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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MB, 토자패를 보시라

중앙일보 2012.09.04 00:57 종합 38면 지면보기


최형규


베이징 총국장


철조망 너머 보이는 비석 하나. 극동지역 중국과 러시아 땅을 나누는 국경 표지석이다. 표면에 ‘土字牌(토자패)’라는 한자가 희미하다. 그 왼쪽엔 ‘光緖帝十二年四月立(광서제 십이년 사월립)’이라고 적혀 있는데 육안으로 보기 힘들다. 표지석을 세운 청 말, 1886년 4월을 뜻한다. 표지석의 위치는 중국 동북지방 지린(吉林)성 훈춘(琿春)시 동쪽 끝에 있는 팡촨(防川)이라는 농촌이다.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북한 3국이 두만강과 동해를 바라보며 국경을 가르는 곳이다. 닭이 울면 3국에서 들을 수 있다(鷄鳴聞三國) 하여 ‘동방제일촌(東方第一村)’이라 불렸다. 토자패가 서 있는 곳은 러시아 땅, 하산이다.



 토자패에는 중국의 한(恨)이 겹겹이 서려 있다. 19세기 열강에 농락당했던 한과 동해로의 진출이 좌절된 한이다. 토자패도 러시아가 T자 형으로 국경을 나눴다 해서 음역해 붙여진 이름이다. 그 한의 사연인 즉 이렇다.



 러시아는 2차 아편전쟁(1856~1860년) 이후 맺어진 중·러 베이징(北京)조약(1860년)에 근거해 1886년 극동지역 국경 협상을 요구했다. 의도는 동해와 맞닿아 있던 중국의 지린성과 헤이룽장(黑龍江)성 동부지역을 빼앗겠다는 거였다. 피폐했던 청은 러시아와 대등한 협상을 할 힘이 없었다. 그래도 딱 하나, 어떻게든 동해로의 출구만은 확보하려 했다. 그래서 구걸하다시피 해서 동해에서 10㎞ 떨어진 지점에 국경을 확정지었다. 당시 청은 이 정도 거리면 두만강을 타고 들어온 밀물을 이용해 제한된 동해 출구는 확보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런데 표지석을 나르던 청나라 군사들이 아편중독(일설에는 술에 취했다는 말도 있다)이어서 동해에서 15㎞ 떨어진 현재의 지점에 돌을 놓고 도주해 버렸다. 당초 확정된 국경선에서 5㎞ 내륙 쪽으로 더 들어온 것이다.



 126년이 지난 지금, 중국은 토자패를 ‘훈춘의 치욕(琿春之恥)’이라 부른다. 훈춘은 여진어로 변방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설욕을 러시아가 아닌 북한의 나진과 선봉을 통해 하려 하고 있다. 훈춘의 취안허(圈河)에서 북한의 원정리~나진항을 잇는 53㎞의 도로 건설, 국가급 경제특구인 ‘훈춘국제합작시범구’ 지정, 옌지(延吉)~투먼(圖們)~훈춘을 잇는 360㎞ 구간의 고속철도 공사. 이 모두는 동해 출구를 확보해 일본과 한국, 러시아를 잇는 새로운 국제경제권을 훈춘 부근에 조성하려는 중국의 거대한 신동방전략이다.



 물론 중국 해군의 동해 진출 전략도 숨어 있다. 모든 게 한국엔 위협이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는 그동안 뭘 했을까. 요즘 베이징 주재 한국 기업인들이 자주 하는 말. “잃어버린 5년입니다. 아웅산 사태 이후 전두환 정권도 이렇게까지 대북 경제교류를 막지 않았지요. MB가 훈춘에 가서 토자패라도 보면 좀 달라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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