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진홍의 소프트파워] 변명은 돌파 못한다

중앙일보 2012.09.08 00:34 종합 38면 지면보기
정진홍
논설위원
# 전설적인 무도인 최배달(본명 최영의)은 생전에 ‘최선’이란 말을 좋아하지 않았다. 단어 자체야 나쁜 뜻이 없다지만 정작 실생활에서 쓸 때는 “최선을 다했습니다만…”하고 뒤에 핑계 혹은 변명의 꼬랑지가 붙기 십상이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핑계와 변명을 싫어했던 그는 최선이란 말 대신 극진(極眞)이란 말을 쓰길 좋아했다. 흔히 극진이라면 하면 다할 ‘극(極)’자에 다될 ‘진(盡)’자를 쓴다지만 최배달의 극진은 다할 ‘극’자에 참 ‘진(眞)’자를 써서 말 그대로 핑계나 변명 없이 진실되게 끝까지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가 창도한 공수도(空手道)의 이름도 ‘극진가라테’다. 정말이지 변명하지 않고 핑계대지 않으며 끝까지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 최배달의 ‘극진’을 새삼 이야기하는 까닭은 100일 앞으로 성큼 다가온 대선판이 참으로 가관이기 때문이다. 대선은 싸움이다. 그것도 인정사정 보지 않는 무자비한 싸움이다. 하지만 그렇다손 쳐도 최소한의 금도(襟度)는 있어야 하는 법! 그런데 작금 벌어지고 있는 모습은 정말이지 치졸하다. 특히 엊그제 불거진 ‘한때 친구 사이’였다는 금태섭-정준길 양씨의 기자회견 공방과 그 뒤에 서 있는 안철수-박근혜 양 진영의 모습을 보면 참으로 딱하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 아침 출근길에 전화해서 돈이 어떻고 여자가 어떻고 하며 친절하게 남 걱정까지 해준 정씨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전화를 한 건가? 새누리당 대선공보단에 왜 검사 출신이 끼어있어야 하는지 그 속심은 알 바 아니라지만 정씨는 상대방 검증 과정에서 자신이 역할 할 바가 꽤 있다고 자부한 감이 없지 않아 보인다. 그러니 금씨에게 사실관계 파악해가면서 잘해라 하는 식의 언질도 했던 게 아닌가 싶다. 게다가 얼마나 대단한 공보위원인지 모르겠으나 그 임명장도 받기 하루 전에 그처럼 전화해서 사단 일으키는 걸 보면 이미 좀 붕 떠 있었던 것 같다. 한마디로 자기 자신에 대한 주제 파악이 안 된 상태에서 공명심만 앞선 게다. 하지만 새누리당에 자기 주제 파악하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제2, 제3의 정준길이 언제 여 보란 듯이 또 나타나서 한바탕 일들을 저질러 놓을지 예측불가다. 마치 모두가 자기 나름의 한 건, 한 방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어 보인다.



 # 그런가 하면 문제의 그 전화를 받고 이틀 지나 대대적으로 기자회견 열며 ‘불출마 종용, 협박’ 운운하면서 대선판을 일거에 쑥대밭으로 만든 금씨도 위험하긴 매한가지다. 나는 금씨가 무슨 자격으로 기자회견을 연 것인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안철수 원장의 자칭타칭 수호천사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고는 하는데 스스로 알아서 자가발전하고 자기동력화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될 때가 적잖다. 특히 이번 건은 더욱 그렇다. 안 원장에게 돈과 여자문제가 사실무근이라는 확인은 했다지만 정작 기자회견하겠다는 데 동의를 얻어낸 것은 아닌 듯 싶기 때문이다. 어쨌든 금씨 역시 서울대 법대 동기생이자 검찰에 함께 몸담았던 정씨의 전화에 대해 좀 과도하게 반응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왠지 2002년 아폴로 안톤 오노의 할리우드 액션을 연상시키는 측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금씨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여지를 준 사람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안철수 원장 자신이다. 도대체 언제까지 재고만 있을 참인가?



 # 진정한 무인이자 진짜 싸움꾼이었던 최배달이 생전에 이런 말을 했다. “시작하지 않고 준비만 하는 것, 마음만 먹고 실행하지 않는 것은 가짜다. 세상을 살 때 가장 중요한 건 목숨을 거는 거다. 네가 하고자 하는 일에 너를 바쳐라. 실천이 없으면 증명이 없고, 증명이 없으면 신용이 없으며, 신용이 없으면 존경도 없다.” 나라가 힘들다. 국민이 힘겹다. 그 와중에 대선이다. 더 이상 국민들 짜증나게 하지 말고 싸울 거면 박근혜든, 안철수든, 문재인이든, 그 누구든 손들고 나와서 제대로 싸워라. 지금은 피차 ‘극구변명(極口辯明)’할 때가 아니라 ‘극진건투(極眞健鬪)’ 할 때다.



정진홍 논설위원



[정진홍의 소프트파워] 더 보기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