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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건 당신 뜻대로...사랑하니까

중앙선데이 2012.09.08 20:18 287호 28면 지면보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가치들의 왕좌에 앉아 있다. 그래서 인간에게 너무나 소중한 가치, 예를 들어 행복, 우정, 심지어 사랑마저도 돈의 압도적 힘 앞에는 명함조차 내밀지 못하고 있다. 물론 말로는 이야기한다. 돈으로 사랑을 사거나 팔지는 않겠다고 말이다. 그렇지만 주변에 난립하고 있는 연애 정보 회사는 무엇이라는 말인가. 심지어 맞선이나 소개팅 제안이 오면 우리는 바로 이렇게 되묻는다. “그 사람 직업은 뭐야, 학교는 어디 나왔는데?”
그렇다. 지금 우리는 사랑보다는 돈이나 안정적 소득을 얻으려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결국 우리는 지금 돈을 사랑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지만 내가 사랑한다는 사람이 돈의 메신저에 지나지 않는 것만큼 씁쓸한 일이 또 있을까.

강신주의 감정 수업 <19> 겸손


사랑이 돈으로 매매될 수 있을까. 돈을 가진 사람들은 사랑을 살 수 있다고 자신한다. 이들의 오만은 돈이 많다는 이유로 이성(異性)들이 자기에게 꾀어드는 것을 자주 경험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하긴 그렇다. 돈을 위해 사랑을 파는 사람이 없다면 그들이 어떻게 돈으로 사랑을 살 수 있겠는가.
19세기 파리는 단순히 한 국가의 수도이기보다는 세계 자본주의의 수도였다. 이곳에서 인간에게 가장 지고한 기쁨을 선사하는 사랑이 ‘매매’되고 있는 안타까운 현장을 목도한 소설가가 있었다. 에밀 졸라다.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에서 졸라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사랑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추적했다.

스무 살의 어린 시골 아가씨 드니즈가 파리에 소비의 상징으로 처음 등장한 으리으리한 백화점에 취업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백화점의 젊은 사장 무레는 자신의 재력과 권세 앞에서 파리의 여자들, 특히 백화점에서 일하는 아가씨들이 자기에게 기꺼이 몸을 내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 그에게 드니즈는 하나의 충격이었다. 드니즈에 대한 호감은 그저 하찮은 신참에 대한 동정심에서 비롯되었지만, 무레는 점차 그녀가 발산하는 예상치 못한 매력에 끌리게 된다.

그러자 무레는 늘 그랬듯 돈과 권력으로 드니즈를 유혹하지만 그녀는 요지부동이었던 것이다. 아니, 오히려 더 많은 돈과 더 높은 직위로 유혹할수록 드니즈는 무레로부터 더욱 멀어지기만 했다. 이쯤에서 무레가 무기력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무레는 지금까지 자신이 가진 돈과 권력이면 아무리 사랑이라 한들, 얻지 못할 것이 없다고 자신해 왔기 때문이다. 마침내 그는 스스로 절망하며 절규한다.

“마치 전쟁이라도 치르듯 그를 아연실색하게 하는 상황 속에서 그는 점점 더 끓어오르는 욕망을 억누를 수 없었다. 이건 그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조그마한 여자는 언젠가는 그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었다. 그는 언제나 여자의 도덕성은 상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그에게는 오직 한 가지 목표만이 존재했다. 다른 것들은 그 절대적 필요 앞에서 모두 사라져버렸다. 그녀를 자신의 방으로 들여 자신의 무릎 위에 앉힌 채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는 것, 그것만이 그가 원하는 것이었다. 그런 광경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온몸의 피가 요동치면서 몸이 떨려 왔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무능함에 절망했다.”

드니즈는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는 여자였다.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무레는 자신의 힘과 매력이 오직 돈에서만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 돈이 전혀 먹히지 않는 여자를 만나게 된 것이다. 바타유의 말처럼 금지된 것은 금지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더 큰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법. 그렇지만 도대체 어떻게 해야 드니즈를 자신의 무릎 위에 앉히고 사랑의 키스를 나눌 수 있을까.

불행히도 무레는 돈이 통용되지 않는 방법이라고는 하나도 생각해 낼 수가 없었다. 그러니 절망할 수밖에. 무레는 지금까지 느껴 보지 못했던 감정에 빠지게 된다. 그것은 드니즈라는 한 여성에 대한 ‘겸손’의 감정이다.
“겸손(humilitas)이란 인간이 자기의 무능과 약함을 고찰하는 데서 생기는 슬픔이다.”(스피노자의 『에티카』 중에서)

그렇다. 스피노자의 말대로 무레의 겸손은 자신이 자랑하던 돈의 무기력함을 자각하는 데서 오는 슬픔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의 겸손은 동시에 한 여성을 자기 뜻대로 할 수 없다는 자각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바로 이것이 사랑 아닌가. ‘나의 뜻대로’가 아니라 ‘당신 뜻대로’가 바로 사랑의 표어이기 때문이다. 마침내 무레는 진정한 사랑을 배우게 된 것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항상 자신의 무기력을 토로할 수밖에 없다. 나의 구애를 받아줄지 거부할지가 전적으로 상대방의 의지에 달려 있다는 것을 자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무레의 겸손, 그러니까 자신이 자랑하는 돈이 사랑 앞에서는 무기력하기만 하다는 자각이야말로 그가 드디어 사랑할 수 있는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증거다. 이것이 바로 돈으로 사랑을 매매하는 우울한 파리에서 졸라가 우리에게 알려 주고 싶었던 것 아닐까.



대중철학자『. 철학이 필요한 시간』『철학적 시읽기의 괴로움』『상처받지 않을 권리』등 대중에게 다가가는 철학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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