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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로의 록 밴드에 8만명 열광 음악 마니아 이렇게 많을 줄이야

중앙일보 2012.08.31 04:04 Week& 2면 지면보기
이적에게 여행은…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낯선 사람들 사이에 앉아 있는 것
몬트리올에 머문 지 나흘째 되는 날, 나는 기차를 타고 퀘벡시로 이동했다. 시간만 허락한다면 비행기보다는 기차 여행이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교외의 풍경들, 무언가 선(線)이 다른 산자락과 숲을 보며 다른 대륙에 와 있음을 실감했다. 퀘벡시는 몬트리올과 전혀 다른 느낌의 도시다. 몬트리올이 흔히 볼 수 있는 메트로폴리스의 인상이라면, 퀘벡시는 보다 작고 아기자기하며 유럽의 풍취가 진하다. 기차는 마치 도시에 안기듯이 플랫폼에 들어섰고, 기차에서 내리는 순간 눈부신 햇살과 유럽풍 건축물이 나를 반겼다. 프랑스의 소도시에 온 기분이었다.

캐나다 퀘벡주에 처음 간 가수 이적



퀘벡시의 하이라이트는 구시가지였다. 돌길이 깔린 유럽풍 도시가 아름답게 펼쳐졌다. 17세기부터 영업을 해왔다는 구시가지의 잘 알려진 식당에 들렀다. 전통요리를 추천해 달라고 하니 전통의상을 입은 스태프들이 물소·사슴·멧돼지 등 야생동물 고기요리를 내왔다. 특유의 야생동물 냄새가 조금 역했지만 몇 백 년 전의 식탁에 앉은 기분이 묘했다. 우리 민속촌처럼 인공적으로 구성된 공간은 아니지만, 관광객을 대상으로 전통을 상품화한 흔적은 선명했다. 한 도시의 과거가 현재와 물 흐르듯이 연결되는 것과 이렇게 상품으로서 포장돼 공급되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물론 서울처럼 어느 시점을 경계로 과거의 공간이 거의 완전히 단절되고, 사라져버린 도시에 사는 사람으로서는 이조차 부러울 뿐이지만.



축제의 열기는 늦은 밤 골목에서도 흥건했다. 파리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퀘벡에서는 ‘프렌치’의 깊은 정서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퀘벡시는 식민시대 프랑스와 영국이 늘 탐내던 곳이어서 양국의 점령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퀘벡 여름 페스티벌의 메인 스테이지가 펼쳐지는 ‘아브라함의 평원(Les Plaines d’Abraham)’도 영국군과 프랑스군의 역사적 전투가 있었던 격전지였다고 한다. 이런 과거사를 듣노라니 퀘벡인들은 프랑스와 영국, 그리고 자국 캐나다를 놓고 묘한 감정을 갖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로서는 짐작하기 어려운 감정. 가이드 역시 “퀘벡인은 미국인처럼 애국적이지 않다”며 “물론 캐나다인이기는 하지만, 우린 그보다 먼저 퀘벡인이다”라고 말했다. 캐나다라는 국가와 느슨한 연계를 맺은 자치지역이자, 프랑스어권이기에 프랑스와 강한 심정적·문화적 유대를 가진 퀘벡주는 단답형의 국가·민족 정체성에 익숙한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전혀 기대 없이 퀘벡시에 갔다가 가장 놀랐던 것이 퀘벡 여름 페스티벌의 규모와 라인업이었다. 이름으로 미루어 볼 때 조그맣고 소박한 소도시 축제 정도가 아닐까 시큰둥하게 생각하고 있었건만, 현지에 도착해 프로그램을 받아든 순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열흘에 걸쳐 도시 곳곳에서 수백 개의 음악무대가 펼쳐지는데, 헤드라이너만 대충 훑어봐도 LMFAO, 본 조비, 스크릴렉스, 에어로 스미스, 세라 맥라클란 등으로 쟁쟁했다.



