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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연극의 빈 자리 채우다

중앙선데이 2012.09.08 23:38 287호 10면 지면보기
국내 유일의 스트린드베리 전공자, 이정애 교수“그가 없었다면 소극장도, 실험극도 없었다”
혁명적인 삶을 살았던 예술가

스트린드베리 서거 100주년 페스티벌 13일 개막

-스트린드베리가 누구길래 100주기 페스티벌을 하나.
“소극장 실험극을 창시한 그는 안톤 체호프, 헨리크 입센과 함께 ‘현대극의 아버지’로 불린다. 자연주의 희곡 ‘미스 줄리’의 20쪽이 넘는 긴 서문에서 새로운 현대연극의 기법, 무대와 연기 방법론을 상세히 제시했다. 우리가 소극장을 운영하고 실험극을 공연하는 입장에서 그 뿌리는 반드시 소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 스트린드베리 동상 2 스트린드베리의 ‘Jealousy Night’(1893),캔버스에 유화, 41*32㎝3, 6 스웨덴의 실험극단 인티마 테아트르가 내한공연을 가질 ‘스트린드베리의 세계’4 연극 ‘코코’ 5 인티마 테아트르가 내한공연을 가질 ‘미스 줄리’7 연극 ‘유령 소나타’ 8 연극 ‘황녀’ 9 연극 ‘아버지’
-유독 우리나라에만 소개되지 않은 건가.
“일본만 해도 서구문물을 빨리 받아들였으니 연구소도 있고 학문적인 연구가 활성화되어 있다. 우리는 연구도 없이 뒤늦게 남들이 한 것을 따라 하면서 난해하다고 기피해 왔다. 그의 일생을 모르면 작품을 이해할 수 없으니 당연하다. 그는 작가이자 과학자였고 당대의 모든 사조를 연구했던 사람이다. 그러니 스웨덴어를 모르면 다방면의 자료를 구할 수 없고 사상을 이해할 수 없다. 영어나 독일어 번역을 중역한 것으로 작품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번에 제대로 된 번역을 통해 무대에 오른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 사상적 배경이 우선 전달돼야 하고, 그것만 바로 심어주면 이후에 누가 연출하든 제대로 다져서 갈 수 있다.”

-그가 한국 연극과 무슨 관계가 있나.
“이 사람 없이는 우리나라에 소극장이, 자유극단 같은 실험극 자체가 없었다. 아버지 없는 자식이 없는데, 그걸 모르니 안타깝다.”

-국내 최초·유일한 전공자인데, 전공하게 된 계기는.
“세심하고 서정적인 언어의 감각성에 매료돼 그의 아픔을 공감하게 됐다. 그의 문학작품을 읽으며, 또 공연 작품을 보면서 실존하는 모든 이웃의 다양한 인간 유형을 통해 사회를 인식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었다. 그렇게 인간사를 관찰할 수 있었기에 가슴으로 세상을 느낄 수 있었다.”

-희곡 전집 60권을 아시아 최초로 출판할 예정이다.
“동서대의 지원으로 11월부터 현재 번역한 25편의 작품을 시작으로 사조와 장르별로 출판한다. 그의 작품은 무대에서도 좋지만 읽으면서 세상을 느낄 수 있는 희곡으로서도 의미가 있다. 긴 독백으로 무대에서 지루한 작품도 있지만 바로 그곳에 그의 메시지와 철학이 담겨 있다. 아울러 인터넷에서 한국어·스웨덴어·영어·프랑스어·독일어·일어가 가능한 스트린드베리 연구소를 운영할 계획이다.”

-현대연극의 아버지라는 점이나 여성해방 측면에서 입센과 라이벌이었다.
“스트린드베리는 여성해방 측면에서 입센과 관점이 달랐다. 입센의 노라는 자신을 위해 이성과 의지로 집을 뛰쳐나가지만, 스트린드베리는 이성이나 의지보다 사랑이 더 강한 것이기에 자식과 남편을 버릴 수 없다고 주장했다. 여성이 자유롭길 원하지만 뛰쳐나가는 것이 여성해방이 아니라, 사랑이 모든 것을 초월한다는 것이다. 일찍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트라우마가 강했던 그는 작품세계가 사랑에 대한 갈증으로 점철돼 있다. 그에 대한 이해는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림·사진·철학·화학…다방면에 두각
스트린드베리는 ‘스웨덴의 깃발’ ‘민중의 대변자’로 불리며 혁명적인 삶을 살았던 예술가다. 왕이나 평민이나 평등하게 잘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민중의 목소리로 정부와 공직자들을 공격하며 정의를 상실한 사회에 대한 저항정신을 드러냈다. 스웨덴 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단편소설 ‘결혼1’은 지배층의 문란한 도덕성을 폭로하는 소설로 읽혀 왕과 귀족이 소송까지 제기했지만, 당시 하루 대여료가 책값의 2배로 뛸 정도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결국 출판의 자유를 인정받은 이 재판은 스웨덴 역사상 매우 중요한 사건이 됐다.

