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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시각화의 마법... 눈으로 보면 생각·행동 바뀌죠

중앙선데이 2012.09.09 02:27 287호 8면 지면보기
지식 분야 최고의 문화상품으로 꼽히는 TED 콘퍼런스는 해마다 40여 명의 펠로를 선발한다. 대부분 젊은 혁신가 그룹이다. 민세희씨가 기념품으로 받은 TED펠로 명패를 들고 웃고 있다. 민씨는 1년간의 펠로를 거쳐 현재 시니어 펠로(2년간)로 활동 중이다. 최정동 기자
강연에 주어진 시간은 4분. 두근대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청심환을 미리 삼켰다. 그래도 무대는 넓었다. 며칠 밤을 새우고 거울을 보며 영어 원고를 달달 외웠지만 여전히 떨렸다. 미국 유학생으로 13년을 살았는데도 영어 강연은 전혀 다른 차원이었다. 게다가 청중이 어디 보통 수준인가. 객석엔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가 앉아 있다. 하긴 식사 장소에선 인터넷 서점 아마존의 최대 주주가 동석하는 바람에 깜짝 놀라지 않았던가. 강연 제목은 ‘데이터와 놀아서 좋은 일 몇 가지(Good things about playing with it)’. “디지털 시대에 쏟아지는 데이터 간의 숨겨진 관계를 찾아내 이를 구조화·시각화함으로써 사람들의 행동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내용이다. ‘데이터 시각화(data visualization)’에 관한 것이었다. 암기한 내용을 4분간 정신 없이 토해냈다. 박수가 쏟아졌다.

파워 차세대 ④ 미디어 아티스트 민세희

데이터 시각화 전문가 겸 미디어 아티스트 민세희(37)씨. 지난해 TED 콘퍼런스에서 한국인 최초 펠로 자격으로 강연했다. 해마다 미국 캘리포니아 롱비치에서 열리는 TED 콘퍼런스는 전 세계 유명인사들이 강연을 통해 창조적 아이디어를 나누는 지식축제다. TED는 기술(Technology),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 디자인(Design)의 머리글자. 여기선 해마다 40여 명의 TED 펠로(fellow)가 배출된다. TED가 키우는 젊은 혁신가 그룹이다. 그들의 강연 동영상은 TED의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전 세계에 뿌려진다. 펠로 1년을 마치면 이 중 10여 명은 2년간의 자격을 갖는 시니어(senior) 펠로가 된다. 펠로 호칭을 얻게 되면 해당 분야에서 국제적 인지도가 상승한다. 펠로들끼리 글로벌 네트워크가 생기는 건 덤이다.

BMW 코리아 미래재단에서 <파워 차세대> 기획을 후원합니다
민씨는 올해 시니어 펠로가 됐다. 지난 6월엔 영국 에든버러에서 열린 ‘TED 글로벌(유럽판 TED)’의 무대에도 섰다. ‘데이터를 시각적·물리적으로 보여주는 법(Making data visual and physical)’이라는 주제로 3분간 열변을 토했다. TED 콘퍼런스는 거대 담론보다 소소하더라도 일상을 바꾸는 아이디어의 혁신성을 높이 평가한다는 게 특징이다. 지난해 강연 후 그는 미국 최대 통신업체 AT&T, 다국적기업 GE 등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을 정도로 호응을 얻었다. 민씨는 “TED 펠로가 되면서 인생이 180도 바뀌었다”고 말한다. 강연 섭외가 쏟아졌고 책 출간을 제안받았다. “무엇보다 발언에 실리는 신뢰감의 무게가 달라졌고 업무와 관련해 만날 수 있는 사람의 직급이 확 높아졌다”고 한다.
지난달 28일과 이달 4일 두 차례에 걸쳐 민씨를 만났다. 그는 한국에서 고교 졸업 후 미 텍사스 크리스천대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시각 디자인)을,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 석사 과정에서 컴퓨터 그래픽과 쌍방향 미디어를 전공했다. MIT 센서블시티랩에서 도시정보디자인 연구원으로 1년간 일하면서 데이터 시각화라는 분야를 본격적으로 접했다. 귀국 후엔 네이버 등에서 일하다 미디어 아트 분야의 동료들과 2008년 랜덤웍스라는 회사를 차렸다.

