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떴다 하면 '15억 초대박' 홈쇼핑 女스타

중앙일보 2012.09.08 00:41 종합 16면 지면보기
6일 오후 서울 양평동 롯데홈쇼핑 스튜디오에서 최유라씨(왼쪽)가 홈쇼핑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중 마룻바 닥에 앉아 진공청소기를 시연하고 있다. 이날 생방송 2시간 동안 최씨는 8억원어치를 팔았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6일 오후 8시 서울 양평동 롯데홈쇼핑 본사 1층 ‘스튜디오 250’. 방송인 최유라(45)씨가 만화 캐릭터가 귀엽게 그려진 셔츠 밑에 빨간 앞치마를 두르고 스튜디오에 들어섰다. 안에선 이미 10여 명의 스태프들이 생방송을 앞두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최씨가 무대 정면에 걸린 ‘최유라쇼’라는 대형 글자판을 잠시 흐뭇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러곤 자리에 앉아 소형 마이크와 이어폰을 착용한 뒤 대본을 살폈다. “냉정하게 하세요”라는 정선영 PD의 주문에 최씨는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이날의 임무는 21만9000원짜리 가정용 진공 청소기 세트를 파는 것이다.

[현장 속으로] 홈쇼핑 4대 천왕

박나림·최유라·하유미·왕영은 30~50대 살림·육아 고민 담아



오후 8시35분. 생방송 중임을 알리는 ‘온에어(On Air)’ 표지판에 빨간 등이 들어온다. 스튜디오 천장에 달린 수십 대의 조명등에 일제히 불이 켜졌다. “최유라쇼에 들어올 상품이면 충분히 검증된 상품이잖아요. 아무거나 팔 수 없죠. 제 이름 걸고 파는 건데, 그쵸?” 최씨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묻어났다. “제가 바쁘게 살다 보니 밤에 집안 청소를 해야 할 때가 많아요. 그러면 반상회에서 금세 시끄럽다고 말이 나오죠. 그런데 얘는 정말 조용해요. 제가 직접 써봤거든요.” 그는 무릎을 꿇고 마룻바닥에 앉아 직접 청소기를 돌려봤다.



 대형 크레인 끝에 매달린 카메라가 무대로 바짝 다가서며 최씨의 시연 장면을 클로즈업한다. “우리 엄마가 이걸 사셨는데 너무 좋아하시는 거야. 친구 집에도 선물했죠.” 스튜디오 입구 쪽 전광판에는 실시간으로 고객들의 주문전화 횟수가 표시된다. 많을 때는 400통이 넘는 주문전화가 동시에 걸려오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날 두 시간의 생방송 동안 최씨가 판매한 제품은 8억원어치에 달한다.



 방송 직전 기자와 만난 최씨는 “홈쇼핑 방송을 한 지 3년 됐는데 할 때마다 재미가 붙고 흥이 난다”며 “시청자들이 상품 광고라기보다 웃고 떠들고 호들갑 떠는 토크쇼로 봐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최유라 스타일대로 할 수 없으면 처음부터 방송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며 “‘토크쇼의 여왕’이라는 오프라 윈프리의 쇼가 바로 내가 닮고 싶은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직접 먹지 않고, 쓰지 않고, 입지 않는 물건은 팔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워뒀다”며 “소비자와 판매자 사이에서 물건을 골라주는 ‘정직한 중간자’가 필요한데, 내가 그런 역할을 맡고 싶다”고 덧붙였다.



‘바보상자’서 대박 터뜨린 미다스의 손



홈쇼핑 주문전화 횟수를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전광판.
 “나는 쇼핑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미국의 현대 미술가 바버라 크루거가 현대인의 내면에 숨어 있는 소비 욕망을 날카롭게 꼬집으며 남긴 말이다. 생각하는 이성보다 갖고 싶은 욕망이 앞서는 현대 사회는 ‘근대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의 유명한 명제인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를 시대에 뒤떨어진 말로 만들었다. 현대 소비사회에서 쇼핑은 단순히 필요한 물건을 사는 행위를 넘어 존재감을 확인하는 신성한 의식으로 비약한다.



