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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 기자의 레저 터치] 거장 예술품을 예술로 안 보는 제주도

중앙일보 2012.08.31 04:04 Week& 6면 지면보기
지난 21일 제주도의회. ‘카사 델 아구아 왜 지켜야 하는가’라는 생소한 제목의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카사 델 아구아(Casa del Agua·물의 집)는 멕시코 건축가 리카르도 레고레타(1931~2011)가 제주도 중문 바닷가에 세운 갤러리 이름이다. 그러니까 이 세계적인 건축가의 작품이 철거될 위기에 처하자 철거를 반대하는 몇몇이 행동에 나선 것이었다.



토론회를 주도한 제주도의회 이선화 의원으로부터 들은 자초지종은 이렇다. “중문에 호텔을 지으면서 건설사가 레고레타에게 설계를 맡겼는데 공사 도중에 부도가 났고, 지금은 새 건설사가 공사를 진행 중인데 레고레타가 설계한 모델하우스(지금은 갤러리로 사용 중·사진)를 철거하려 한다.” 모델하우스를 예술작품으로 보면 철거는 만행이고, 예술작품을 모델하우스로 보면 철거는 정당한 법 집행인 구도인 것이다.



그럼, 레고레타가 누군가. 그는 멕시코가 낳은 세계적인 건축가다. 건축의 노벨상이라는 프리츠커 건축상을 받은 안도 다다오가 가장 존경한 건축가가 레고레타다. 다다오가 프리츠커 건축상을 받을 때 심사위원이 레고레타였다. 레고레타는 10년 넘게 프리츠커 건축상의 심사위원이었다.



카사 델 아구아는 2009년 완공됐다. 세계적인 거장이 죽기 이태 전에 남긴 작품이다. 레고레타는 카사 델 아구아를 위해 노구를 이끌고 제주도를 두 차례 방문했으며, 제주도의 돌을 보고 특히 감탄했다. 그의 작품은 아시아에 두 점 있는데, 하나가 카사 델 아구아고 다른 하나는 일본에 있다. 일본에 있는 건 사유재산이어서 아시아에서 레고레타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곳은 제주도가 유일하다.



그러나 관할 당국인 서귀포시의 생각은 단호하다. 해안선으로부터 100m 안쪽에 영구 시설물을 건축할 수 없으며, 애초부터 철거를 목적으로 지은 가설 건축물이어서 반드시 철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솔직히 실망했다. 제주도는 이미 마리오 보타, 안도 다다오, 이타미 준 등 세계적 거장의 작품이 곳곳에 있어 ‘세계건축투어’가 가능한 예술의 섬이다. 하여 행정 당국의 안목도 높은 줄 알았다. 그런데 멕시코 정부가 항의 성명을 내고 주한 멕시코대사가 제주도를 방문해 철거 중단을 요청해도 제주도 측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21일 토론회에서 건축가 승효상씨는 “세계가 제주도를 주목하고 있다”며 “우리에겐 카사 델 아구아를 파괴할 권한이 없다”고 일갈했다. “규정대로”만 되뇌는 제주도 공무원에겐 그런 권한이 있나 보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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