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국 입양된 딸, 친엄마 찾아 한국 왔다가

중앙일보 2012.09.04 00:45 종합 24면 지면보기
김연수는 이제 독자에 대한 믿음이 생긴 듯했다. “내가 이 소설에서 쓰지 않은 이야기를 당신이 읽을 수 있기를”이란 말로 책을 끝맺었다. 소설에서 희재 친부모의 만남과 사랑 이야기를 쓰지 않았지만, 독자들이 그 이야기를 충분히 이해할 거란 믿음이 생겼다고 했다. [김도훈 기자]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심연이 존재한다. 깊고 어둡고 서늘한 심연이다. 살아오면서 여러 번 그 심연 앞에서 주춤거렸다. 심연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건너갈 수 없다.’”


자기 말만 하는 이들, 거기 진실이 있을까

 김연수(42)의 7번째 장편소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자음과모음)에 실린 ‘작가의 말’이다. 인간이라는 개별 존재 사이의 간극, 그 너비는 얼마나 막연한가. 사람 사이의 건널 수 없는 심연이라는 말에 마음이 뚝 떨어졌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기적의 순간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건널 수 없는 다리를 뛰어넘고 가로질러 타인에게 닿는, 경이로운 신비에 대한 증언이다.



 “언어로 진심을 전하는 데는 한계가 있더군요. 처음에는 답답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오해가 오히려 정상적인 상태였어요. 내 관점에서 상대를 보고, 자기 나름의 이야기를 만들다 보니 그런 거였는데…. 소통에 대한 기대를 접고 나자, 내가 말하지 않고 글로 쓰지 않았는데도 그걸 받았다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심연을 건너온 힘은 뭘까.



그는 “사랑의 순간이고 빛의 순간”이라고 말했다.



 “모든 상황이 어떤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데도 계속 살겠다고 한다면 그 힘은 뭘까 그런 생각을 해봤어요. 죽어야 할 사람을 살게 하고, 연결될 수 없는 존재인 인간이 가끔 연결되는 순간, 그게 사랑이에요. 세상이 혼란스럽고 복잡한 것도 다 그 놈의 사랑 때문이에요.”



 거칠게 말하자면 이야기가 비롯된 것도 ‘그 놈의 사랑’ 때문이다. 이야기의 골격은 미국 백인가정에 입양된 뒤 작가가 된 카밀라(한국명 희재)가 친부모를 찾는 여정이다. 카밀라는 친모와 찍은 한 장의 사진과 친모가 다녔던 여고 이름을 들고 항구도시 진남을 찾는다.



 25년을 거슬러 진남에서 대면한 친모 지은의 이야기는 진남의 특산물인 매생이국처럼 쉬 삼키기 어려운 것이었다.



하지만 덧칠한 유화처럼 켜켜이 입혀진 색을 벗겨내기 시작하자 풍문과 거짓에 뒤섞여 있던 엄마 지은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난다.



 “사람의 말은 믿을 수 없죠. 특히 24년 전의 일은 누구도 단언할 수 없어요. 다들 남의 일에 무관심하고, 자기에게 유리한 관점으로 이야기하니까.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조합하면 완벽한 이야기인 진실이 되죠. 그런데 완벽하지 않은 이야기를 진실이라고 믿는 거에요. 진실은 아름답지만 개인의 사정을 봐주지 않아 잔인하니까요.”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진실이다”고 말할 수는 없는 풍문과 증언 속에 진실을 그러잡기 위해 작가는 여러 시점을 오간다. 카밀라가 화자인 1인칭과 지은이 딸인 희재(카밀라)를 ‘너’라고 부르는 2인칭, 3인칭 혹은 전지적 작가 시점까지 자유롭게 넘나든다.



 “카밀라의 시선으로 보면 진실을 알 수 없어요. 누구도 진실을 말하지 않으니까요. 각자의 시선만 있을 뿐이죠. 그러니 엄마인 지은의 시선으로 커질 수밖에 없었죠.”



 더께가 벗겨진 엄마의 사랑은 희재에게 삶의 이유가 된다.



“친부모에게 버려졌다는 사실 때문에 카밀라는 살아갈 값어치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친모의 삶을 추적하며 사랑이 있어 자신이 존재했다는 걸 알곤 완벽한 존재가 되는 거에요.”



 책의 제목은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는 엄마 지은의 말에서 따왔다. 작가는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이 그 누군가를 존재하게 한다는 의미를 드러내고 싶었다”고 했다.



 소설의 문장 중 이 부분이 눈에 들었다. ‘모든 것은 두 번 진행된다. 처음에는 서로 고립된 점의 우연으로, 그 다음에는 그 우연들을 연결한 선의 이야기로. 우리는 점의 인생을 살고 난 뒤에 그걸 선의 인생으로 회상한다.’



점의 우연으로 존재하던 친모 지은의 인생이, 선의 이야기가 되며 심연을 건너 희재에게 와 닿았다.



◆김연수=1970년 경북 김천 출생. 93년 ‘작가세계’에서 시 ‘강화에 대하여’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폭과 깊이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소설가 중 한 명이다. 소설집 『스무 살』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 장편소설 『꾿빠이, 이상』 『사랑이라니, 선영아』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밤은 노래한다』 『7번 국도 Revisited』 『원더보이』 등이 있다. 동서문학상(2001), 동인문학상(2003), 황순원문학상(2007), 이상문학상(2009) 수상.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배경으로 일본에 끌려간 조선인 형제의 이야기를 다룬 장편소설 『바다 쪽으로 세 걸음』을 쓰고 있다. 2014년 출간 예정이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