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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 찬 고기압에 밀려 … 덴빈, 하루 새 진로 3번 바꿨다

중앙일보 2012.08.31 01:19 종합 16면 지면보기
제14호 태풍 ‘덴빈’이 우리나라를 관통한 30일 전국적으로 피해가 속출했다. 이날 전남 목포시 용당동 도로가 물에 잠기자 시민들이 가게로 흘러드는 물을 막기 위해 모래주머니를 나르고 있다. 오른쪽 위 사진은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한 양식장에서 정전으로 집단 폐사한 참다랑어. 아래 사진은 충남 논산시 광석면의 한 농민이 폭우로 부서진 비닐하우스에서 물에 잠긴 호박을 살펴보고 있는 모습이다. 당초 수도권을 관통할 것으로 예보됐던 ‘덴빈’은 남부지방을 거쳐 동해로 빠져나갔다. [연합뉴스]


제14호 태풍 덴빈이 상륙한 30일 오전 9시쯤 전남 진도군 의신면 창포리. 쏟아지는 비를 뚫고 필사의 구출 작전이 벌어졌다. 마을 앞 하천 둑이 터져 넘쳐난 물이 집 안방까지 차들어오고 있었다. 이장 박창원(57)씨와 진도군 지역개발과 박정현(48)씨는 마을을 뛰어다니며 집 대문을 두드렸다. 주민 대부분이 70~80대 노인으로 거동이 불편한 상황이어서 이들을 업고 대피시키는 것 이외에 방법이 없었다. 박씨 등은 30여 분간 마을을 돌며 노인 39명을 업고 안전한 고지대로 옮겼다. 주민들을 모두 대피시키고 나자 물살은 더욱 거세게 밀려왔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인명 피해가 일어날 뻔한 위기일발의 상황이었다.

● 수도권 관통 않고 강원도로 빠져
● 전남 물폭탄, 2만여 가구 침수·정전
● 경남·충청 농가 “이틀 사이로 태풍 맞긴 처음”



 강풍으로 피해를 준 볼라벤과 달리 덴빈은 곳곳에 물폭탄을 뿌렸다. 전남 진도는 이날 하루 강수량 235㎜로 전국 최고를 기록했다. 하루 걸러 닥친 태풍에 연타를 당한 남부 지방은 엎친 데 덮친 격의 피해를 봤다.



 경남 거창군 가조면 봉산리 농민 이규범(65)씨는 30일 떨어지는 사과를 바라보며 망연자실했다. 이씨의 과수원(3만㎡)은 28일 볼라벤이 휩쓸고 가면서 탐스럽게 익어가던 사과 중 절반이 떨어졌다. 그는 쓰러진 나뭇가지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이틀 만에 들이닥친 덴빈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이씨는 “40년 동안 사과 농사를 했지만 이틀 사이로 태풍을 잇따라 얻어맞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전 11시 7분 전남 영암군 삼호읍에서는 대불산업단지 안 조선 블록 전문업체인 D중공업의 대형 철문이 넘어져 선박 도색 작업을 하던 장모(52·여)씨가 깔려 숨졌다. 인근에 있던 근로자 5명도 다쳤다.



 이날 폭우로 전남 목포에서만 주택 1900여 동이 침수됐다. 무안군 무안읍 8000가구 등 전남에서만 2만여 가구에서 전기 공급이 일시적으로 끊겼다. 완도, 신안 등 인근 도서 지역 1800가구는 볼라벤 때 전기가 끊긴 뒤 아직 복구되지 않아 사흘 동안 암흑천지다.



 덴빈 태풍으로 볼라벤 복구 작업도 제자리걸음이다. 충북 영동군 안내면 용천리에서 인삼 농사(7900㎡)를 짓는 차팔성(59)씨는 28일 태풍 볼라벤이 몰고 온 강풍으로 차광시설 40%가량이 무너졌다. 전날 공무원 10여 명의 지원을 받아 복구작업에 나섰지만 이날은 새벽부터 비가 내리면서 작업을 중단했다. 차씨는 “엊그제는 바람으로, 이번엔 폭우로 두 번의 피해를 봤다”고 말했다. 충북 지역 육군 37사단은 이날 도내 12개 시·군에 1000여 명의 장병을 복구작업에 투입할 예정이었지만 오전에 호우특보가 발효되면서 지원을 중단했다.



 ◆양식어민 보상도 막막=태풍 ‘볼라벤’과 ‘덴빈’의 직격탄을 맞은 전남 지역 양식 어민들은 보험가입률이 저조해 보상받을 길이 막막하다. 이번 두 차례의 태풍으로 전남 지역의 해산물 피해만 100억원대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전남의 양식 어가 8962가구 중 수산물 재해보험에 가입한 어가는 273가구(3.1%)에 불과하다.



 이번 태풍으로 큰 피해를 본 전복 양식 어가는 전체 4619어가 중 164어가(3.6%)만 보험에 가입돼 있다. 재해보험 보험료가 비싼 데다 1년이 지나면 보험금을 받을 수 없는 소멸성 보험이라는 점에서 가입을 꺼리고 있다.



완도군에서 전복을 키우는 정한윤(56)씨는 “1년에 보험료 270만원을 넣으면 2억원까지 보상을 받는데, 큰 양식어가의 경우 시설비만 수십억원이 들어간다는 점에서 효과도 크지 않다”고 말했다.



영동=신진호 기자, 완도=최경호 기자,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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