데이터 시각화는 말 그대로 데이터를 눈에 보이는 무언가로 해석·가공하는 일이다. 전 세계적으로 이 분야의 회사·연구소가 몇 안 되는 새 분야다. “데이터는 조합과 해석에 따라 다양한 결과가 나와요. 어떤 종류의 데이터를 모을 건지, 어떤 데이터끼리 묶을 건지, 누구에게 보여줄 건지, 시각화 작업 후엔 어떤 결과를 유도할 것인지 등에 따라서요. 단순히 정보를 얻거나 이해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인식과 행동의 변화까지 이끌어내려는 작업이죠. 데이터를 그림이나 영상·인쇄물·설치작업·애플리케이션 등 다양한 매체로 보여주는 거에요. 그러면 숫자보다 훨씬 이해가 쉽고 빠르죠.”

민세희씨가 지난해 TED 컨퍼런스에서 발표했던 ‘데이터 포메이션’. 물과 전기가스 사용량에 따라 건물 면적이 변화하는 개념을 시각화했다. 왼쪽 그림은 90㎡(27평)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가스 요금을 월 1만8790원에서 1만5032원으로, 전기요금을 3만6000원에서 1만8000원으로 줄였을 경우 면적이 102㎡(30평)로 늘어나는 걸 보여준다. 에너지를 덜 쓴 만큼 사는 공간이 넓어지기 때문에 에너지 절약을 이끌어내는 효과를기대할 수 있다. 오른쪽 그림은 여름과 겨울 등 계절별 에너지 사용 추이에 따라 건물 모양이 달라지는 개념을 표현했다.
데이터 시각화는 우뇌와 좌뇌를 동시에 작동시켜야 하는 작업이다. 기술·예술·디자인이 융합된 ‘통섭’의 영역이다. “데이터 시각화는 질문을 만들어 대답을 스스로 구하도록 유도해가죠. 상황을 눈앞에 보여주고 ‘그렇다면 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사회 문제에도 관심이 많아야 하고 미술·디자인·수학·물리 등도 골고루 알아야 하는 까다로운 분야입니다.”

예컨대 지난해 TED 콘퍼런스에서 발표한 ‘데이터 포메이션(data-formation)’을 보자. 수도·가스·전기 사용량에 따라 살고 있는 아파트 면적이 변화하는 미래의 모습을 그래픽으로 만들었다. 2009년 인천 그린시티 공모전 입상작이다. “90㎡(27평) 아파트에 알맞은 에너지 적정사용량이 있다고 가정해 보죠. 이보다 가스를 20% 덜 쓰면 면적이 20% 늘어나고, 물을 30% 더 쓰면 공간이 30% 줄어들고, 50% 전기를 아끼면 공간이 50% 늘어나는 식이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에너지 절감 폭에 따라 집 넓이가 변한다면 에너지를 쓸 때 훨씬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될 거예요. 에너지 낭비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져야 한다면 문제의식이 좀 더 생길 테니까요. 꼭 면적 변화가 아니더라도 건물 외벽에 LED 조명을 설치하는 방법도 있어요. 에너지 사용량에 따라 색깔이 표시돼 에너지를 절약한 집은 외관이 아름다워지는 효과를 보게 하는 거죠.”

