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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게으름은 수치? 강태공도 그 생각에 동의할까요

중앙일보 2012.09.08 00:04 종합 31면 지면보기
게으름은 왜 죄가 되었나

이옥순 지음, 서해문집

232쪽, 1만1900원




“노동이 사람을 죽이는 경우는 없다. (…) 새가 날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인간은 노동을 위해 태어났다.” 종교개혁의 횃불을 든 독일 신학자 루터의 말이다.



 “게으름은 발걸음이 느려서 가난에게 금세 덜미를 잡힌다.” 시간은 금이라며 근면과 성실을 설파했던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저민 프랭클린의 충고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 게으름을 불편해한다. 교육 탓이고, 사회 분위기 때문이다. 어느 시대, 혹은 어디서나 게으름을 몹쓸 짓으로 여긴 것은 아니다. 적어도 인도사를 전공한 이 책의 지은이에 따르면 그렇다. 시대순으로 다양한 자료를 들며 게으름에 대한 죄책감내지 수치감은 기독교가 낳고, 근대 자본주의가 키운 문화의 산물임을 보여준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노동을 경멸했다. 만학의 아버지라는 아리스토텔레스도 게으름을 우주의 원리라고 여겼단다. 노예를 부린 고대 로마인도 노동에 큰 가치를 두지 않았다. 로마 시민은 오후 두 시부터 목욕을 즐겼고, 공공업무가 시행되지 않는 공휴일이 200일이나 됐다.



 기독교가 득세하면서 게으름이 비판을 받고 원죄를 가진 인간이 노동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기게 됐다. 일을 많이 하는 것을 구원의 한 방편으로 여긴 프로테스탄트들은 더 했다. 크리스마스도 사라질 지경이었다. 산업혁명 이후 임금노동자가 등장하면서 필요한 만큼 일하던 시대는 끝났다.



 동양은 달랐다. 인도의 힌두교는 요가와 명상을 통한 여유를 강조했다. 중국에선 세월을 낚던 강태공이 있고, 더 많은 일을 위한 각성제 구실을 한 커피 대신 유유자적하게 차를 즐기는 문화가 자리잡았다. 이런 차이가 20세기 들어 문명과 야만을 가르는 식민주의나 권력층·부유층이 하층민을 채찍질하는 이념적 배경이 되면서 게으름은 타기할 대상이 됐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인도의 성자 크리슈나무르티가 그랬다. “게으름이 어떻다는 것인가? 그냥 가만히 앉아서 먼 곳의 소리가 점점 가까이 오는 것을 듣는 것이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살피는 사람은 가끔씩 조용히 앉아서 나무와 새, 사람과 별, 조용한 강물을 바라보아도 게으른 것은 아니다.”



 누가 게으름을 대놓고 옹호할 수 있으랴마는 작은 위안을 주는 독특한 에세이다. 흥미로운 문화사 산책은 덤이다.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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