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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물속에서 먹통 되는 명품 어뢰

중앙일보 2012.08.31 00:55 종합 37면 지면보기
정용수
정치국제부문 기자
29일 오후 청와대. 우리 군의 십년대계(十年大計)를 결정하는 국방 중기계획과 국방개혁 기본계획(2012~2030)을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자리였다. 우리 군의 창끝을 더욱 강하고 날카롭게 다듬어 북한에 대한 억지력을 높이겠다는 게 이날 보고의 골자였다. 53개 세부 과제에 대해 이 대통령은 “필요하지”라며 대부분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국방부 계획이 그대로 확정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135분 동안 진행된 보고 말미에 불똥이 예상치 못한 곳으로 튀었다. 최근 해군에서 진행한 장거리 대잠수함 어뢰 ‘홍상어’ 발사 실패를 이 대통령이 지적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배석했던 노대래 방위사업청장에게 “쐈는데 제대로 발사되지 않는다면 그게 무기인가. 관리를 대체 어떻게 하느냐”고 질책했다고 한다.



 홍상어는 북한의 잠수함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장거리 어뢰다. 국방과학기술원과 국내 방산업체인 L사가 2009년 개발해 2010년부터 실전 배치했다. 홍상어는 공중에서 10㎞를 날아가 수중으로 낙하한 뒤 스스로 목표물을 찾아가 폭발한다. 우리 기술로 만든 10대 명품 무기 중 하나로 꼽힌다.



 문제는 해군이 최근 처음으로 실시한 발사 훈련에서 드러났다. 홍상어는 발사 직후 10여㎞ 비행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으나 바닷속으로 들어가자 그대로 가라앉고 말았다. 수중 목표물은 찾지도 못한 채 한 기에 18억~20억원이나 되는 명품 무기는 한순간에 고철덩이가 되고 만 것이다.



 홍상어 개발엔 모두 1000억원이 들었다고 한다. 발사 실험은 모두 네 차례 했다. 그중 세 번 성공해 성공률은 75%를 기록했다. 사고의 근본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보통 유도무기의 경우 발사성공률이 90%대에 이르러야 실전에 배치한다. 90%라는 확률을 얻으려면 20번쯤 실험하는 게 보통이다. 홍상어의 실험 횟수는 그에 훨씬 못 미쳤지만 무리하게 실전 배치한 것이다.



 군은 발사 실험에 너무 많은 돈이 들어가 네 번만 하고 말았다고 한다. 그게 과연 ‘명품’이라는 수식어에 어울리는 결정일까. 명품이라면 더욱 엄격한 품질관리와 실험이 필요하지 않나. 북한은 제작된 모든 어뢰의 폭발장치를 제거한 뒤 발사실험을 하고, 합격한 것만 실전에 배치한다고 한다. 그런 북한군에 맞서 ‘네 번에 세 번은 성공한다’는 홍상어로 무장한 우리 군을 국민들은 과연 미더워할까.



 29일 국방개혁 내용만으론 우리 군은 일격필살(一擊必殺)의 전투력을 갖추는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명품이라는 홍상어조차 여러 발 쏴 우연히 몇 발 맞아주길 바라는 ‘복불복(福不福)’ 수준이다. 이 간격을 어떻게 메울지, 신뢰할 만한 대책을 내놓는 게 국방개혁의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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