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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 “초지적재산권의 경쟁이 시작됐다”

중앙일보 2012.08.31 00:58 종합 36면 지면보기
이어령
고문
시대의 흐름을 읽는 더듬이가 남다른 이어령 중앙일보 상임고문은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 판결을 단순한 법정 분쟁이나 기술 다툼으로 보지 않는다. 문명·문화사적으로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예고하는 신호로 해석한다. 이 상임고문은 “우리는 무서운 변화의 한 모서리를 목격하고 있다”며 비(非)기능적·감성적 가치까지도 재산권의 배타적 권리로 인정하는 새로운 지식게임의 시대가 열렸다고 진단한다. 이제 우리 사회는 이 충격을 어떻게 소화 흡수하여 문명·문화의 대전환점을 모색할 것인가. 이 고문은 “지적재산권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부터 크게 바뀌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삼성전자·애플의 특허 소송을 ‘세기적 재판’으로 부른다.



 ▶이어령=기업경영이나 특허법 전문가가 아닌 나 같은 사람이 이렇게 나서게 된 것을 보아도 이 재판이 갖는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그동안 우리 기업이, 우리 사회가, 그리고 각각의 개인이 걸어온 길에 폭탄이 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판결의 정당성 논란이나 천문학적인 벌금 액수에만 눈길을 빼앗겨선 안 될 일이다. 우리 의식과 사회 시스템을 바꾸는 창조적 긴장과 도전 없이 앞날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우리가 이 세기적 재판의 파장을 우회할 길은 없다. 정면으로 마주 바라보며 전독위약(轉毒爲藥)의 역전극을 마련해야 한다.



 -왜 우리의 기존 인식이 문제라는 것인가.



 ▶우리는 오랫동안 ‘청기와 장수’의 문화 속에 살아왔다. 저 혼자 청기와를 만들고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아 그 비법이 후세에 재현되지 않았다. 서양도 중세까지는 특별한 기술을 비방(秘方)으로 숨겨 ‘미스터리’라 불렀다. 이런 관행에서 벗어나 기술의 독점적 가치를 인정하되 그 비법을 공개하자는 사회적 타협이 바로 특허다. 지적재산권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는 창의성과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역사적으로 살펴봐도 독점적 지식과 기술을 어떻게 사회 시스템으로 공개·승화시키느냐에 따라 동·서양의 운명이 갈라졌다.



 -인류 문명사에 특허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특허법의 기원은 르네상스의 발생지인 이탈리아다. 1474년 베네치아에서 공포된 특별조례로 지적 재산에 10년간 독점권을 보호해주자 주변의 창의적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몰려들었다. 르네상스의 불꽃은 그렇게 타올랐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도 그때 양수기 기술로 특허권을 따낸 과학자의 한 사람이었다. 두 번째로 이 특허법을 도입한 나라가 바로 산업혁명의 발상지인 영국이다.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과 아크라이트의 방적기 등이 모두 그 특허법의 산물이다. 그 다음이 독립과 함께 아예 헌법 제1조에 특허 보호 조항을 명시하고, 10년 뒤 영국의 전매조례를 본떠 특허법을 만든 미국이다. 이것이 팍스 브리타니카를 뒤이어 팍스 아메리카나의 세기를 연 힘이다. 이렇게 근대 문명을 창조한 르네상스·산업혁명·팍스 아메리카나의 삼각대 노릇을 한 것이 바로 특허제도요 그 정책이다.



 -특허는 언제나 긍정적으로 기능했는가.



 ▶특허법은 수문(水門)과 같다. 수문을 닫으면 기술과 창조력이 고이지만, 너무 차고 넘치면 해를 끼친다. 열어서 방류해야 한다. 제임스 와트는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산업혁명의 불을 붙였지만 동시에 그 발전을 저해했다는 연구도 있다. 그는 독점권을 연장하면서까지 증기기관을 개발하려는 다른 기업과 기술자들을 억압하거나 저지했다. 독점 동안 증기기관 출력은 연 750마력의 증가에 그쳤지만, 특허가 끝난 1800년부터 4000마력으로 늘어나고 에너지 효율은 다섯 배나 높아졌다. 증기기관차 등 혁신적인 파생상품들까지 쏟아지면서 산업혁명에 박차를 가했다. 이같이 특허법은 너무 엄격해도 너무 약해도 안 되는 양날의 칼이다. 지적 독점과 지적 공유의 모순을 조정하는 사회문화적 인식이 법보다 앞서야 한다.



 -이번 판결이 보호무역주의가 아닌가.



 ▶미국은 시대에 따라 특허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랐다. 링컨 시대에서 대공황까지는 친특허 정책이 주류를 이루었다. 미국 특허청 건물 정면에는 “특허제도는 천재라는 불꽃에 이익이라는 기름을 붓는다”는 링컨 대통령의 어록이 새겨져 있다. 링컨은 그 자신이 배가 좌초됐을 때 빠져나오는 특허를 출원했던 인물이며, 미국의 초석을 닦은 조지 워싱턴과 벤저민 프랭클린도 모두 발명가를 겸했었다. 이런 친특허 분위기를 바탕 삼아 생전에 1300종 이상의 특허를 획득한 에디슨이 출현하고, 전화·비행기 같은 세기의 발명품들이 미국에서 탄생했다.



