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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M&A 성패, 맞춤형 PMI에 달렸다

중앙선데이 2012.09.09 03:13 287호 22면 지면보기
하나금융은 지난 2월 외환은행을 인수하고도 당분간 독립경영을 약속했다. 당장 합병하는 데 따른 시너지 효과보다 통합 갈등의 불협화음과 그 부작용을 더 크게 봐서다. 신한금융이 2003년 조흥은행을 인수하고도 합병을 미룬 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다르다. 다급하면 이럴 여유조차 없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은행권 통합 빅뱅 때는 한일·상업이 합쳐 한빛은행(현 우리은행)이, 하나·보람이 합쳐 하나은행이 출범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올리버 와이만의 ‘PMI 성공 지침’ 보고서

기업 인수합병(M&A)의 성패가 이처럼 계약서 서명 이후 이른바 ‘합병 후 통합(PMI· Post Merger Integration)’에 상당 부분 달렸다는 건 이제 업계 상식으로 통한다. M&A 교본을 펴면 ▶계약 전 준비 철저 ▶인수 초기 리더십 발휘 ▶ 피인수기업 구성원 감싸기와 소통 등 PMI에 관한 금과옥조가 나열돼 있다. 하지만 공부도 많이 하고 경영컨설팅 업체 자문도 듬뿍 받은 기업들이 여전히 PMI에 서툴러 일을 그르치는 일이 적지 않다. 왜 그럴까. 전문가들은 금과옥조에 너무 매달린 우를 범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M&A의 수많은 경우의 수를 너무 단순화하면 오히려 성공확률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다.

신한금융은 ‘맞춤형’ 전략 성공사례
불황기에는 호황기보다 더 큰 기업 M&A의 장이 선다. 유럽경제가 수렁에 빠지면서 내실은 괜찮은데 유동성 위기를 겪는 알짜 기업들이 유럽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돈 쌓아둔 기업 입장에서 M&A는 경제 불확실성 시대가 가져다 주는 선물인 셈이다. 하지만 최근 조사 분석 결과를 보면 M&A 성공 사례가 의외로 많지 않다. 미국에 본부를 둔 다국적 경영컨설팅 업체 올리버 와이만이 미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와 함께 지난해 하반기 조사 분석한 결과다. 조사 대상은 미 시스코·GE, 한국의 SK·두산 등 글로벌 100여 개사의 2000년 이후 M&A 사례다. 50여 개사는 설문 조사까지 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성공적인 M&A의 화룡점정은 PMI다. 적지 않은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여전히 ‘우량 기업을 싼값에 샀다’는 만족감에 안주하는 우를 범하고 있었다. 특히 한국 기업의 경우 문화적 배경이 사뭇 다른 외국 기업을 인수할 때 그 PMI의 난이도가 높았다. M&A 성공률은 얼마나 될까. 이 보고서에 따르면 M&A의 60%가 실패로 결론지어졌다. 또 실패 사례 중에서 절반 가까운 40%가 PMI 하자로 판명났다. PMI에 따른 M&A 실패율은 4건 중 1건이나 되는 셈이다. 올리버 와이만 서울사무소의 신우석 이사는 “기업가치를 비교해서 M&A 이전보다 기업가치가 하락한 경우를 실패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러면 PMI를 성공적으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 사례별로 ‘맞춤형(customized)’ 전략이 필요하다. 요즘 기업 경영진은 ‘PMI 성공 법칙’에 관심이 많다. ‘PMI 성공 황금률(golden rule)’이 들어 있다고 자부하는 서적이나 보고서에 신뢰를 보낸다. ‘인수합병되는 조직을 신속하게 장악해야 한다’거나 ‘조직 융화를 위해 인수합병된 조직의 경영진을 일정 기간 존속시켜야 한다’ 등이다. 올리버 와이만의 글로벌 M&A 책임자인 토마스 카우츠쉬 시니어 파트너는 “M&A의 목적과 경험, 업계의 특성, 피인수 회사의 규모와 문화 등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제 어디서나 적용되는(one-size-fits-all)’ M&A 룰은 없으며, 그런 접근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2000년대 중반 잇따른 M&A를 통해 국내 최대급의 종합금융그룹으로 도약한 신한금융지주. 2003년 조흥은행 인수 후 신한은행과 곧바로 합치지 않았다. 일단 ‘하나의 은행, 새로운 은행(One bank, New bank)’이라는 기치 아래 2년여의 공동 경영 기간을 두고 두 조직의 화학적 통합을 추구했다. 신한금융이 2007년 LG카드를 인수할 때는 그 반대의 신속 합병 전략을 구사했다. LG카드의 경영 부실화로 고객 만족도와 브랜드 가치가 급속도로 하락하던 시기라 회사를 단 기간에 정상화시키는 것이 시급했다. 카우츠쉬는 “M&A마다 각기 고유한 특성을 지녔다. 이를 반영한 맞춤형 PMI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한국 기업은 인수가에만 치중하는 경향
또 다른 PMI 성공비결은 전략 수립의 타이밍이다. PMI는 언제부터 준비해야 할까. ‘합병 후 통합’이라는 용어 때문일까, 여전히 적잖은 기업이 ‘M&A 결정(deal closing)’ 후 숨 돌리고 PMI에 몰두한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글로벌 M&A 귀재들은 피인수 대상의 ‘사전 실사(due diligence)’ 단계부터 PMI 방안을 면밀히 검토한다. M&A 시도 단계에서 두 기업의 조직문화가 워낙 다르다면 기업가치가 높더라도 인수를 포기한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은 여전히 인수가 등 M&A 협상 조건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STX그룹은 노르웨이의 세계적 크루즈선박 건조회사 아커야즈의 지분 40% 정도를 2007년 인수해 최대 주주가 됐다. 하지만 노조가 강하게 반발했고, 기술 유출을 우려한 이탈리아·프랑스 등 유럽 크루즈 강국의 훼방 공작이 잇따랐다. 유럽연합(EU)의 반독점 심사까지 가세해 몇 달 동안 경영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다. 올리버 와이만 서울사무소의 정호석 공동대표는 “아커야즈 실사 단계부터 가격 조건이나 기술력 못지않게 기업문화와 노조 성향 등을 꼼꼼히 살피고, PMI 방안을 마련했어야 했다”고 진단했다.
다른 문제이지만 아커야즈 인수 후 미국발 금융위기와 유럽발 재정위기로 조선업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STX는 결국 유동성 부족으로 아커야즈에서 돈 되는 특수선 제작부문인 STX OSV(이탈리아 조선소)를 최근 이탈리아 국영 조선사인 핀칸티에리에 팔았다.