데이터 시각화가 갖는 ‘마법’은 데이터가 갖는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게 만드는 데서 나온다. 흩어져 있는 구슬(데이터)을 꿰어(시각화) 보배(상황 개선 행동)로 만드는 일인 셈이다. 2009년에 했던 ‘SK케미칼 판교랩’ 제안 작업이 그런 예다. “경기도 판교에 있는 SK케미칼 건물엔 물 정화시스템이 있어요. 이걸 이용해 물 절약과 기부문화를 연결해보면 어떨까 싶었죠. 먼저 정화량과 관련된 데이터를 영상화했어요. 이걸 건물 내부를 관통하는 큰 기둥에 실시간으로 비췄죠. 정화를 거쳐 절약된 물은 물 부족 지역으로 기부되는 시스템도 만들었고요. 절약되는 양이 숫자가 아니라 감각으로 다가오면 기부 행위가 더 활발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이 큰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줄 때도 데이터 시각화는 유용하다. 6월 TED 글로벌에서 소개했던 ‘데이터 커런시(data currency)’를 예로 들어보자. 지난해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 전시됐던 설치작품이다. 왼쪽 모니터에 표시되는 데이터 양이 에너지로 전환돼 오른편 뜨개질 기계가 목도리를 짜는 개념이다. “예전의 미싱 돌리는 공장 풍경과 현재의 컴퓨터 작업실 풍경이 비슷하다는 느낌에서 착안했어요. 우리가 가령 페이스북을 하루에 2시간, 인터넷 검색을 1시간씩 각각 한다면 이게 얼마만큼의 가치를 생산했는지 느끼기가 어렵잖아요. 데이터 양도 250기가, 1테라바이트라고 하면 잘 와닿지 않지만, 목도리를 이만큼 짤 수 있는 에너지라고 보여주면 쉽게 알겠죠. 우리가 지금까지 써온 데이터 양이 어마어마하고 앞으로도 기하급수적으로 늘 텐데, 그걸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해 보자는 생각에서 한 작업이죠.”

데이터 시각화는 도시 브랜딩 같은 공공영역에서도 효과적으로 쓰일 수 있다. “가령 서울시 예산 총액이 1000만원인데 이게 매일 어떻게 쓰이는지를 시각자료로 시민들에게 보여주자는 거죠. 예산 쓰임새를 보면 그 도시가 지향하는 바가 보이잖아요. 예컨대 1000만원 중 900만원을 나무 심는 데 썼다고 하면 환경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도시라는 걸 알게 됩니다. 도시의 정체성을 데이터 시각화를 통해 만들 수 있는 거예요. 만약 이게 서울시민이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고 하면 시각화 작업을 보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고요.”

흥미롭게도 그가 데이터 시각화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된 건 아주 사소한 계기에서였다. “몇 년 전 아버지가 친구와 크루즈 여행을 다녀왔어요. 처음엔 둘이 함께 여행을 하니 기분이 좋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불만이 쌓였어요. ‘저 친구보다 내가 돈을 더 내는 것 같다’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제가 두 분이 각각 쓴 돈을 집계해서 차트로 보여드렸어요. 일종의 데이터 시각화 작업을 한 거예요. 아버지가 1000원인가 더 썼더군요. 눈으로 결과를 보더니 아버지도 금방 수긍하고 오해를 풀었어요. 눈으로 보면 생각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지겠구나, 그때 실감했죠.”

그는 데이터 시각화를 도시·환경·생활 등에 폭넓게 적용해 볼 생각이다. 그러려면 공공 데이터에 대한 접근이 좀 더 쉬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떤 현상을 볼 때 한 사람이 가진 데이터만으로 볼 수 있는 시야는 아무래도 좁겠죠. 데이터가 다양하고 다층적이라면 좀 더 파악이 쉬울 거예요. 사회에 변화가 일어날 여지도 더 커질 거고요. 우리나라에선 아직 공공 데이터에 자유롭게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 부분에 대한 인식이 빨리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공공데이터가 지금보다 더 많이 공개된다면 사회적으로 뜻깊은 일을 훨씬 많이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데이터가 사회 전체를 위해 유익하게 활용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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