퀘벡시에 도착한 다음 날인 7월 9일. 메인스테이지 헤드라이너가 본 조비였다. 사실 나는 본 조비의 열광적인 팬은 아니다. 나의 학창 시절 록 매니어라고 자부하는 중·고교 남학생들은 본 조비 같은 밴드들을 ‘팝 성향이 강하다’며 은근히 폄하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은 무덤덤하게 야외공연장으로 향했는데, 어마어마한 인파가 운집해 있었다. 주최 측이 추산한 바로는 그날 밤 8만 명이 오직 본 조비를 보기 위해 모였다고 한다.



이제 50대에 접어든 초로의 록 밴드를 향한 관객의 열광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특별한 조명이나 영상 없이 또박또박 성실하게 로큰롤과 블루스에 기반한 대중적인 넘버를 선사하는 그들을 보며, 어린 날의 빈정거림은 슬며시 사라지고 어떤 존경심이 가슴에 차 올랐다. 그리고 이내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드럼 비트에 몸을 맡겼다. 눈부시게 잘 생겼던 본 조비는 이제 주름을 감출 수 없는 중년의 모습이었지만, 그날 생일을 맞은 기타리스트 리치 샘보러 역시 더 이상 매끈한 팔뚝을 자랑하고 있진 않았지만, 지나온 세월을 함께 해준 관객과 입을 맞춰 초기 히트곡 ‘리빙 온 어 프레이어(Living on a Prayer)’를 거대한 합창으로 들려주는 순간, 나이 따위는 밤하늘 저편으로 날아가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며칠 뒤 공연을 펼친 세라 맥라클란은 캐나다를 대표하는 최고의 싱어송라이터다. 사실 갑자기 사흘 더 체류하겠다고 결정한 데는 그녀의 공연을 봐야겠다는 열망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내가 너무도 사랑하는 뮤즈였고, 쉽게 내한공연이 성사되기 어려운 뮤지션이라고 생각했다.



몬트리올 재즈 페스티벌 공연장 앞은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 이렇게 한바탕 사람들 물결이 교차한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미리 공연장으로 향했는데, 원래 프로그램에 없던 어떤 여성가수가 노래를 하고 있었다. 관객들은 시큰둥하게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누고 무대 위의 가수는 약간 무기력하게 개성 없는 포크송을 들려주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자기소개를 하는 순간, 나는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뉴욕에서 온 수전 베가입니다.” 세상에. ‘루카(Luka)’ ‘톰스 다이너(Tom’s Diner)’ 등의 노래로 1980년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수전 베가라니. 그녀가 대형 히트곡을 냈던 것이 87년 일이니 벌써 25년이 흐르긴 했지만, 이렇게 관객에게 무명가수 취급을 받을 줄이야. 인기라는 것에 결코 마냥 초연할 수 없는 대중가수로서, 대중과 공감의 끈이 끊어진 아티스트를 바라보는 것은 너무도 가슴 아픈 일이었다. 짐작건대 수전 베가를 존경하는 세라 맥라클란이 그녀를 초청해 자신의 무대 앞에 세워준 것이 아닌가 싶었다. 부디 수전 베가의 음악생활이 앞으로 더 풍요해지길.



수전 베가를 보내고 나자 곧 세라 맥라클란이 등장했다. ‘국민가수’를 향한 캐나다인들의 애정 어린 환호가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그녀 역시 “데뷔 이후 이렇게 많은 관객 앞에서 노래하는 건 처음”이라며 특별한 밤임을 되새겨주었고, 특유의 영적인 목소리로 감동을 선사했다. 무엇보다 피아노를 치며 앙코르 곡으로 들려준 ‘에인절(Angel)’은 압권이었다. 그 성스러운 전율을 느끼기 위해 나는 무리한 일정 변경을 강행한 것이리라. 역시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었다.



2 몬트리올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몬트리올에서 꼭 보아야 할 곳, 딱 한 군데를 꼽으라면 일단은 여기라고. 노트르담 바실리카 대성당. 3 이제는 부담스러워진 낡은 곡물창고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폭 600미터, 높이 30미터의 초대형 스크린에 영상작품이 상영되는데 그만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4 가끔 ‘엄마’라는 호칭이 튀어나와 혼났다. 가이드 미쉘은 우리가 좋은 것을 보고 반응을 보일 때마다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싶어 열성을 보였다. (왼쪽부터 가수 이적, 가이드 미쉘, 시인 이병률) 5 퀘벡의 그 여름을 오래 잊지 못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그 인간적인 온기를.


