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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이야기가 있는 집⑮ 남양주 진접읍 띵굴마님 ‘그곳에 그집’

중앙일보 2012.08.31 04:04 Week& 11면 지면보기
띠리링 전화를 했다. “거기가 땅굴마님 집이지요?” “호호호 까르륵 우하핫! 땅굴이 아니라 띵굴인데요?” 하루 2만 명이 접속하고 신이 나면 댓글 1000개가 좌르륵 쏟아지는 블로그 ‘그곳에 그집’ 띵굴마님은 일단 그렇게 웃어 제켰다. 그 웃음소리에 내 안에 머뭇대던 낯섦과 머쓱함 등속이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사라졌다.


정리정돈 신의 솜씨 … 정갈한 선방같다, 음식물도 꽃이 된다

부엌에서 나물을 무치는 ‘띵굴마님’ 이혜선(40)씨. 볕 잘드는 창쪽에 장독대를 두고 나물과 꽃을 널어 말린다.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에 10㎥(3평)짜리 주말 농장을 얻어두고 거기서 키워 거둬들인 것들이다. 사진 앞쪽 행주·수건을 얹어둔 찬장과 그 옆의 자그만 선반은 모두 충주 시가에서 얻어왔다.


남양주 진접읍에 위치한 띵굴마님 집. 나는 일단 ‘항의’부터 했다. “아니 이렇게 신출귀몰한 살림솜씨를 가졌으면서 언제 띵굴거릴 시간이 있다고 닉네임이 띵굴마님이에요?” 다시 호호호 까르륵 우하핫! “띵굴거린다는 게 아니라 얼굴이 둥그렇다고 남편이 붙여준 별명인데요?” 귀신도 울고 갈 살림솜씨가 띵굴마님의 장기지만 이렇게 웃어 젖히는 것 또한 마님의 특기다. 실제 오프라인으로 만난 ‘이혜선(40)’은 키 크고 손 크고 웃음 크고 맘도 커서 넉넉하고 털털하고 화끈했다. 우리들 점심으로 말린 나물만 일고여덟 가지를 무쳐놓았고 창가엔 가지, 둥글레, 호박, 찻잎, 연밥, 붉고 흰 천일홍을 채반에 그득 널어놓았다. 작업실엔 바느질 거리가 담긴 바구니들이 가지런하고 베란다 정원에 당장 음식에 뜯어 넣을 수 있는 허브들이 오밀조밀 자란다.



띵굴마님의 진정한 살림 솜씨는 정리정돈이다. 아아, 서랍마다 정갈하고 향긋하고 고요하기가 무슨 선방 같고 꽃다발 같고 눈 내린 아침 같다. 그의 수납솜씨는 일목요연하고 일사불란하기가 가히 신의 솜씨다. 내가 블로그에서 처음 보고 혀를 내두른 건 띵굴마님의 냉장고 속이었다. 이건 입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고 사진을 봐야 한다. 원칙은 한 가지다. ‘같은 종류, 같은 소재끼리 늘어놓으면 도구도 장식품이 되고 음식물도 꽃이 된다!’ 냉장고 속 식품들은 절로 주인의 손에 착착 달라붙게 수납돼 있다. 옷, 책, 그릇, 도마, 쟁반, 행주, 곡식, 양념, 화장품, 신발, 우산, 바느질 도구들이 하나같이 얌전히 거기 읍하고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는 형국이다.



있던 물건이 사라져서 서랍을 뒤집어 엎은 경험이 여러 번 있는 나는 슬며시 부아가 차오른다. “아니 이래도 되는 거예요? 살림을 이렇게 잘해버리면 다른 여자들은 어떡하라고!” 마님은 우하핫 웃고는 “그러게! 이러다 여자들의 공적이 되는 거 아닌가 몰라” 한다. 그러더니 얼른 “근데 한 번만 이렇게 정돈해 두면 잘 흩어지지 않아요. 자리에 그대로 채워넣기만 하면 되거든요. 적절한 수납도구를 마련하기만 하면 나머지는 쉽죠. 종류를 확실히 결정한 후 시리즈로 사는 게 좋아요. 같은 소재 같은 종류끼리 키 맞춰 늘어놓기만 하면 끝!이거든요”



50년 전 시어머니가 혼수로 가져온 드레스 미싱은 이제 띵굴마님의 애장품이 됐다. 띵굴마님은 뜨게질도 잘한다. 재봉틀 앞 스툴에 직접 뜬 옷을 입혀뒀다.
그래서 띵굴마님 블로그엔 유난히 질문이 많다. 저 밀폐 유리병은 어디서 샀나? 바구니는? 박스는? 매트는? 띵굴마님은 싫증도 내지 않고 거기 상냥하고 자세하게 대답해 준다.