 그중에서도 TV 홈쇼핑은 편리함을 원하는 현대인의 요구와 기술의 발전이 절묘하게 맞물린 결과물이다. 홈쇼핑에선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생생한 정보 전달과 쇼핑 호스트(진행자)의 현란한 화술, TV 방송 특유의 현장감이 결합돼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소비자는 안방에서 리모컨으로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사고 싶어지는 물건이 있으면 전화 한 통화로 간단히 손에 넣을 수 있다. 혹시 물건을 받고 나서 생각이 바뀌거나 물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전화 한 통으로 반품 처리하면 된다.



 최근에는 쇼핑과 오락을 결합한 ‘쇼퍼테인먼트(쇼핑+엔터테인먼트)’가 홈쇼핑의 대세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홈쇼핑에도 유명 연예인들이 등장해 일반 방송의 토크쇼를 보는 듯한 재미를 안겨주는 것이다. 최유라씨를 비롯해 박나림·왕영은·하유미씨 등은 홈쇼핑의 ‘4대 천왕’으로 통한다. 짧게는 5개월, 길게는 5년간 이들 네 명이 홈쇼핑에서 올린 판매액은 총 7500억원에 달한다. 흔히 ‘바보상자’로 부르는 TV를 ‘대박상자’로 바꾼 ‘미다스의 손’인 셈이다.



 매주 토요일 오전 8시20분이 되면 홈쇼핑 채널 사이에서 소리 없는 전쟁이 벌어진다. 각 사의 간판스타들이 동시에 출연해 주방·생활용품 등을 내걸고 ‘진검승부’를 펼치는 시간이다. 올해부터 초·중·고등학교가 주5일제를 전면 시행한 것도 토요일 아침이 홈쇼핑의 ‘황금시간대’로 자리 잡는 요인이 됐다. 토요일 아침 주부들이 자녀의 등교를 챙겨주는 부담에서 벗어나면서 전보다 한결 여유롭게 TV를 시청할 수 있게 된 것이다. GS SHOP의 노은희 PD는 “토요일 아침은 고객들이 평일의 바쁜 일상과 고민을 잠시 잊고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되는 때”라며 “대중에게 친근감을 주는 연예인이 토크쇼 같은 느낌으로 홈쇼핑 프로그램을 진행하기에 가장 적합한 시간대”라고 말했다.



방송 내보낼 제품 선정 단계부터 참여



 ‘최유라쇼’는 롯데홈쇼핑의 대표 프로그램이다. 이달부터 토요일 아침에도 생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2009년 9월 첫 방송을 시작한 이후 3년간 최유라쇼의 누적 주문금액은 2000억원이 넘는다고 회사 측은 밝혔다. 최씨는 “신인 때 이후 토요일 방송은 23년 만에 처음”이라며 “그동안 주말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쉬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는데 홈쇼핑이 너무 재미있어 생각을 바꿨다”고 말했다.



롯데홈쇼핑의 정구선 팀장은 “같은 상품이라도 최유라쇼에서 팔면 평균 매출이 30% 이상 높게 나온다”며 “최씨의 인간적이고 진솔하며 정감 있는 방송 진행이 시청자들에게 폭넓은 공감을 얻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전 아나운서 박나림(38)씨가 토요일 아침마다 출연하는 ‘똑소리 살림꾼’(GS SHOP)은 국내 홈쇼핑에서 가장 오래된 프로그램이다. 1998년 방송을 시작해 올해로 14주년을 맞았다. 회사 측이 연예인 홈쇼핑의 ‘원조’로 자부하는 이유다. 그동안 탤런트 정애리, 방송인 송도순씨 등이 이 프로그램을 거쳐갔다.



지난 4월 이 프로그램에 합류한 박씨의 5개월간 누적 판매액은 300억원으로 집계됐다. 노 PD는 “박씨가 한번 방송할 때마다 평균 15억원어치의 제품이 팔리고 있다”며 “같은 주부이자 자녀를 키우는 엄마로서의 경험 등을 편안한 말투로 풀어내는 게 홈쇼핑의 핵심 시청자층인 주부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은 비결”이라고 분석했다.



