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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위원소 분석으로 배추 원산지 척척 가려내

중앙선데이 2012.09.09 02:29 287호 10면 지면보기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은 유전자 분석 등 다양한 기술과 장비를 이용해 농축산물의 유해 물질 포함 여부, 원산지 판별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연구원이 채소류의 중금속 성분 포함 여부를 분석하고 있다.
충북 청원군 오창읍에 있는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오창센터. 최첨단·고가 분석장비를 보유한 이곳에 얼마 전 난데없이 200여 포기 분량의 배추 잎이 실려 들어왔다. 중국 핑두(平度)·옌타이(煙臺) 등 대표적인 배추 산지 5곳과 한국 5개 지역에서 채집한 배추와 해당 지역의 토양 샘플이었다. 오염을 막기 위해 증류수와 초음파세척기로 여러 차례 씻은 뒤 건조된 배추 잎과 토양 샘플들은 기초과학지원연구원의 고성능 열이온화질량분석기(TIMS)를 이용해 분석됐다. 연구 결과는 선명했다. 배추 속에 아주 조금 들어있는 스트론튬 등 동위원소의 양을 분석한 결과 국가·지역별 차이를 뚜렷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 겉보기에 똑같은 배추들의 ‘고향’을 정밀하게 추적할 방법이 완성된 순간이다.

