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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골퍼엔 편한 용품이 최고”

중앙일보 2012.09.04 00:48 경제 6면 지면보기
데니스코리아의 박노준 대표는 토종브랜드를 앞세워 골프용품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수입 브랜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사진 데니스코리아]


“프로는 몰라도 아마추어 골퍼에겐 편한 용품이 최고입니다.”

데니스코리아 박노준 대표



 골프백이나 골프화 등 골프용품만 10년 넘게 만든 데니스코리아 박노준(47) 대표의 말이다. 데니스코리아는 골프 캐디백·보스턴백, 골프화, 파우치 같은 액세서리, 골프 의류까지 클럽과 볼을 제외한 모든 용품을 자체 브랜드로 만들고 있다. 이 회사의 골프용품은 품질과 합리적인 가격으로 정평이 나 아시아는 물론 세계적인 골프업체들이 제조자개발생산(ODM)방식의 생산을 의뢰해 올 정도다.



 박 대표가 골프용품 회사를 차린 2000년은 박세리 선수가 US오픈에서 ‘맨발투혼’을 발휘하며 우승하면서 국내에서도 막 골프 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때였다. 하지만 당시 국내 골프용품 시장은 체계적인 생산시스템을 갖춘 업체나 토종 브랜드가 없어 수입 브랜드가 장악하고 있었다. 박 대표는 “품질과 토종 브랜드를 갖춘 회사로 성장시켜 수입품이 차지한 우리 골프시장을 지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한 게 경기도 용인에 골프백이나 골프화를 만드는 공장을 세운 일이다. 가방공장에서 골프백을 만들고 양복공장에서 골프복을 만들던 상황에선 엄청난 도전이었다. 처음에는 일본이나 미국 업체에 ODM으로 골프용품을 납품했다. 하지만 회사를 차린 지 3년 만에 토종 브랜드를 육성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래서 한 게 미국 스포츠매니지먼트사 IMG가 갖고 있던 ‘개구쟁이 데니스’란 상표권 매입이다.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골프용품에 데니스란 상표를 독점적으로 사용한다는 조건이었다. 데니스를 브랜드로 선택한 것은 골프를 시작하는 연령대의 전세계인들에게 친숙한 만화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데니스라는 브랜드를 달고 나온 골프백이나 골프화는 시장에서 먼저 인정을 받았다. 주요 백화점의 러브콜을 받으며 골프용품 매장에 입점했고 주요 상권에 낸 단독매장은 수입브랜드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2010년엔 중국 베이징의 소고(SOGO) 백화점에 자체 브랜드로 입점했다. 또 중국 옌지나 영국 유명 백화점의 입점 요청을 받아둔 상태다. 미국에서도 달려왔다. 데니스라는 만화 속 주인공 브랜드를 골프용품으로 상표화하는 데 성공하자 인기 만화인 ‘세서미 스트리트’의 제작진이 상표화를 의뢰해 온 것이다. 세서미 스트리트는 2010년부터 박 대표가 골프용품이나 의류 브랜드로 사용 중이다.



 박 대표는 “수입브랜드 일색이던 골프용품 시장에서 성공한 것은 처음부터 아마추어를 위한 편리함을 가장 중시한 게 주효했다”고 말했다.



그는 골프용품 업계를 주름잡고 있는 나이키나 아디다스(테일러메이드) 같은 글로벌 업체와 똑같이 기능성으로 경쟁해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박 대표는 “골프를 쳐본 분들은 다 알 거다. 입거나 착용했을 때 편한 게 가장 좋은 거다”고 말했다. 또 “프로선수들한테는 고기능성이 필요하겠지만 아마추어 골퍼는 높은 값을 치르고 고기능성 제품을 구입할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데니스가 성능을 완전히 무시하는 건 아니다. 골프화의 경우 외부 충격으로부터 무릎 손상을 방지해줄 수 있는 인체공학적 설계를 채택했다.



골프백의 편리함은 미국 PGA에서 활동하고 있는 최경주 선수가 인정했을 정도다. 박 대표는 “최경주 선수는 연로한 캐디를 위해 가벼운 백을 고르다 우리 제품을 선택했다”며 “가볍지만 내구성이 뛰어나 아주 만족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경주 선수가 사용하는 골프백에는 태극기와 데니스의 로고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개구쟁이 데니스



미국의 시사 풍자 만화가 행크 케첨이 그린 만화 제목으로 데니스는 이 만화 속 주인공이다. 데니스는 금발에 주근깨투성이의 다섯 살짜리 꼬마로 심술궂은 이웃을 보기 좋게 골려주는 귀여운 악동이다. 개구쟁이 데니스는 1951년부터 미국 16개 신문에 연재되기 시작해 세계 47개국 19개 언어로 번역돼 1000여 개의 신문에 실렸고 만화영화와 뮤지컬 등으로 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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