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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욕망이란

중앙일보 2012.09.06 00:56 종합 32면 지면보기
이영직
변호사
역사책이나 역사소설을 읽으면서 사람의 경제적 욕망이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경제적 욕망은 자신이 소비하고 싶은 것을 얻는 데 있을 것 같은데 이런저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예를 들면 조선 명종 때 대표적인 권신(權臣)이었던 윤원형이나 고려 무신정권의 집권자인 최충헌의 경우 집에 쌀과 고기가 몇만 명이 먹을 정도로 쌓여 있다든가, 고려 말기의 이른바 권문세족들은 강과 산을 경계로 하여 토지를 소유하였다든가 하는 것 등이다. 당시에는 요즘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즐길거리가 많지 않았을 것인데 그 많은 재물을 가지고 무엇을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이런 의문을 가지고 주위 사람들하고 이야기하다 보면 사람들은 단순히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서만 재물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소유 그 자체를 위하여, 혹은 남보다 더 많이 가지기 위하여 재물을 모으는 경우가 있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게 된다. 즉 욕망 그 자체가 내장되어 있다고 할 것이다.



 흔히 사람의 행복은 자신이 바라는 것을 얼마나 채웠는가, 혹은 채울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바라는 것, 즉 욕망에 대한 충족률이 행복 지수라고 한다. 그렇다면 바라는 것이 적다면 그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어 행복 지수가 높아진다고 할 것이다. 이에 따라 세계적으로 보면 물질문명이 그다지 발달하지 않은 나라들, 우리가 이른바 후진국이라고 하여 무시하기 쉬운 나라 사람들의 행복 지수가 높다는 사실이 이해가 간다. 즉 그들은 많이 바라지 않기 때문에 적게 채워도 되거나 쉽게 채울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남자 어린이들은 한번쯤은 발차기 연습을 해 보았을 것이다. 팔을 높이 뻗은 다음 발을 차올려 뻗은 손바닥에 닿는 방식으로 자신의 태권도 실력을 가늠해 보았을 것이다. 이 경우에도 위에서 본 행복 지수의 논리를 대입한다면 팔을 될 수 있는 대로 낮게 뻗고 발을 차올린다면 태권도 실력은 그만큼 뛰어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해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조그마한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면서 살아가는 소박한 삶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이 있을 수 있을 것이고, 또 하나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약한 ‘못난이’들의 자기합리화에 불과하다고 보는 냉소적인 시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이 살고 있는 사회가 끊임없이 욕망을 부추기는 것을 보게 된다. 자본주의 체제가 원활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물건을 생산하여 판매하고 이를 소비하여야 하는데 생산과 판매의 전제인, 최종적 목적인 소비를 위해서는 왕성한 욕망이 흘러넘쳐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사회가 원만하게 굴러가기 위해서는 그 방향과 타당성, 그리고 정도에 대한 의문은 일단 유보하고 소비를 원하는 욕망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소비에 대한 욕망이 흘러넘쳐야 생산과 판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경제적인 욕구가 충만한 경제인들이 탄생하여 자본주의가 순탄하게 굴러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 살면서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욕망만으로는 부족하여 의도적으로 소비하려는 욕망을 부추기는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더욱이 매스미디어와 인터넷 등을 통해 다수의 사람들에게 일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일상화된 요즘, 이러한 욕망을 부추기는 기술도 점점 발전해가고 있다.



 한 교수는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된 가장 큰 이유는 사람들의 욕망을 부추기고 이를 충족하는 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사회주의는 사람들의 욕망에 대한 심리를 제대로 파악하여 이를 충족시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반면 자본주의는 사람들의 욕망을 알록달록하게 불러일으킨 다음 이를 화려하게 충족시켰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회주의 체제에 살던 사람들의 자본주의에 대한 선망, 즉 욕망을 충족하지 못함으로써 결국 붕괴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사회주의마저 정복한 욕망에 대하여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조그마한 욕망을 가진, 소박한 삶에 대한 그리움이 솟아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영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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