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일과 강력한 관계 유지하고 中과는 서로 믿을 제도적 장치를”

중앙선데이 2012.09.09 01:39 287호 1면 지면보기
상대편 흠집내기와 경제민주화를 둘러싼 논란이 대선 정국을 달구고 있다. 외교안보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래선지 눈길을 잡아끄는 국제정치 방략을 담은 공약이 없다. 강대국들로 둘러싸인 한반도 현실을 감안하면 아쉽다. 국제관계가 잘 풀려야 고용 창출이나 복지 확충도 가능한데 이 분야에 취약한 게 한국의 현실이다. 12월 대선 뒤 출범할 차기 정부는 악화된 한·일 관계를 복원하고, 미·중 공동 패권시대의 도래 가능성에 대처해야 한다. 10대 무역대국인 한국의 국제적 위상에 걸맞게 장기적인 대전략(grand strategy)을 고민해야 할 때다.

‘가장 영향력 있는’ 국제정치학자 코핸이 말하는 21세기 한국 책략

전략은 반드시 성과를 보장하지 않는다. 19세기에 ‘친(親)중국·결(結)일본·연(聯)미국’을 우리에게 권한 청나라 외교관 황준헌(黃遵憲·1848~1905년)의 조선책략(사진)도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전략 없이 강대국 지위를 획득하고 유지하는 강대국은 존재하지 않는다. ‘21세기 한국책략’을 설계하는 데 참조할 만한 말을 듣기 위해 프린스턴대 로버트 O 코핸(Robert O. Keohane) 교수를 5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그는 미국 최고의 국제정치학자로 평가 받는 석학 중 한 명이다.

국제정치학의 양대 산맥인 현실주의와 자유주의 가운데 코핸 교수는 자유주의, 그중에서도 국제기구의 역할을 중시하는 ‘자유주의적 제도주의(liberal institutionalism)’ 학파의 수장이다. 하지만 인터뷰에서 코핸 교수는 현실주의·자유주의뿐만 아니라 민주평화이론(democratic peace theory:민주주의와 국제 평화 간의 상관관계를 연구) 입장에서도 한국의 진로를 제안했다.

우선 세력균형이라는 틀 속에서 전쟁 가능성을 논하는 현실주의 입장에서 출발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정학과 세력균형 관점에서 보면 미·일과 강력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한국의 독립을 위협할 가능성이 높은 쪽은 중국이다. 중국이 위험한 민족주의 세력이 될 경우 한국을 도울 수 있는 우방들과 대립관계를 형성하지 말아야 한다. (감정이) 나쁜 역사적 내력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강력한 관계를 발전시키는 게 현명하다. 하지만 현실주의 관점으로 봐도 중국과 최대한 좋은 관계를 당연히 유지해야 한다.”
자유주의 입장에선 국가보다는 국제기구, 전쟁보다는 평화·무역을 상대적으로 중시한다. 이에 입각한 코핸 교수의 처방은 이랬다. “자유주의로 보면, 중국과 상호의존성을 높이며 강력한 우호 관계를 맺어야 한다. 지금까지 한·미, 한·일 관계는 중국을 위협하는 것으로 보였다. 이를 탈피해 한국은 ‘믿을 만한 중국의 지지세력’이라는 인센티브를 중국에 제공해야 한다. 미래에 상황이 나빠질 가능성에 대비해 중국과 서로 믿을 만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국제기구에서 한국은 중국과 긴밀한 유대를 맺고 이를 바탕으로 사안에 따라 협력하거나 서로 다른 입장을 표방할 수 있어야 한다.”

코핸 교수의 말을 요약하면, 현실주의로 볼 땐 미·일이, 자유주의로 볼 땐 중국이 한국에 더 우선적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코핸 교수는 민주평화이론에 입각한 권고를 내놨다. “한국의 민주주의를 보강하고 수호해야 한다. 한국의 자연스러운 동맹국들은 미·일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는 유럽인데, ‘비(非)민주 한국’보다는 ‘민주 한국’이 동맹국들과의 관계에서 한국의 입지를 강화한다. 이들 동맹국과의 긍정적인 경제관계와 글로벌 경제 개방성을 유지하는 데도 한국의 민주주의가 도움이 된다.” 한국이 민주주의를 계속 발전시켜야 국제사회에서 대접받는다는 얘기다.

코핸 교수는 ‘강대국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할 일을 이렇게 정리했다. “한국은 이미 충분히 중요하고도 강한 나라다. 이제 국제기구에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무임승차(free-riding) 할 것이 아니라 국제기구에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자본을 투자해야 한다. 또한 가난한 나라들, 인도와 동남아시아 국가들처럼 한국을 모델로 간주하는 나라들과의 관계도 강화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게 한국에 이익이다.”
관계기사 4p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