 하지만 그 부작용으로 독과점 폐해가 나타나고 대공황이 찾아오자 반(反)특허 흐름이 고개를 들었다. 지적 개방과 공유의 분위기가 강해진 것이다. 그러나 레이건 정부 이후 다시 친특허 쪽으로 돌아섰다. 일본과의 경쟁에서 밀리는 자국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특허로 울타리를 치는 전략이 아니냐는 해석도 적지 않다. 리먼 쇼크 이후 미국은 여야 없이 친특허 정책을 지지하는 쪽으로 달려가고 있다. 특허기술을 내세워 스티브 잡스의 애플로 상징되는 정보산업에서 다시 그 활로를 찾으려는 포석으로 보인다. 오바마는 링컨·카터·레이건에 버금가는 친특허 대통령에 속한다.



 - 판결이 과도하다는 비난도 적지 않다.



 ▶미국의 특허법 자체가 특이하다. 미키마우스보호법이니 물밑에 숨어있다 나타나는 잠수함법이니 하는 별명이 붙을 만큼 국제 상식과 위배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이번 삼성이 고배를 마신 트레이드 드레스(trade dress)의 특허는 한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가 다 낯설어하는 개념이다. 직역하자면 상품의 옷으로 상품 자체만이 아니라 그것이 포장하고 있는 외형 일체를 보호하겠다는 의미다. 이를테면 네모 굴리기, 메탈릭한 프레임 등 해당 상품이 갖고 있는 이미지의 요소를 인지하는 감각·감성 등 객관적으로 측정하기 힘든 비(非)기능적인 요소까지도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기술 특허와 달리 전문인보다 오히려 일반인의 감(感)에 맡기는 주관적 심사의 길을 터놓게 된 것이다.



 지적재산권(IP)이라는 표현까지 고쳐야 할 만큼 특허가 이제 지적 기술의 차원을 넘어 감성과 정서의 심미적 산물로 변하고 있다. 상품 개념이 기능에서 소통으로, 사용에서 감동으로 바뀌면서 특허 심사도 예술품처럼 감상하고 감정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우리는 드디어 초(超)지적재산권이라는 새로운 아레나(로마 원형극장의 모래 경기장)에서 경쟁하고 살아남아야만 하는 시대를 맞게 됐다.



 -애플이 이번 판결의 진정한 승자라고 보는가.



 ▶얼핏 그렇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와트처럼 특허분쟁을 일으켜 창조력이 아니라 법으로 경쟁자를 제압하고, 특허료만 챙기는 행위를 경제에선 렌트 시킹(rent seeking)이라 하며, 부정적으로 본다. 일종의 준지대(地代)다. 창의성과 지식이 고갈될수록 특허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특허에 안주하는 기업에겐 미래가 없다. 이번 재판으로 애플은 두 가지 마이너스 이미지를 갖게 될지 모른다. 하나는 ‘기술개발자’였던 가장 창조적인 기업이 ‘기술 보호 감시자’로 바뀔 수도 있다. 한때 애플도 마이크로소프트에 특허소송을 당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애플이 특허를 무기로 경쟁기업을 억압하는 쪽으로 이미지가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 또 하나는 삼성의 안드로이드 OS는 지적 독점을 반대하는 오픈 소스인 데 반해 애플은 NIH의 폐쇄적 기술 독점을 대표한다. 현재 미국에는 스톨맨이나 레시그 등 반(反)지적 독점을 주장하며 정보시대를 리드하는 지식인이 많다. 애플은 삼성을 넘어 그 뒤에 버티고 선, 구글을 위시한 정보 프리를 주장하는 세력과 충돌하기보다는 상생하는 게 지혜로울 것이다. 창의력이 고갈되면 사과도 다른 과실과 마찬가지로 떨어지게 된다. 애플은 와트의 전철을 밟지 않고 그야말로 스티브 잡스가 주장한 인문학적·미학적 창조의 매력으로 소비자를 만족시켜야 할 것이다.



 -지적재산권 보호가 어디까지 확산될 것인가.



 ▶물론 특허를 자유롭게 개방하자는 압력도 존재한다. 페니실린은 인류의 생명을 위해 특허 등록조차 안 했고, 인터넷의 월드와이드웹(www)을 개발한 유럽 입자물리연구소의 팀 버너스 리도 자신의 아이디어를 처음부터 완전 개방했다. 아마존은 원 클릭을 개발해 특허소송에서 이겼으나 소비자들의 여론으로 사실상 굴복한 적도 있다. 그러나 미국은 미키마우스법으로 저작권 보호기간을 50년에서 70년으로 연장했다. 지적 독점에서 공유로 가는 큰 흐름에 역류하는 미국의 경향을 주목해야 한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미국은 175년만에 선 발명을 선 출원제로 수정하는 등 복잡한 특허법을 크게 개정했다. 보통 3년 걸리던 수속을 1년이면 가능하게 되었다. 구글과 스탠퍼드대에서 보듯 미국 대학들은 IP(지식재산) 전담부서를 만들어 학생들이 특허를 얻도록 북돋우고, 그 특허료를 나눠가져 학교 재원을 마련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 사회는 낮은 차원의 ‘반값 등록금’ 목소리만 요란하다. 미국은 대선 때마다 줄기세포 등 새로운 특허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지만, 우리 대선 후보들 가운데 특허의 중요성을 거론하는 경우는 보기 힘들다.



 기업 혼자의 힘으로는 안 된다. 트레이드 드레스가 일반화하는 미래 상품시장에서는 한눈에 어디서 본 듯한 것이 아니라 “저거 삼성 거잖아”라고 한눈으로 알아볼 수 있는 디자인 감각과 창조적 상상력으로 차별화한 제품들을 만들어 가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인간과 인간, 인간과 기계,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그 접촉면에서 일어나는 인터페이스 혁명을 통해 새로운 지적재산의 강국이 돼야 한다. 이미 수년 전 중앙일보는 디지로그의 제안으로 그 길을 제시한 바 있지 않은가.



대담·정리=이철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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