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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나온 남자 코믹 댄스 … 1990년대 휩쓴 마카레나와 닮은꼴

중앙일보 2012.09.08 00:29 종합 22면 지면보기
‘강남스타일’의 세계적 인기몰이는 1990년대 중반 전 세계를 강타한 ‘마카레나’를 떠올리게 한다.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쉬운 춤에 신나는 멜로디까지 흥행 코드가 닮아있다


‘강남스타일’이 ‘세계스타일’로 확산되고 있다. 6일 밤(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 시상식에서 가수 싸이가 ‘강남스타일’의 안무인 ‘말춤’을 선보이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로이터=뉴시스]
가수 싸이(본명 박재상·35)가 6일 밤(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열린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 시상식에서 ‘말춤’을 선보이며 무대를 뜨겁게 달궜다. 싸이는 사회자 케빈 하트와 ‘강남스타일’의 말춤을 함께 춘 뒤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에 “기분이 너무 좋다. 이 무대에서 한 번쯤 한국말로 이렇게 말해 보고 싶었다. ‘죽이지~’”라고 답했다. MTV는 “오늘 밤 리아나 등 굵직한 스타들이 많이 등장했지만 관객들을 깜짝 놀라게 한 건 싸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뜨겁게 떠오르는 스타”라고 소개했다.

유튜브 1억 클릭 ‘강남스타일’ 열풍 어디까지



 ‘강남스타일’은 한국을 넘어 ‘세계스타일’이 될 수 있을까. 이제는 지구 곳곳에서 누구나 쉽게 따라 하게 된 싸이의 말춤. 강남스타일의 성공은 1995~96년 전 세계를 강타한 스페인 남성 듀오 로스 델 리오(Los Del Rio)의 ‘마카레나’를 떠올리게 한다. 마카레나 이전에는 1980년대 후반 세계를 사로잡은 브라질 혼성그룹 카오마의 ‘람바다’가 있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테크토닉과 셔플댄스가 인터넷 회선을 타고 전 세계로 퍼졌다. 이들 곡은 세계 대중음악시장을 지배하는 미국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탄생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다는 점에서 맥락을 같이 한다.



90년대 중반을 강타한 ‘마카레나’의 추억



 1994년, 배 나온 중년의 두 남성(안토니오 로메로 몽헤, 라파엘 루이스 페르디고네스)이 신나고 가벼운 리듬에 단순한 춤을 얹은 곡 ‘마카레나’를 내놓았다. 재미있는 가사와 멜로디도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 두 팔을 차례로 앞으로 내밀었다 목과 허리에 얹으며 들썩이는 과정을 반복하는 춤으로 대히트를 쳤다. 96년 8월부터 11월 초까지 무려 14주 동안이나 빌보드 싱글차트 연속 1위를 기록했고, 스페인과 미국을 넘어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었다.



 바다 건너 땅인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중문화가 급격히 팽창하던 시대적 상황과 맞춰 ‘마카레나 붐’이 일었다.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는 마카레나를 따라 추는 연예인들이 심심찮게 등장했다. 최근 종영한 인기 드라마 ‘신사의 품격’은 마지막 회에 이종혁과 김정난이 마카레나를 추는 장면을 내보냈다. 불혹에 접어든 네 남자를 주인공으로 매회 영화 ‘친구’ 등을 패러디하며 40대의 향수를 자극했던 이 드라마가 내놓은 마지막 복고 카드가 바로 마카레나였다. 런던 올림픽의 양궁 스타 커플인 기보배·오진혁 선수도 최근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마카레나를 선보여 화제가 됐다. 그만큼 이 노래와 춤에 향수를 가진 이들이 많단 얘기다.



 60년대부터 꾸준히 활동해 온 로스 델 리오가 마카레나를 처음 내놓은 건 92년이었다. 쿠바의 전통 춤인 룸바를 기본으로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서 인기를 끌었다. 마침 미국 내에 히스패닉 인구가 급증하던 때와 맞물렸다. 그렇게 영미권 시장을 겨냥해 클럽 버전으로 새롭게 나온 곡이 우리가 잘 아는 ‘마카레나’였다. 대중음악평론가 김작가씨는 “한 번만 봐도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동작으로 육체의 희열과 춤의 원초성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싸이의 ‘강남스타일’과 통하는 부분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들 특유의 코믹한 분위기도 한몫했다. 마카레나의 뮤직비디오는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와 그 유쾌함과 단순함에서 통하는 부분이 있다.



관능적인 춤 ‘람바다’(사진 왼쪽)와 코믹 코드를 가미한 ‘셔플댄스’(오른쪽) 모두 미국이 아닌 곳에서 탄생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파급 경로는 달랐다. 김작가씨는 “두 곡의 분위기는 비슷하지만 히트하게 된 배경은 다른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90년대 중반은 미국의 메이저음반사가 곡을 골라 유통시키던 시절”이라며 “생산자와 소비자가 명확히 구분되는 구조 속에서 철저하게 영미권 트렌드가 제3국으로 전파되던 시기로, 마카레나도 그렇게 전파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유튜브 시대의 ‘강남스타일’은 음악시장의 주류라는 게 사라져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제 선택권은 일반대중의 손으로 넘어갔다. 두 곡이 비영미권 시장에서 시작했다는 점은 같지만 경로가 달랐던 것이다.



