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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 워치] 드라기 ‘바주카포’ 실물경제 추락 막기엔 힘 부칠 것

중앙일보 2012.09.08 00:11 종합 29면 지면보기
글로벌 금융시장이 모처럼 활짝 웃었다. 유럽중앙은행(ECB)의 위기국 채권 무제한 매입 결정에 시장은 반색했다. 세계 주요국 증시가 2~3%씩 일제히 뛰었다. 시장의 응원을 받은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의 ‘바주카포’가 옌스 바이트만 분데스방크 총재를 한 방에 눕혔다.



 ECB의 국채 매입 결정은 시장의 고질적인 불확실성 하나를 제거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투자자들은 세계 경제의 3대 축 중 하나인 유로존(유로화 사용국)이 언제 와해될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을 떨칠 수 있게 됐다. 그리스라는 작은 꼬리는 몰라도 스페인·이탈리아는 유로존 잔류가 보장된 셈이기 때문이다.



 이번 주에는 또 다른 호재가 기다리고 있다. 12~13일 열리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공개시장위원회(FOMC)가 3차 양적완화(QE3)를 단행할 가능성이 크다. 벤 버냉키 Fed 의장은 이미 8월 말 잭슨홀 연설에서 ‘QE3’를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났음을 강력히 시사했다. 한국은행도 13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 인하를 논의한다. 국내외 투자은행(IB)들은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추가 인하할 것으로 내다본다. 외신들은 세계 중앙은행들이 헬리콥터나 바주카포를 동원해 포탄을 퍼붓듯 유동성을 살포하는 시대가 다시 열리고 있다고 전했다. 시장이 고대하던 일이다.



 그러나 거기까지일 공산이 크다. 현실을 냉정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주요국들이 일제히 유동성 공급에 나서는 것은 실물경기 흐름이 그만큼 나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특히 제조업 쪽에 일제히 빨간불이 켜진 상황이다. 제조업의 침체는 대개 서비스업의 부진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경기가 살아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미 공급관리자협회(ISM)가 최근 발표한 8월 제조업지수는 49.6으로, 3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ISM 제조업 지수가 3개월째 기준선(50)을 밑돌면서 올 상반기 반짝했던 미국 경기의 회복 기대감을 꺾었다. 이는 수출 부진에 따른 것으로 조만간 고용지표에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유럽 경제도 악화일로다. 유로존의 제조업 구매관리지수(PMI) 지수는 13개월째 기준선을 하회했다. 그나마 경기가 좋다던 독일마저 이 지표가 8월 44.7로 주저앉았다. 드라기의 처방은 위기국들에 시간을 벌어줄 따름이지 실물경기의 부양과는 무관한 조치다. 중국의 제조업 PMI도 2년 반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으로선 걱정이 태산이다. 올해 3.5%를 넘을 것이라던 국내총생산(GDP) 성장 전망치는 2.5% 선까지 추락했다. 최소한 내년 상반기까지는 고난의 행군이 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일부 초우량 기업을 제외하고는 대다수 기업의 실적이 쪼그라들고 있다. 부도 위기로 몰리는 기업도 생기고 있다. 꿈을 먹고 사는 게 시장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동트기 전 새벽’일 때 얘기다. 아직은 ‘길고 긴 밤’이 남아있다고 봐야 한다. ECB와 Fed발 호재에 마냥 환호할 일이 아니다. 뒤늦게 편승하기보다는 기존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하는 기회로 삼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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