문화적 통합은 성공적 PMI의 마무리다. 물론 합쳐지는 두 조직의 구조와 경영 프로세스 통합이 PMI의 핵심 과제임은 분명하다. M&A의 주요 목표 중 하나가 ‘시너지 창출을 위한 효과적 조직 구조 및 프로세스의 정립’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교하게 디자인된 조직도 프로세스만으로 시너지가 창출되는 것은 아니다. 눈에 보이는 ‘하드웨어’ 통합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소프트웨어’ 융합,즉 문화적 통합(cultural integration)이다. 이는 생면부지의 두 회사를 단일 회사로 똘똘 뭉치게 하는 ‘마법의 풀’이다.
보고서의 설문 조사 결과에서 ‘PMI 과정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80%(복수응답)가 ‘조직 안정’, 60%가 ‘문화적 통합’을 꼽았다. 신우석 이사는 “적지 않은 CEO들이 문화적 통합을 본인이 진두지휘할 과제가 아니라 ‘내부 인력부서(HR)에서 하면 되는 일’ 정도로 안이하게 생각했다”고 지적했다.

‘두산 웨이’로 기업문화 통합
연이은 M&A 성공으로 세계적 중공업 그룹으로 도약한 두산. 그룹 경영 가치를 집약한 ‘두산 웨이(Doosan Way)’를 완성한 뒤 이를 계열사에 전파하고 있다. 국내외 기업 인수로 단기간에 글로벌 회사로 크다 보니 2만여 명의 외국인을 포함한 전체 직원들이 함께 공유하고 지향할 기업문화와 가치가 절실해서다. ‘두산파워시스템(DPS)’이 성공 사례다. 두산은 2006년 영국 산업용 보일러 회사 밥콕, 2009년 체코 터빈업체 스코다 파워, 지난해 독일 발전설비 업체 렌체스를 인수한 후 DPS로 통합했다. 이 과정에서 국경과 문화 장벽을 넘기 위한 두산의 노력이 더해졌다. 피인수 기업에 최고재무책임자(CFO)를 파견하는 기존 M&A 관행을 깨고, 최고전략책임자(CSO)를 보냈다.

‘두산은 점령군이 아니라 새로운 성장을 위해 지원하는 파트너’라는 인식을 심기 위해서였다. 또 ‘친밀화(familiarization) 프로그램’을 운영해 반 년간 밥콕 등 피인수 기업의 부장 이상 임직원이 경남 창원의 두산 공장에서 1주일간 연수를 받게 했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밥콕은 인수 첫 해인 2007년 8400여억원의 매출이 2010년 약 1조5000억원으로 성장했다.

제3의 융합문화 신속히 만들어야
올해 초 SK의 일원이 된 메모리 업체 SK하이닉스는 올 2분기에 230여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지난해 3분기부터 이어진 3분기 연속 영업손실을 흑자로 전환시켰다. SK하이닉스의 최대 주주는 같은 정보기술(IT) 계열인 SK텔레콤이다. 신우석 이사는 “최태원 SK 회장이 하이닉스의 대표이사 회장을 맡는 등 PMI를 진두지휘한 덕이 크다”고 평가했다. 최 회장은 올 들어 하이닉스의 국내 공장과 중국 우시공장을 두루 찾았다. 최 회장은 하이닉스 직원들과 맥주를 곁들인 식사를 하며 “하이닉스는 SK의 중추적 회사”라고 강조했다.

신한·조흥 간 합병 당시 ‘One bank, New bank’ 구호도 ‘너와 내가 아닌 새로운 우리’의 의미를 담았다. 신한의 일방적 흡수가 아니라 너와 내가 가진 장점과 특성을 융합해 더 나은 문화와 실적을 만들자는 뜻이다. 신우석 이사는 “실사 단계에서부터 두 조직 문화의 핵심 인자(cultural DNA)를 규명하고, 이들의 단순 합집합·교집합을 뛰어넘는 ‘제 3의 조직 문화 인자’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CEO는 이 과정에서 기존의 DNA를 잘 녹여내 새로운 DNA를 뽑아내는 ‘용광로’(melting pot) 역할을 해야 한다.
PMI에 대한 오해는 M&A 실패를 부른다. ▶천편일률적 황금률에 의존하거나 ▶ M&A가 결정된 뒤에야 PMI를 준비하거나 ▶하드웨어 통합에만 집착하는 M&A는 실패로 가는 길이다. 정호석 공동대표는 “근래 한국 기업들이 공격적인 해외 M&A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언어·문화의 장벽을 넘는 효과적 PMI 전략을 미리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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