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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학생 10명 중 4명이 학교 그만둘까 고민하는 중병 걸린 한국 교육

중앙일보 2012.09.05 00:02 종합 35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신(神)이 만일 나에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할까. “마음만 고맙게 받겠습니다”라며 정중히 사양할 것이다. 과거로 돌아간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행복했던 기억보다 고민하고 좌절하고 방황했던 기억이 훨씬 많다. 다시 옛날로 돌아간다고 잘할 자신? 없다. 특히 10대 청소년기로는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나마 조금 먼저 태어난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지금 같아서는 분명 나는 원하는 대학에 못 갔을 것이다. ‘스카이’ 대학은 고사하고 ‘인서울’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 엄청난 학습량과 공부 스트레스를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다. 어려서부터 학교생활기록부 관리하고, 봉사활동 점수 따고, 수상 실적 만들고, 선행학습하며 책도 많이 읽어야 한다니 도저히 내 능력 밖이다. 게다가 학교폭력과 집단 따돌림도 신경 써야 한다. 더 결정적인 것은 부모의 능력이다. 지금은 오히려 감사하고 있지만 솔직히 우리 부모님은 내가 어느 대학 무슨 과에 가는지도 모르셨다. “니가 알아서 잘 혀.” 딱 이 한마디뿐이었다.



 요즘엔 할아버지의 재력이나 엄마의 정보력으로도 안 된다고 한다. 대학입시가 인간의 능력을 초월할 정도로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203개 대학이 발표한 올 수시모집 전형 종류를 다 합하면 3189가지라고 한다. 학생과 학부모는 물론이고 진학담당 교사들조차 이를 다 파악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다양한 방식으로 학생을 선발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누굴 위한 다양화냐는 질문이 안 나올 수 없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 7월 전국 초·중·고교생 3만1364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응답자의 40.3%가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것으로 나타났다. 이유로는 ‘학업 성적’(41.8%)이 가장 많았다. 집단생활이란 게 기본적으로 재미있을 건 없지만 그래도 10명 중 4명이 자퇴를 생각해 봤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한국 교육이 중병에 단단히 걸렸다.



 그제 서울의 어느 아파트에서 여고 3학년생이 투신해 숨졌다. 호주머니에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내용의 유서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 그 전날 대구에서는 여고 1학년생이 투신자살했다. 지난해 전국에서 자살한 학생만 150명이다. 얼마나 더 많은 학생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이 살인적인 교육제도가 바뀔까.



 『스무 살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이란 베스트셀러를 쓴 미국 스탠퍼드대의 티나 실리그 교수는 젊은이에게 중요한 것은 학업 성적이 아니라 실패의 경험이라고 말한다. 젊은 시절의 실패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이란 것이다. 실패를 해본 사람이 직장에서도 일을 더 잘하더란 것이다. 그러니 화려한 스펙보다 ‘실패의 이력서’를 보고 사람을 뽑으란 것이다. 살아보니 그 말이 옳은 줄 알겠다.



글=배명복 기자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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