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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사진 속 빛난 자주 의지 102년 ‘굴욕의 세월’ 넘어 생생

중앙일보 2012.08.31 02:13 종합 2면 지면보기
102년 만에 되찾은 ‘자주외교의 요람’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의 내부 모습이 공개됐다. 현지시간으로 경술국치일인 29일 문화재청 조사단이 미 워싱턴 로건 서클 역사지구에 있는 건물을 찾아 1900년대 초 사진(왼쪽)과 현재를 비교했다. 공사 집무실 겸 접견실로 쓰였던 1층에 걸려 있던 대형 태극기는 사라졌지만 건물 구조와 공간 구성은 한결같다. 문화재청은 정밀 조사를 거쳐 한국 전통문화 전시 및 홍보 공간 등 쓰임새를 확정할 방침이다. [사진 문화재청]



경술국치일에 내부 공개된 ‘화성돈 공사관’
당시 구조 보존 … 원형 복원 쉬워
집 매각한 젠킨스 “한·미 가교 됐으면”

100년 전 빛바랜 사진이 현실이 됐다. 가구와 집기는 바뀌었지만 내부 구조는 그대로였다. 사진으로만 존재하던 ‘대조선주차 미국 화성돈 공사관(大朝鮮駐箚 美國華盛頓 公使館)은 29일(현지시간) 새 주인 대한민국에 실체를 드러냈다. 이날은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경술국치 102주년이었다.



 미국 워싱턴의 백악관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로건 서클 15번지. 이곳에 위치한 4층짜리 건물은 구한말 대한제국이 주미 대사관 용도로 쓰던 곳이다. 빠듯한 나라 살림에도 고종이 거금 2만5000달러를 쾌척해 구입했다. 약소국 입장에서 그만큼 대미 외교가 절박했던 것이다. 그러나 일제가 단 5달러에 건물을 강탈했고 몇 차례 주인이 바뀐 끝에 최근 우리 정부가 소유권을 되찾았다. <중앙일보 8월 22일자 2면> 그리고 이날 국내 문화재 전문가들로 구성된 조사단이 현장을 방문하면서 102년간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렸다. 내부 공개를 꺼리던 집주인이 흔쾌히 가이드를 자청했다.



접견실의 장식품·가구는 새것으로 대체됐지만 천장 몰딩(테두리 장식)은 원형 그대로다. [사진 문화재청]


 이날 오후 내내 정밀 실사를 벌인 조사단은 “원형이 제대로 보존돼 있다”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 문화재 전문위원인 김종헌(건축학) 배재대 교수는 “과거 사진과 비교할 때 공간 구조가 거의 완벽하게 보존돼 있다”며 “벽난로 위 거울이나 소파·탁자 등 가구만 복원하면 완전히 옛날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벽면에 접한 벽난로와 정교하게 깎은 나무를 조립해 만든 창문 가리개, 벽체와 천장을 잇는 몰딩과 장식들, 샹들리에가 걸린 천장 부분의 문양, 나무 계단 등은 1900년대 원형 그대로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집주인 티머시 젠킨스도 “1977년 이사온 이후 내부 골조나 벽체를 허물거나 크게 손댄 적 없다”고 설명했다.



 조사 결과 건물의 1층은 접견실과 식당, 2층은 주거 공간, 3층은 연회공간으로 사용된 흔적이 엿보였다. 1층은 사진으로 알려졌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방을 차지하고 있는 물건들은 달랐다. 벽에 세워진 서랍장이나 태극 문양이 그려진 소파 쿠션 등 옛 사진에서 눈에 띄던 문화재들은 보이지 않았다. 2층은 침실 겸 휴식 공간으로 쓰인 듯 방이 많았다. 3층은 칸막이나 중간 벽 없이 터진 공간으로 외교사절 등을 위한 연회장으로 썼던 것으로 판단된다. 집주인은 2층에 거리가 내다보이는 베란다가 있어 외교관들이 이곳에서 대중 연설도 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사 오고 나서야 한국 공사관인 줄 알고 역사를 공부했다는 젠킨스는 “이 건물이 한국과 미국의 가교 역할을 했으면 한다”는 희망을 밝혔다. 문화재청은 고증과 복원 작업을 거쳐 이 공간을 구한말 자주외교를 알리는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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