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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세에 하버드대 박사 ...2005년 ‘포린폴리시’ 선정 영향력 가장 큰 국제정치학자

중앙선데이 2012.09.09 01:56 287호 4면 지면보기
코핸 교수는 1941년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사회민주주의자였다.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은 어머니다. 어머니는 평생 조직을 결성하고 조직에 가담했다. 이번 인터뷰에서 코핸 교수가 밝힌 바에 따르면 일본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던 외할아버지는 한국인 애국자들을 위해 재판에서 증인으로 나선 적이 있다.

로버트 O 코핸 교수는

코핸 교수가 ‘정치적 갈등’을 처음으로 경험한 것은 다섯 살 때다. 그의 집안은 민주당인데 유치원 여자 친구는 공화당 소속 시의원의 딸이었던 것이다.
코핸 교수는 미국 서부와 인연이 깊다. 부모가 처음 만난 곳은 미국 서부 샌프란시스코 인근에 있는 UC버클리 도서관에서다. 둘 다 UC버클리 석사과정에 다닐 때다. 아버지는 첫 데이트에서 청혼했다. 코핸 교수가 정치학계의 스타로 떠오른 것도 부교수·정교수로 일한 스탠퍼드대 재직(1973~81) 시절이다.

아버지는 제3인터내셔널에 대한 박사논문을 준비했으나 마무리는 짓지 못했다. 아버지는 시카고대학의 학풍을 도입한 샤이머 대학에서 가르쳤는데 그 영향으로 코핸 교수도 샤이머 대학에 입학했다.

코핸 교수는 1961년 20세에 샤이머 대학을 졸업하고, 25세에 하버드대 박사가 됐다. 어머니는 아들이 정치를 하기를 바랐고 코핸 교수는 한때 언론인이 될 생각을 했다. 그러나 자신이 현실세계에서 활동하기에는 지나치게 이론적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학계에서 승승장구했다. 국제정치학 학술지 ‘국제기구(IO)’ 편집인(1974~80), 국제학협회(ISA) 협회장(1988~89), 미국정치학회(APSA) 학회장(1999~2000)을 지냈다. 2005년 ‘포린폴리시’가 1084명의 미국 국제정치학자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코핸 교수는 ‘지난 20년간 국제정치학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국제정치학자’ 중 1위로 선정됐다. 4위가 ‘문명충돌론’의 새뮤얼 헌팅턴 교수, 6위는 ‘소프트 파워론’의 조셉 나이 교수였다.

코핸 교수의 부인은 듀크대 총장, 웰즐리대 총장을 지냈으며 현재 프린스턴대 교수인 정치학자 내널 코핸(72)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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