지 월지급식 주가지수 ELS를 예로 들어보자. 현재 코스피가 2000이라면 이 지수가 현재의 60%인 1200을 밑돌지만 않으면 매월 일정액의 이자가 나오다가 만기에 원금을 받는 상품이다. 매달 이자가 나오기 때문에 만기에 한꺼번에 투자 수익을 받아 종합소득세 커트라인을 넘기는 일을 피할 수 있다. 이자금액도 예금금리의 두 배 안팎으로 높기 때문에 저금리 갈증도 어느 정도 해결된다. 이 상품에는 원금을 중간에 돌려주는 조기 상환 기준이 있는데 3개월이나 6개월마다 그 기준이 단계적으로 낮아져 3년 만기에는 75% 정도인 1500선이 된다.

이에 따라 주가지수가 한때 60% 밑으로 떨어졌더라도 만기 전 어느 시점에 이 조기 상환 기준을 넘어서면 다시 원금이 지급된다. 그러나 만일 만기까지도 조기 상환 기준을 넘지 못한다면 원금 손실이 나게 된다. 단지 월지급 상품의 특성상 만기까지 월이자를 받았기 때문에 그것만도 원금의 25% 정도를 만회하는 셈이다. 원금 손실이 나더라도 그 규모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주의할 것은 원금 보장이 꼭 되는 것이 아니고 발행 증권사의 파산 위험도 있으니 어디 상품인지 확인해야 한다. 또한 만기 전에 조기 상환하는 경우도 많아 그때마다 비슷한 ELS를 다시 구매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주가지수보다 개별 종목에 대한 ELS는 훨씬 신중을 기해야 하니 일반인들한테는 주가지수형이 무난할 것이다. 은퇴 설계 5적 시대를 돌파하려면 위험 회피만이 능사는 아니다. 적절한 위험을 감수하면서 필요한 수익률을 만드는 ‘전략적 리스크 관리’가 부득이한 시기다.


김진영(51)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학·석사를 마치고 20년 가까이 옛 쌍용증권 이코노미스트, 삼성금융 연구소 금융전략팀장으로 일했다. 2008년 삼성증권으로 옮겨 전략기획담당 등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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