-난해한 작품세계가 어떻게 대중의 사랑을 받았을까.
“우리가 그의 생애와 그가 답습한 모든 사조, 철학을 이해하지 못해 난해한 것이지 그쪽에선 교과서에도 실린다. 이번에 준비차 스웨덴 출장을 갔을 때도 고등학생들이 보러 왔다. 연출자가 아이들에게 그러더라. 작품으로서만이 아니라 너희 인생에서 스트린드베리를 피해갈 수 없다고. 인간의 모든 유형과 내면의 심리를 파헤쳐 세상을 보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그의 작품이다.”

-페스티벌 부제가 ‘인간이 불쌍하다’인데,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인가.
“그는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받았다. ‘인간이 불쌍하다’는 슬로건은 쇼펜하우어의 인류에 대한 동정심에 근거한 것이다. 이윤택 감독이 연출할 작품 ‘꿈’에서도 신의 딸이 인간세상을 보고 인간들의 아우성을 전하자 인드라 신은 ‘불평은 인간들의 모국어란다’라고 답한다. 그가 인간이 불쌍하다고 한 것도 서로 헐뜯고 해하는 불쌍한 인간들에 대한 연민이라고 볼 수 있다.”

-동양적이고 불교적인 색채도 있다는데.
“총 120편의 문학작품 중 7편에서 불교의 업보, 윤회설 등 불교적 사상을 찾을 수 있다. 그의 불교적 색채는 인도 불교를 유럽에 전한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와 통한다. 죽어야만 고통이 없어진다. 즉 삶이 지옥이고, 열반에 들기 위해서는 모든 죄를 사하고 가야 하기 때문에 여기서 고통을 받는다는 얘기다.”

-화가로서는 어떤 족적을 남겼나.
“뭉크와 함께 표현주의를 창시했다. 붓 없이 나이프로만 표현하는 테크닉을 그가 시작했다. 화가로서 172점을 남겼고 오르세 미술관에도 작품이 있다. 재작년에는 42억원에 팔렸다고 한다. 굉장히 낭만적인 표현주의자다.”

-이번에 가장 기대되는 작품은.
“‘유령 소나타’와 몽환극인 ‘꿈’이다. 특히 ‘유령 소나타’는 다양한 인간유형을 통해 위선의 가면을 벗기는 해학적인 작품이다. 결국 우리 삶 자체가 위선이요 연극이라는 결론에 이르며, 그런 인간을 불쌍히 여기는 인류애가 깔려 있다.”

-지금 우리가 그의 작품을 보면서 무엇을 얻어야 할까.
“그는 다양한 인간의 유형을 통해 세상을 우리 앞에 펼쳐준 사람이다. 사람을 알아야 세상을 느끼니까. 그는 니체와 마찬가지로 100년 후를 내다보고 지금 이런 세상이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일하지 않는 귀족여자는 빵을 벌기 위해 몸을 파는 창녀보다 못하다’고 했던 그는 늘 귀족층과 부닥치고, 삶 자체가 투쟁이었다. 다른 작가들이 왕과 귀족을 옹호할 때 그는 ‘병든 사회에 아주 건강한 혁명가’였다. 우리도 유신시대에 김지하처럼 용기 있는 작가가 있었기에 이런 세상이 오지 않았나.”



스트린드베리:귀족 아버지와 하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애정결핍과 열등의식을 겪었던 유년기의 트라우마, 세 번의 파경을 거듭한 불행한 결혼생활로 인한 사랑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그의 작품세계의 모티브가 됐다. 이런 성향은 개인과 사회, 여성과 남성, 귀족과 서민, 신과 인간 사이의 끊임없는 권력투쟁으로 표현됐다. 반전주의자로서 노벨과 대립해 노벨이 “스트린드베리와 같은 성향의 작가는 노벨상 대상에서 배제한다”고 선언했다. 말년에 스웨덴 국민이 노벨상보다 더 많은 4만5000크로나의 거금을 모금해 전달했고, 스스로 ‘안티노벨상’이라고 명명했다. 왕권과 대립해 모국의 제도권에서 배척당했던 그의 희곡은 프랑스 자유극장과 독일 베를린 자유소극장 무대에서 명성을 얻었다. 일본축지 소극장에서 공연되면서 아시아문화권에 처음 소개됐다. 국내에서는1920년대 토월회에서 ‘채권자’를 처음 소개한 이래 현재까지 9편의 작품이 총 23차례 무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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