농업도 이젠 첨단산업 ② 식품 안전 감시하는 첨단기술 현장

연구를 이끈 사람은 이광식 박사. 최근 대전시에 있는 기초과학지원연구원 본원 선임부장으로 옮긴 이 박사는 “땅에서 자라는 모든 작물은 토양 속의 원소를 흡수하는데, 특정 원소의 구성 비율이 지역마다 모두 다르다”며 “정밀한 분석을 통해 배추가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서 재배됐는지를 분석하는 기술을 확립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연구는 원산지 판별에 널리 쓰이는 유전자 분석이나 적외선 광원을 이용한 비파괴분석과는 접근 방법이 다르다. 이 박사는 “중국 내에서 재배돼 한국으로 반입되는 배추는 한국산 품종이 많아 생김새나 유전자 분석만으로는 원산지 추적에 한계가 있다”며 “우리 기술은 품종과 무관하게 어떤 땅에서 자랐는지를 구분하기 때문에 신뢰도가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이 기술은 배추 외에 다른 작물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이 박사 팀도 이미 인삼과 여러 한약재의 원산지 판별에 관한 연구를 했고, 김치·고추·목재·천일염·장뇌삼의 원산지 판별에 관한 기술 개발도 진행 중이거나 예정하고 있다. 3년간 15억여원이 투입된 이 연구 결과 7건의 특허가 출원됐고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과학기술논문색인지수(SCI)급 논문 11건이 나왔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원산지 단속 실무에 큰 영향을 줬다는 점이다. 이 박사는 “원산지를 속여 대규모로 유통시키는 업자들에게는 어디서 길렀는지 알아내는 기술을 정부가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압박이 된다”며 “발각될 위험성을 크게 높여 위법 행위의 시도 자체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농림수산식품 산업 분야에서도 기초·첨단기술 연구개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정부뿐 아니라 대학·기업 등 민간 분야에서도 관련 분야의 연구개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농림수산 분야의 연구개발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곡물이나 가축의 개량을 생각하면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전부터 연구개발이 이뤄진 분야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생산기술 향상이나 기계화에 집중되던 이 분야 연구개발의 초점이 유전공학 등 과학 발전에 발맞춰 식품 안전·고부가가치 신품종 개발로 첨단화하고 있다.
충남대의 임용표 농업생명과학대 학장은 “많은 이들이 농림수산업을 성장이 정체된 사양산업으로 인식하는데 이는 큰 착각”이라며 “농업 분야에서도 정보기술(IT)이나 제조업 못지않은 최첨단 기술이 투입된 연구개발 경쟁이 치열하고 성과도 속속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지난해 농촌진흥청 연구팀과 함께 배추 유전체를 세계 최초로 분석한 국내 식물생명공학 분야 권위자다. 한국유전체학회장이며 한국식물생명공학회 차기 회장이기도 한 임 교수는 최근 완료된 배추 분자 표지(마커) 개발 사업을 예로 들어 농업의 첨단화를 설명했다. 분자 마커는 생명체의 유전 정보 중에서 특정한 형질이 어디서 발현되는지를 분석한 일종의 유전자 정밀 지도다. 각종 병충해를 견디고, 품질과 유용성분을 함유한 신품종을 개발하는 작업의 출발점이다.
임 교수는 “지역 특성에 맞게 잘 자라면서도 맛과 생산성이 높은 꿈의 배추를 개발할 열쇠를 쥔 것”이라며 “다양한 신품종을 개발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뿐 아니라 관련 특허를 활용해 종자 수출 등 새로운 수익원으로 연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충북 증평군에 있는 ㈜에프앤피는 올해 초 고추의 분자마커 개발 및 신품종 개발 연구사업을 마쳤다. 이 회사의 김신제 대표는 “다양한 기후와 풍토에 맞는 신품종 개발의 길을 텄다”며 “식물 종자 분야 선진국인 네덜란드에 기술을 이전해 세계적인 수준을 과시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우에 대한 유전자 분석도 성과가 크다. 충북대 축산학과 김내수·김관석 교수 연구팀은 한우 신규 유전자의 대량 해독 기술을 연구해 왔다. 김관석 교수는 “한우는 다양한 기후로 인한 스트레스에 강하고 맛도 좋지만 몸집이 서양 품종보다 작은 단점이 있다”며 “우리 연구를 통해 어떤 유전자가 이런 특성을 좌우하는지를 규명해 낸 것”이라고 말했다. 한우의 좋은 형질은 유지하면서도 고기의 양과 육질은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는 의미다. 충북대 팀의 연구 결과는 현재 번식우 농가 등에서 일종의 임상시험을 거치고 있다. 이 기술을 이용해 우수한 유전 형질을 지닌 암소와 송아지를 골라내 보급하는 것만으로도 장기적으로 2000억원이 넘는 부가가치가 기대된다. 유전적 연구는 경제성 외에도 의미가 깊다. 연구팀에 따르면 한우, 특히 제주 흑우가 일본 와규(和牛)를 비롯한 동북아 지역 10여 개 소 품종의 유전적 조상일 가능성이 높다. 김 교수는 “유전적 연구와 가축 화석 등 고생물학 분야의 연구 성과를 접목해 한우의 역사적 우수성을 입증할 것”이라고 말했다.

농업 분야 첨단 연구개발은 민간 분야에서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바이오센서 기술을 바탕으로 자가혈당측정기 등을 생산하는 ㈜아이센스는 농·축산품의 잔류항생제를 현장에서 검출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코젠바이오텍도 유전자 추출 및 분석을 통해 외국산과 국내산 쌀을 빠르고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 상품화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여러 대학과 기관에서 병충해나 인수공통전염병 대책 등 농림수산업 분야의 기초 연구개발이 활발하다.

농식품 분야의 연구개발에 문제가 없지는 않다. 가장 큰 문제는 민간 분야의 투자가 너무 적다는 점이다. 투자를 해서 실제 결과물이 나오고 매출과 이익으로 연결되기까지 워낙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게 큰 이유다. 농림수산 분야 기업이 영세하고, 농어민들이 보수적이어서 새로운 기술의 보급이 쉽지 않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정부는 공공성 강한 기초·원천 기술과 수익성 있는 상업적 기술을 구분함으로써 효율성을 높일 계획이다. 이 분야 정부 연구개발을 총괄하는 농림수산식품부 이상길 제1차관은 “농림수산식품 분야는 아직 미개척 연구 과제가 많기 때문에 그만큼 연구개발의 효용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며 “국민 안전을 위한 기반 기술은 물론 시장성이 큰 연구 과제를 지속적으로 개발해 투자를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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