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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국산?" 에르메스 제친 핸드백 보고 깜놀

중앙일보 2012.09.04 00:30 경제 1면 지면보기
새내기 주부 서유리(30·서울 종암동)씨는 지난 2일 퇴근 후 백화점 식품관에 들렀다가 영국에서 살 때 봤던 파스타면 한 봉지(500g)를 한꺼번에 5개 구입했다. 2650원 하는 국산보다 싼, 1800원에 파는 것을 보고서다. 서씨는 “수입 식품은 비싸다고 생각해 자주 사지 않았는데 막상 그렇지 않아 구입했다”고 말했다. 그가 구입한 제품은 영국 식품·생활용품 브랜드 ‘웨이트로즈’. 신세계 측은 지난 7월 이 브랜드 파스타면 1200봉지를 들여왔다가 3주 만에 품절돼 3000여 봉지를 추가로 수입했다. 신세계는 웨이트로즈가 인기를 끌자 품목수를 20개에서 식재료·세제·섬유유연제 등 100개로 늘리고 지난달부터 전용 매장도 따로 만들었다.


씀씀이 줄인 그녀 이런 제품엔 지갑 열었다
불황에 돈 아낀다던 그녀, 이것엔 지갑 열어



 불황 속에서도 ‘가치 소비’가 눈길을 끌고 있다. 소비자들은 일상적인 씀씀이를 줄이면서도 가격 대비 품질이 높은 제품엔 과감히 지갑을 열고 있다. 가격 거품이 빠져 국산보다 오히려 싸진 외제, 그리고 외제에 못지않은 품질을 자랑하는 국산 제품은 소비자들이 먼저 용케 알아보고 ‘완판’된다. 이는 식품·주방용품·생활용품뿐 아니라 의류·패션 같은 분야로도 퍼지는 추세다.



 올 6월 롯데마트는 국내 브랜드보다 10~20% 비쌌던 미국 아이스박스 브랜드 ‘이글루’를 병행수입을 통해 국산보다 30%가량 싼값에 판매했다. 넉넉하리라 여기고 준비한 9000여 개가 두 달 만에 다 팔렸다. 내년엔 올해보다 준비 물량을 1.5배 늘릴 계획이다. 이마트에선 국산보다 캔당 50원 싼 독일 맥주 홀스텐이 잘 팔리고 있다. 국내에 덜 알려진 브랜드지만 전체 수입 맥주 중 판매 순위 7위를 차지하며 선전 중이다.



 의류도 마찬가지다. 신세계백화점에서 올 상반기 청바지 매출은 지난해보다 0.7% 느는 데 그쳤지만 딱 붙는 스키니 청바지 ‘칩 먼데이’는 한 달 평균 2000만원어치가 팔려 나가 지난해보다 매출이 15% 늘었다. 스웨덴 브랜드이면서도 가격은 국산 버커루의 절반 수준인 점이 인기 요인이었다.



 가격은 상대적으로 덜 비싸면서 외국 명품 느낌이 나는 국산 제품들도 대박을 터뜨렸다.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 남성 액세서리 편집매장에서 가장 잘 팔리는 브랜드는 ‘엘도노반’이다. 매장 한 달 매출의 3분의 1인 약 3000만원을 엘도노반 브랜드 하나가 올려준다. 해외 명품 브랜드에 가죽을 공급하는 ‘행롱’사의 가죽을 쓰고, 국내에서 수작업으로 만든 휴대전화케이스·지갑·클러치 등의 제품을 판다. 현대백화점 이성환 바이어는 “국내 브랜드라고 알려주면 놀라는 고객이 많다”고 말했다.



 코오롱패션의 국내 디자이너 가방 ‘쿠론’은 해외 명품이 강세이던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등에서 다른 명품 브랜드들을 제치고 상반기 판매 1위를 차지했다.



명품 에르메스 켈리 백의 분위기가 나는 남아프리카의 최상급 타조가족을 썼다는 점, 국내에서 수작업으로 만든다는 점, 오렌지·블루 등 색감이 독특하다는 점이 대박 요인으로 작용했다.



 신제품 기획도 이런 가치소비 흐름에 맞춰 이뤄지고 있다. LG패션은 1년여 만에 내놓는 신규 브랜드로 남성 비즈니스캐주얼 ‘일 꼬르소 델 마에스트로’를 3일 선보였다. 가격은 다른 국내 남성 캐주얼보다 20~30% 싸면서 마와면을 섞어 거친 듯한 소재와 몸에 착 달라붙는 듯하게 이탈리아 느낌을 내는 옷이 포인트다.



LG패션 김상균 상무는 “싸다고 무조건 사는게 아니라 싸도 가치가 있는 제품을 찾는 소비자들을 위해 이탈리아 감각을 살리면서 가격은

낮췄다”고 전했다. 신세계백화점 임태혁 패션기획팀장은 “합리적인 가격과 좋은 품질을 자랑하는 보석 같은 브랜드를 발굴하는 데 유통

업체들이 사활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



가치 소비



‘이런 것을 사는 게 돈을 가치 있게 쓰는 법’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쪽에는 과감히 지갑을 열고, 그렇지 않은 것은 아끼는 소비행태를 말한다. 호경기 때는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 소비하는 ‘과시 소비’가, 외환위기 땐 무조건 아끼는 ‘아나바다(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고)’ 식의 ‘알뜰 소비’가 유행했다. 요즘은 국산·외제를 가리지 않고 상품의 가격과 만족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합리적으로 소비 판단을 하는 ‘가치 소비’가 확연히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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