 마카레나 이전에는 ‘람바다’가 있었다. 브라질 혼성그룹 카오마(Kaoma)가 89년 프랑스에서 기획·발표한 싱글앨범 ‘람바다’는 90년대 초까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카오마는 볼리비아 전통 음악밴드인 로스 카르카스(Los Kjarkas)의 원곡을 좀 더 강렬하고 신나게 각색했다. 무엇보다 살사와 룸바 등을 결합한 듯한 리듬에 남녀 댄서가 몸을 밀착시켜 추는 관능적인 춤이 전 세계를 강타했다. 90년에는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됐다.



 국내에서도 람바다 춤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당대 인기 여가수였던 김완선이 89년 커버곡으로 발표할 정도였다. ‘섹시댄스’의 원조였던 셈이다. 지난해에는 미국 팝스타 제니퍼 로페즈가 ‘람바다’ 멜로디를 차용해 만든 곡 ‘온 더 플로어(On The Floor)’의 뮤직비디오 가 한 달 만에 유튜브 조회수 1억2000만 건을 기록했다.



2000년대엔 테크토닉·셔플댄스



 2000년대 각 대륙으로 퍼져나가 유행한 춤으로는 ‘테크토닉’과 ‘셔플댄스’를 빼놓을 수 없다. 언뜻 디스코를 연상시키는 테크토닉은 주로 손을 이용한 동작이 눈에 띈다. ‘질질 끈다’는 의미의 셔플댄스는 발을 놀리는 동작이 특이점. 각각 프랑스와 호주가 탄생지다. 한두 개 패턴으로 구성돼 따라 하기 쉽고 특별한 숙련 과정이 필요 없어 중독성이 강하다는 것도 공통점으로 꼽힌다.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적 파급력을 가지게 된 계기가 유튜브였던 것처럼 테크토닉과 셔플댄스도 인터넷 덕을 톡톡히 봤다.



 하지만 ‘마카레나’와 ‘강남스타일’과는 태생적 측면에서 조금 다르다. 대중음악평론가 강태규씨는 “테크토닉과 셔플댄스는 노래에서 시작한 게 아니라 클럽과 길거리에서 시작됐다는 게 특징”이라며 “클럽신에서 10~20대를 중심으로 춤이 먼저 유행하고 그에 맞는 음악이 나와 더 빠르게 퍼졌다”고 말했다. 그 때문에 춤의 한 장르로 볼 수 있고, 그래서 금세 소멸되지 않고 수년간 인기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2000년 파리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시작된 테크토닉(테크노와 일렉트로닉의 합성어)은 이내 10대를 중심으로 급속히 퍼져나갔다. 이 춤을 만든 클럽 아트디렉터 알렉상드르 바루즈댕이 춤과 관련한 상표권을 등록할 정도로 인기몰이를 했다. 닭 볏을 연상시키는 헤어스타일(일명 크레트), 스포츠용 손목 토시, 딱 붙는 바지, 발목 위로 올라오는 운동화, 진한 눈화장 등 ‘테크토닉 스타일’로 불리는 패션도 함께 유행했다.



 바루즈댕은 2008년 초 국내에 테크토닉 붐이 일 당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외모를 가꾸는 남성들이 늘어난 덕이 크다”며 “메트로섹슈얼 스타일이 급속히 퍼지면서 젊은이들이 그런 코드를 반영한 테크토닉에 열광하기 시작한 것 같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2007년 말부터 클럽들이 앞다퉈 테크토닉 파티를 열면서 10~20대의 춤으로 급부상했다.



 셔플댄스는 1980년대 호주의 항구도시 맬버른에서 만들어진 ‘맬버른 셔플’이 점차 변형되며 완성된 경우다. 테크토닉처럼 클럽과 파티에서 인기를 끌다 미국의 남성 듀오 엘엠파오(LMFAO)를 통해 ‘대세’가 됐다. 2011년 이들이 발표한 ‘파티 록 앤섬(Party Rock Anthem)’의 뮤직비디오는 마치 무언가에 중독된 듯 흥겹게 셔플댄스를 추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 유튜브 조회수 2억 건을 넘겼다. 자신들의 장르를 ‘파티 록’이라 부를 정도로 파티를 위한 노래와 춤을 찾던 엘엠파오와 셔플이 딱 맞아떨어진 셈이다. 셔플댄스의 단순한 동작과 보편적 유머 코드는 ‘마카레나’나 ‘강남스타일’과도 맞닿아 있다. 국내에서는 장근석이 한 토크쇼에 나와 선보인 뒤 각종 TV광고 등을 통해 유행했다.



강남스타일, 트렌드 넘어 하나의 ‘기호’로



 싸이는 미국 출국에 앞서 4일 미국 팝스타 저스틴 비버의 소속사와 매니지먼트 계약을, 유니버설 리퍼블릭 레코드(유니버설 뮤직 그룹 산하)와 음반 유통 계약을 각각 맺었다. 월드 스타가 됐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세계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탄탄한 밧줄을 잡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에서는 그의 뮤직비디오 조회 건수가 1억 건을 넘어섰다. 한국 가수로는 최고 기록이다.



 ‘싸이앓이’는 톱스타도 비켜가지 않는다.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강남스타일 안무인 말춤을 가르쳐 줄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고, 톰 크루즈도 자신의 트위터에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 주소를 링크한 뒤 싸이를 먼저 팔로우했다. 2000년대 이후의 현상을 두고 강태규씨는 “생산자의 물량 공세나 대규모 홍보가 통하지 않는 시대에 한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싸이를 통해 본 셈”이라고 설명했다.



 K팝 한류 붐을 이끈 아이돌 그룹과는 궤도를 달리하는 싸이와 ‘강남스타일’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김작가씨는 “섣불리 예단할 수는 없지만 ‘강남스타일’은 한때의 유행을 넘어 대중문화 내 하나의 ‘기호’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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