하루하루 도시 전체가 다양한 장르의 음악으로 흥청거린다. 가장 큰 공연엔 8만 명의 관중이 운집한다. 퀘벡 여름 페스티벌이 북미 최대 음악페스티벌이란 자랑은 허언이 아니었다. 해질녘만 되면 어디선가 인파가 몰려들어 도로를 메우고 넘실대는 모습. 음악 축제의 진정한 매력은 ‘이 세계에 나 말고도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데 있는 것 아닐까.



일본 도쿄의 선술집에서 함께 술을 마시던 일본 건축가의 말이 기억난다. 그곳은 나무상자를 쌓아 테이블로 쓰는, 40~50년대 분위기를 재연한 술집이었는데 그는 “이런 술집이 오히려 그 시대에는 없었다”고 했다. 지금의 눈으로, 지금의 감각으로 재현한 ‘만들어진 과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만들어진 전통’에 대한 논쟁이야 전통예술 분야에선 오래 있어왔지만, 이제 우리는 도시의 삶 속에서 그 질문에 맞닥뜨리게 됐다. 과거 도시의 삶의 흔적을 어떻게 현재 도시 안에 은은히 남기느냐….



1969년 몬트리올에서 존 레논과 그의 아내 오노 요코가 세계 평화를 위한 퍼포먼스를 했던 퀸엘리자베스호텔의 1742호실 ‘존 레논 스위트’.
어쩌면 답이 될지도 모르는 아이디어를 나는 퀘벡시에서 보았다. 퀘벡시의 강변엔 예전에 사용하던 거대한 곡물저장창고가 늘어서 있다. 어찌나 흉물스러운지 만화 ‘미래소년 코난’에 나오는 디스토피아적 산업도시 ‘인더스트리아’가 떠오를 지경이었다. 퀘벡시가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고심하던 때 미디어 아티스트 로베르 르파주(Robert Lepage)가 기막힌 아이디어를 냈다. 이 창고들을 스크린 삼아 퀘벡의 역사를 담은 콜라주 영상을 상영하기로 한 것이다. 골치 아픈 흉물덩어리가 곧바로 폭 600m, 높이 30m의 초대형 아이맥스 스크린이 됐다. 이제 밤마다 예술적으로 완성도 높은 영상물이 첨단 음악 및 음향효과와 함께 이곳에서 펼쳐진다. 시민들은 강둑이나 언덕에 늘어서 이 특별한 체험에 동참한다. 도시는 파괴 대신 리터치를 고안해냈고, 밤마다 완전히 새로운 품격의 도시로 다시 태어났다. 가상현실과 현실이 행복하게 끌어안는 장면을, 우리도 어쩌면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취재 도움 주신 곳

주한 캐나다관광청 www.canada.travel, 02-733-7740

퀘벡주 관광청 www.bonjourquebec.com



이적



1974년 출생.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대학생이던 95년 패닉 1집으로 가수로 데뷔했다. 그룹 긱스와 카니발, 솔로 활동 등을 거치며 ‘왼손잡이’ ‘거위의 꿈’ ‘하늘을 달리다’ ‘다행이다’ ‘압구정 날라리’ ‘말하는 대로’ 등의 노래를 만들고 불렀다. 2005년 환상소설집 『지문 사냥꾼』을 발표했다. ‘별이 빛나는 밤에’를 비롯한 다수 라디오 방송 DJ와 TV 음악 토크쇼 ‘음악공간’ MC를 맡았다.



이병률



1967년 충북 제천 출생. 시인이자, 여행 에세이 『끌림』의 저자다. 2005년 출간된 『끌림』은 50만 부 이상 팔린 스테디셀러 여행 에세이다. 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고,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바람의 사생활』 『찬란』 등을 출간했다. 최근 또 다른 여행 에세이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를 출간했다. 현대시학작품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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