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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관 교수의 조선 리더십 충청도 기행 (17) 혁신으로 나라 바꾼 세종대왕

중앙일보 2012.08.31 03:11 6면 지면보기
조선왕조를 빛낸 위인들이 충청도 땅에서 이룬 업적과 그들의 유적들은 리더를 꿈꾸는 현대인들에게 소중한 교훈이 될 수 있다. 위인들의 발자취를 답사하다 보면 세계시장에서 통용될 수 있는 한국형 리더십의 본질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이영관 교수의 조선 리더십 충청도 기행’은 고불 맹사성, 추사 김정희, 우암 송시열, 이순신 장군, 세종대왕 순으로 그들의 리더십을 소개한다.


개인적인 흠 있어도 업무능력 뛰어나면 인재 등용

장찬우 기자





경기도 여주에 있는 세종대왕릉(영릉)에 있는 자격루. 세종16년(1434)에 장영실이 제작했다. [사진 이영관 교수]
세종은 즉위 후 조선의 그 어떤 군주도 이룩하지 못한 위대한 업적들을 일궈냈다. 조선의 건국이념인 유교적 가치가 통용되는 정치제도를 정착시켰다.



훈민정음을 창제해 일류문화민족의 우수성을 대내외에 보여줬다. 또한 실리적인 외교노선을 택해 철저하게 국익을 챙겼다. 명나라와 우호관계를 맺기 위해 심지어 명나라 사신이 무고한 백성을 괴롭히는 사건이 벌어져도 덮어버릴 정도였다.



어찌 보면 나약한 군주의 모습이라 볼 수도 있겠으나 이를 바탕으로 그는 조선의 백성들을 괴롭히던 여진족을 토벌해 압록강 유역까지 영토를 확장하는 대업을 이룰 수 있었다. 무모한 싸움을 경계하면서 후일을 기약하고 외교적으로 국익을 확장시킨 정치철학은 본받을 일이라 하겠다. 이 밖에도 농업·과학기술·의학·음악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다방면에 걸쳐 괄목할만한 성과를 일궈낸 세종이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선택한 길은 ‘혁신’이었다. 미래를 내다본 듯 나중에 필요로 하게 되는 것들을 미리, 그것도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 내는 그의 ‘창조적 혁신’은 위대한 조선 건설의 기틀을 제공했다. 이러한 혁신이 가능했던 것은 무엇보다도 우수한 인재들 덕분이었다. 만약 그의 원대한 꿈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인재들이 없었다면 그는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든 공상가에 불과했을 것이다.



 세종은 인재등용에 개방성을 견지하며 권력구조를 탄력적으로 개편하는 지도력을 발휘했다. 엄격한 유교적 이념을 중시했던 조선 초기의 분위기를 감안할 때, 관노였던 장영실을 중용해 과학기술을 발전시킨 조치는 많은 신하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세종대왕릉(영릉) 안에 전시된 천체관측기기
평소 세종은 귀를 열고 신하들의 의견을 수용하는 개방적인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자신이 옳다고 판단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신하들을 설득하고 리드하는 지도력을 발휘했다. 그가 신하들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선택했던 방식은 권위주의에 의한 강압이 아니라 뛰어난 학식과 인품에 기초한 덕치주의였다.



덕치주의란 권력자가 위엄이 있고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할 때에만 위력을 발휘한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최고 권력자가 무능한 가운데 덕치주의를 표방하게 되면 조직의 힘이 결집되기보다는 분산되면서 조직 전체가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



덕치주의는 만인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위대한 통치스타일이지만 권력의 냉혹한 현실을 들여다보면 강력한 리더십을 오래도록 지속시키기 어려운 한계를 지니고 있다. 존경 받는 덕장이 되려면 부하 직원들을 리드할 수 있는 전문가로서의 탁월한 능력과 높은 도덕성과 인품을 겸비해야만 한다. 그렇지 못한 리더라면 무리하게 덕치주의를 실천하는 것을 경계해야 하며 자신의 단점들을 보완해줄 수 있는 유능한 참모들을 시의적절하게 영입해 난제들을 헤쳐 나가는 결단력이 필요하다.



세종은 또 공적인 업무수행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면 사적인 면에서는 흠이 있다손 치더라도 중용하는 과감함을 보여주었다. 우수인재를 선발하는 과정에서 지원자의 단점 때문에 고민하기보다 장점을 보고 인재를 영입했다는 것이다. 우수인재를 영입하는 과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모범적인 정답이 정해져 있지도 않기에 훌륭한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사람 됨됨이를 면밀하게 분석해낼 수 있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





세종대왕은



1397년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22세에 권좌에 올라 한글 창제 등 다방면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겼으며, 휴식이 필요할 때는 아산의 온양행궁을 방문해 피로를 풀곤 했다.



이영관 교수는



1964년 충남 아산 출생. 한양대학교 관광학과와 같은 대학원에서 기업윤리를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코넬대학교 호텔스쿨 교환교수, 국제관광학회 회장, 한국여행작가협회 감사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순천향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저서로 『조선의 리더십을 탐하라』 『스펙트럼 리더십』 『한국의 아름다운 마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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