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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다리’의 역습

중앙일보 2012.09.04 00:32 종합 32면 지면보기


한화와 KIA의 경기가 열린 지난달 26일 대전구장. 5-0으로 앞선 KIA는 9회 초 2사 1, 3루 기회를 잡았다. 한화 투수 안승민이 145㎞짜리 빠른 공을 던지는 순간 1루 주자 이용규가 2루 도루를 시도했다. 한화 포수 이준수는 공을 받자마자 2루로 던졌지만 이용규는 2루에 안착했고, 이용규와 함께 스타트를 끊은 3루 주자 박기남도 홈을 밟았다.

단신들, 도루서 두각



 이용규(27)는 이날 시즌 35번째 도루에 성공하며 2위 LG 박용택(26개)을 9개 차이로 따돌리고 도루 부문 선두 굳히기에 나섰다. 3일 현재 이용규는 36개로 3명의 2위 그룹과 10개 차 1위다. 이용규는 “당시 마운드는 오른손 투수 안승민이 있었고, 도루 저지율이 낮은 이준수가 배터리여서 과감하게 뛰었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KIA가 이중도루에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도루를 성공할 수 있는 수 싸움에서 우위를 점해서다.



 일반적으로 1루에서 2루로 가는 도루는 마운드에 오른손 투수가, 타석에는 왼손 타자가 있을 때 성공 가능성이 높다. 오른손 투수는 투구 시 3루를 보고 던져 1루 주자의 행동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왼손 타자가 서 있을 경우에는 포수가 2루로 송구할 때(포수는 99% 이상이 오른손잡이다) 타자를 피해서 던져야 하기 때문에 타이밍을 놓치기 쉽다. 반대로 3루 도루는 왼손 투수와 오른손 타자가 상대하고 있을 때 주자가 유리하다.



 하지만 실제 경기에서 3루 도루 시도 횟수는 적다. 홈플레이트에서 2루까지 거리는 38.795m인 반면 3루까지는 27.431m다. 2루보다 3루가 약 11.3m 짧아 포수의 송구 도착시간이 훨씬 빠르다. 상대 포수의 도루 저지율도 도루 시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주자들은 도루 저지율이 4할대에 달하는 SK 정상호(0.471)와 LG 윤요섭(0.409), 두산 최재훈(0.400)이 포수 마스크를 썼을 때 잘 뛰지 않는다.



 올 시즌 유독 도루 부문에서 단신(短身) 선수들의 활약이 눈에 띈다. 이용규는 키 1m75㎝로 작은 편에 속하지만, 그보다 큰 LG 박용택(1m85㎝)과 롯데 김주찬(1m83㎝·공동 2위·26개)보다 10개나 앞서 도루왕 등극이 유력하다. 넥센 서건창(1m76㎝·공동 2위), KIA 김선빈(1m65㎝·6위·24개), 두산 정수빈(1m75㎝·7위·23개)도 작은 키에도 도루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2007년부터 최근 5년간 LG 이대형(2007~10)과 두산 오재원(2011) 등 1m80㎝가 넘는 장신들이 도루왕에 오른 것과 비교된다.



 키가 작으면 보폭도 짧아 도루에 불리하다. 일반적으로 도루 시 누와 누 사이를 11발에 뛰어 도착해야 한다. 하지만 이용규는 평균 12발을, 김선빈과 정수빈은 12.5발을 뛰고 슬라이딩을 시도한다. 역대 도루 타이틀을 3차례(88·91·92년)나 차지한 이순철(51·당시 해태) KIA 수석코치는 “도루는 키 순서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도루는 센스, 스피드, 넓은 보폭, 과감성 등 복합적인 요소가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경기 흐름과 상대 배터리의 움직임을 잘 파악할 줄 아는 센스가 으뜸”이라며 “용규는 짧은 보폭의 약점을 타고난 감각과 센스로 극복한다”고 했다.



 이용규는 “평소 상대 투수 버릇을 공부하고, 타이밍을 뺏는 연구를 한다. 슬라이딩으로 최대한 빨리 베이스에 들어가려고 한다”고 도루 비결을 소개했다. 정수빈도 “투수들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피고, 뛰어야 한다는 판단이 서면 재빠르게 움직인다”고 했다. 결국 키에 대한 약점은 많은 공부(노력)와 경험으로 체득한 ‘도루 센스’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얘기다.



김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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