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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성범죄 대책’데자뷰

중앙일보 2012.09.06 00:54 종합 33면 지면보기
김기환
사회부문 기자
“이런다고 성범죄가 해결될까 싶습니다.”



 지난 3일 서울 일선 경찰서에서 만난 한 형사과장이 고개를 저으면서 한 얘기다. 김기용(55) 경찰청장이 성폭력 방지 종합대책을 내놓은 날이었다. 전국 경찰서에 성폭력 전담 부서를 신설하고 불심검문을 부활하는 등 단속에 적극 나선다는 내용이었다. 한 달 동안 ‘방범 비상령’도 내렸다. 하지만 그는 반신반의하는 투였다.



 “바짝 불심검문하면 한동안 잠잠해지겠죠. 하지만 단속기간 동안만 잠깐 반짝일 텐데….”



 부랴부랴 단속에 나선 것은 경찰뿐이 아니었다. 검찰은 최근 아동 포르노 동영상을 인터넷에서 내려받아 보관한 5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이 아동 음란물 단순 소지자를 기소한 것은 2008년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이후 처음이다. 법무부는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자에 대한 ‘화학적 거세’와 전자발찌 착용을 확대하는 대책을 내놨다. 박인숙(64) 새누리당 의원은 한술 더 떠 성범죄자에게 ‘물리적 거세’를 선고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까지 발의했다.



 피해자를 짓밟은 성범죄자에게 무거운 벌을 내리는 것, 국민의 법감정상 당연한 조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 이날 만난 형사과장은 일회성·땜질식 처방에 대해 비판을 쏟아냈다.



 “아무리 처벌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단속에 나서도 성범죄를 저지르겠다고 마음먹고 나선 짐승들을 막을 순 없습니다. 처벌과 단속도 필요하지만 결국 예방이 중요하단 얘기입니다. 최근 성범죄 사건을 잘 보세요. 부모 관심 못 받고 자란 어린이, CCTV 없는 주택가에 혼자 사는 여성이 피해자의 대부분이죠. 이런 ‘구멍’부터 틀어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단속만으로 범죄를 예방하고 재범을 막기 어렵다는 게 대부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최근 방한한 LA검찰청의 성범죄 전문가 박향헌(49) 검사는 “무거운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다”며 “성범죄 예방 교육, 성범죄자에 대한 심리치료, 피해자의 적극적인 제보 등 삼박자가 맞아떨어져야 성범죄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2008년 ‘조두순 사건’의 피해 아동 주치의였던 신의진(48) 새누리당 의원은 “사회에서 ‘고립’과 ‘방치’되는 취약 부분을 없애는 게 성범죄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강조했다. 새겨들을 만한 얘기다. 방과후 홀로 방치된 어린이가 없도록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고, 농어촌 등 취약지역에 지역아동센터를 늘리자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화끈해 보이는 대책을 내놨다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잠잠해지는 ‘성범죄 대책 데자뷰’는 이젠 다시 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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