그가 깨알 같은 살림솜씨를 ‘그곳에 그집’이란 블로그에 올리면서 여자들 입소문에 은근히 오르내린 건 4년 전부터다. “전업주부가 되면서 ‘어차피 내가 할 살림이라면 조금 더 기쁘게, 조금 더 완성도 높게 하자!’고 딱 결심을 해버렸어요. 일종의 마인드 컨트롤이었지요. 까다로운 상사도 없고 눈치 봐야 할 후배도 없잖아요. 뭐든 내 멋대로 내 감각대로 하면 그만이니까 남편 출근하면 나도 집으로 출근한다는 생각으로 프로페셔널하게 살림을 시작했어요.” 그 과정을 일기 쓰듯 블로그에 사진 찍어 올렸다. 팬들이 생겨나면서 살림하는 어깨에 팔랑거리는 날개가 달려버렸다. 몇 달 전엔 『살림이 좋아』라는 책까지 냈다.



‘살림이 좋다’란 선언은 실은 성경보다 더 오래된 진리이고 성경보다 더 널리 설파된 말씀이다. ‘살림이 죽임의 반대말이며 한 집안을 이뤄 살아가는 일’이란 당위적 진실을 모를 자 누구랴! 그러나 동시에 그건 표 안 나고 하찮고 돈으로 환산할 수 없어서 시시한, 그래서 사회적 위계의 맨 밑바닥에 놓인 ‘부엌데기’의 ‘허드렛’ 일이었다. 그래서 주부들은 맥이 빠졌고 ‘살림’에 자기실현이 없다고 판단해 자꾸만 바깥 일터를 기웃댔다. 한때 ‘주부는 전문직이다!’를 온 사회가 합창하는 듯한 분위기도 있었다, 그러나 살림에 재미를 못 붙인 여자들을 집안에 묶어두긴 어려웠다. 그런데 그 안에 즐거움이 넘칠 뿐더러 숙련된 전문직이며 살림이야말로 최고의 자기실현의 장이란 것을 실천적으로 고백한 띵굴마님 같은 혁명가가 등장한 것이다.



방 하나 정리에 30만원을 받는 수납 컨설턴트가 신종직업으로 생겨났다던데, 띵굴마님이야말로 탁월한 정리정돈 전문가다. 거기에 빼어난 가구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그곳에 그집 가구’들은 철저히 가변식으로 직접 디자인했다. 사이즈와 모양을 결정해서 홍대 앞 목공소에 제작만 맡긴다. 무늬도 장식도 없는 무념무상의 디귿자 형태를 크기와 높이를 다르게 짜놓고 활용한다. 밥 먹을 땐 마주 붙였던 테이블을 차 마실 땐 기역자형으로 바꿔놓는다. 거실 앞에 나란히 둔 테이블 둘은 손님이 많을 땐 부엌 쪽으로 끌고 와 10인용 식탁으로 바꿀 수 있고 소파 앞 낮은 테이블은 이불만 깔면 즉석 침대로 변신가능하다. 마님은 또한 공인자격증을 가진 플로리스트이고 요리사에 도예가에 패브릭 디자이너에 핸드드립 과정을 제대로 배운 바리스타이기도 하다. 블로그에 올린 사진을 보면 감각을 지닌 포토그래퍼이고 사진 아래 간단하게 해설해둔 문장엔 예사롭지 않은 위트와 파워와 유머가 넘친다. 최근 그가 올린 유리병 씻는 방법을 보고 나는 한참 웃었다. ‘주둥이가 좁아서 슬픈 유리병’은 분명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에서 온 것이렸다! 단순히 가지런히 정리만 된 살림을 보여준다고 사람들이 무조건 반할 리는 없다. 그의 ‘센스 앤드 센스빌리티’가 사람들을 잡아당기는 것이다.