현대홈쇼핑의 간판 연예인은 탤런트 하유미(47)씨다. 아직 토요일 아침 방송에선 하씨를 볼 수 없다. 정해진 시간에 다양한 주방·생활용품을 돌아가며 소개하는 다른 인기 연예인 출신들과 달리 하씨는 한 달에 4~5회 부정기적으로 출연해 한 종류의 제품만 판다. 30~40대 주부들 사이에서 ‘국민 마스크팩’이란 별명을 얻은 ‘하유미 마스크팩’이 그것이다. 2007년 홈쇼핑에서 첫선을 보인 이후 5년간 2500억원대의 매출을 올렸다고 회사 측은 전했다.



이 회사의 임흥준 MD(상품기획자)는 “연예인이 나와 제품을 판다고 무조건 성공의 ‘보증수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며 “화려한 입담과 더불어 ‘피부미인’이란 하씨의 이미지가 제품의 특성에 잘 맞아들어간 게 성공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씨가 촬영장에서 겪은 에피소드 등을 소개하면서 제품 설명에 개인적인 경험을 녹여낸 것도 주부 시청자들의 반향이 컸다”고 덧붙였다.



 ‘뽀미 언니’로 유명한 방송인 왕영은(53)씨도 자신의 이름을 건 ‘왕영은의 톡톡 다이어리’(CJ 오쇼핑)라는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지난 5년간 총 246회 방송의 누적 판매액은 2700억원을 돌파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왕씨가 한번 방송에 나올 때마다 평균 10억원어치가 넘는 제품이 팔렸다는 얘기다. 준비한 상품이 모두 팔려나가 ‘매진사례’를 기록한 경우도 100회가 넘는다고 한다.



 지난해 12월 홍삼액 등 건강식품 조리용 중탕기를 소개하는 방송에선 1시간에 31억원어치가 팔려나갔 다. 이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신상엽 MD는 “왕씨가 단지 주어진 제품을 소개하는 진행자가 아니라 방송에 내보낼 제품을 선정하는 단계부터 참여해 고객의 취향과 선호도를 함께 고민했던 덕분”이라고 말했다.



쇼퍼테인먼트 부작용 경계해야



유통업계에서는 케이블 TV 가입자가 포화 상태에 달해 벽에 부딪친 홈쇼핑 산업에서 쇼퍼테인먼트가 또 다른 성장의 돌파구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신진호 GS SHOP 홍보팀장은 “쇼퍼테인먼트는 편안하고(Comfortable), 편리하면서(Convenient), 공감(Compassion)이 가는, 이야기가 있는 상거래(Commerce)라는 것이 특징”이라며 “이런 네 가지의 C는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쇼핑의 가치에 정확히 들어맞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쇼퍼테인먼트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확산·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연예인들의 홈쇼핑 출연이 소비자들의 충동구매를 부추길 우려가 높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적잖다. 김창호 남서울대(국제유통학과) 교수는 “홈쇼핑은 매체의 특성상 소비자들의 내면에 잠재해 있는 욕망을 외부의 강한 자극을 통해 불러일으키는 방식”이라며 “소비자들이 스스로 정보를 탐색하는 게 아니라 일방적·수동적으로 정보가 주입되면서 합리적 의사 결정을 어렵게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연예인 모델은 그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동일시 현상과 공인이라는 신뢰성이 결합돼 더욱 강한 자극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라며 “그 때문에 충동구매로 이어지기가 더욱 쉬워진다”고 덧붙였다.



 이원재 카이스트(KAIST) 문화기술대학원(사회학) 교수는 “보통 소비자들이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가격 등을 비교하는 인터넷 쇼핑과 달리 가만히 앉아 있다가 솔깃한 정보에 순간적으로 설득당하면서 예정에 없던 소비를 하기 쉬운 게 홈쇼핑”이라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여기에 연예인의 높은 인지도와 광고 효과, 쇼의 오락성까지 더해지면 소비자는 더욱 저항하기 어려워진다”며 “홈쇼핑의 주된 부작용으로 꼽히는 이른바 ‘지르기’의 위험도 그만큼 커지기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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