원래 이혜선의 전공은 의류디자인이었다. 니트 디자이너로 20대와 30대 초반을 워커홀릭으로 일에 빠져 지냈다. 아이러브스쿨에서 초등학교 동창이었고 지금은 건축가가 된 ‘아이’를 만나 부부가 되기로 약조했고 8년 전 혼인했다. 4년 맞벌이 후 마님이 되어 집안에 들어앉은 지 이제 4년째! 그게 뭐가 됐던 일정한 경지에 이르자면 당대에 이루어지는 일은 잘 없다는 게 그동안의 내 관찰이다. 띵굴마님의 살림솜씨도 돌아가신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내림이다. “어머니 별명이 충주의 마샤 (스튜어트)였어요. 화분 100개를 가꾸시면서 계절마다 소파 커버와 커튼을 바꾸고 이불에 풀을 빳빳이 먹이셨지요. 아버지가 충주에서 병원을 하셨는데 요리, 뜨개질, 바느질이 눈이 부신 우리 병원 2층 살림집에 그 시절 이미 사람들이 구경 오곤 했다니깐요.”



덕분에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이미 도넛 반죽을 했고 6칸짜리 서랍장에 네임 스티커를 붙이면서 자랐다. 그래서 지금 자기가 운영하는 블로그 대문에 ‘당신이 매일 하는/그래서 하찮은/그러나 참 값진/살림/나는 매일 집으로 출근한다.’고 척 붙여놓는 사람이 됐다. 그 멋진 부모님을 사춘기에 여의고 띵굴마님은 어린 동생 둘과 함께 일찍 독립했다. 살림의 역사가 남보다 깊을 수밖에!



2 냉장고 속. 같은 종류, 다른 크기의 밀폐용기를 시리즈로 사서 수납하고 이름표를 붙이면 살림이 일목요연하고 일사불란해진다. 3 안방. 침대머리의 헤드보드를 떼어내고 낡은 대들보를 구해와서 붙였다. 베란다 가든에 사시사철 꽃을 피워 남편을 유혹(?)하려는
게 띵굴마님의 속셈! 덕분에 꽃향으로 아침을 맞고 꽃빛에 젖어 잠들 수 있게 됐다. 4 소파 앞 테이블과 같은 소재, 같은 색깔에 크기만 다른 책상 둘을 만들어 거실 창 앞에 놓았다. 거기서 책도 읽고 노을도 본다. 5 띵굴마님은 예쁜 천 모으는 게 취미다. 빳빳하게 다
려 차곡차곡 쌓아두는 것만으로도 작품이 된다.


갓 마흔인 마님의 집엔 낡은 살림이 꽤 있다. 모두 과수원을 하는 충주 시가에서 시부모를 졸라 얻어온 것들이다. 소나무 찬장, 헌 절구, 놋그릇, 낡은 양은 들통까지! 버려진 물건들도 띵굴마님 손을 거치고 나면 아연 담백하고 격조 있는 엔틱으로 변신한다. “시아버님은 절더러 ‘우리 며늘애는 썩은 것만 좋아해’ 하셔요. 과수원 창고 안을 뒤져 헌 물건을 찾아내는 게 정말 즐겁거든요. 그중 으뜸은 그가 요즘도 즐겨 사용하는 오래된 미싱이다. “이 드레스 미싱은 우리 시어머님이 50년 전 혼수로 가져오신 거래요.” 시어머니가 쓰던 물건을 이토록 아껴가며 사용하는 며느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흐뭇하고 기특하다.



이야기 도중 간간이 주옥 같은 깨달음의 말을 날리는 띵굴마님! “역시 사람이든 물건이든 안팎이 다 실해야 하거든요” “살림이란 기술이 아니라 마음이죠” “공간이란 없던 게 생겨도 좋지만 있던 게 없어질 때 더 새로워지더라고요. 잘 버릴 줄 알아야 해요” “제가 부자가 되고 싶은 이유는 순전히 밀폐 유리병 사고 주걱사고 양념통 사고 싶어서예요. 남자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그 재미를 모르겠지요? 우하핫.” 아무래도 난 일간에 집안을 한 번 회까닥 뒤집게 될 것 같다. 띵굴마님과 똑같은 밀폐 유리병 사는 곳도 알아뒀으니까!



글=김서령 칼럼니스트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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