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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칼럼] 대선의 조건

중앙일보 2012.08.31 00:49 종합 39면 지면보기
박보균
대기자
대통령의 마지막 카드다. MB(이명박)의 일왕 사과 요구는 그런 성격을 지닌다. 일본 정치는 신정(神政)민주주의다. 일왕(일본은 천황)은 위엄과 불가침이다. 그 정치 문화는 일왕 비판을 극단적 도발로 받아들인다. 여야, 좌우가 따로 없다. 친한·반한파 모두 마찬가지다.



 대통령의 일왕 비판은 할 만하고 해야 한다. 하지만 전략적 아쉬움은 남는다. 독도, 일왕 건은 결정적 카드들이다. 동시다발은 효과가 떨어진다. 대통령의 승부사적 카드는 비장미를 갖춰야 한다. 일왕에 대한 경고는 장엄한 극적 효과를 의식해야 한다. 하지만 그 말이 나왔던 행사는 그렇지 못하다.



 MB의 독도 방문은 강렬했다. 그렇다고 일본의 독도 야욕이 바뀌지 않는다. 한국의 독도 소유도 그대로다. 영토분쟁은 전쟁이나 무력시위로 해결된다. 국제사법재판소로 풀리는 것은 드물다. 알자스-로렌의 영토 곡절이 그렇다. 그곳은 프랑스와 독일의 만성적 분쟁지역이었다. 그 땅은 전쟁 승자가 차지했다. 포틀랜드 영유권 논란도 같다. 1982년 아르헨티나는 영국과의 전쟁에서 패퇴했다. 포틀랜드는 영국 땅으로 유지됐다.



 독도를 둘러싼 전쟁 위험은 지금 없다. 핵심 이유는 한·미, 미·일 군사동맹이다. 미국의 우선적 이해관계는 중국 견제다. 한·일 간 독도 갈등은 미국의 이득과 어긋난다. 그 정세는 계속 유지될 것인가. 불안정한 요소가 상존한다. 불확실한 미래가 다가온다. 일본의 해군력은 한국을 압도한다. 독도 주변의 동해 군사력도 한국이 열세다. 2015년 한·미 동맹은 질적 변화를 맞는다. 전시작전통제권은 우리에게 돌아온다. 연합사 체제는 바뀐다. 다음 대통령 임기 때의 중대 변화다.



 일본은 침략 사과의 역사까지 지우려 한다. 한국을 압박해 고립시키려 한다. 일본은 중국과도 영토분쟁 중이다. 하지만 중국에 대한 대응은 다르다. 탄력성을 잃지 않으려 한다. 중국도 대일 관계를 극단으로 몰아가려 하지 않는다. 유연성을 두려 한다.



 김영삼(YS) 정권 때다. 중국 국가주석 장쩌민(江澤民)과의 서울 정상회담이 있었다(1995년 11월). 두 사람은 일본을 비판했다. 장쩌민은 “내가 어렸을 때 난징(南京)에서 일본군 대학살을 봤다. 일본은 그런 일이 없었다고 잡아뗀다”고 성토했다. 이어서 기자회견. YS는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고 했다. 장쩌민은 난징 경험을 기자들에겐 꺼내지 않았다. 원론적 언급만 했다. 임기 말 IMF 외환위기가 닥쳤다. YS는 지원을 요청했다. 일본은 외면했다. 버르장머리는 고쳐지지 않았다.



 한·일 관계는 최악이다. 한국은 독자적 역량을 키워야 한다. 독도 논쟁에서 중국을 끌어들일 수 없다. 한국은 중국과도 역사·영토 갈등을 겪어 왔다. 중국은 제주도 남쪽 이어도의 관할권 논쟁을 일으켜 왔다. 미국은 한·일 분쟁에 중립이다.



 일본과의 관계 재설정은 다음 대통령 때나 가능하다. 대선 후보들의 외교 전략과 역량이 궁금해진다. 박근혜·문재인 후보의 구상은 단편적으로 소개돼 있다. 서울대 교수 안철수의 역량과 구상은 그의 육성으로 알려진 게 거의 없다. 성형되고 치장된 안철수의 생각과 언어만이 존재한다. 편집(책)과 편성(TV)에 의한 것들이다. 왜 그런 자세를 장기간 유지할까. 그 행태에는 국제정세가 낯설어 준비가 안 돼 있거나, 지나친 영리함이 얽혀 있을 것이다.



 대통령의 외교적 언행은 나라의 운명을 결정한다. 대통령의 언어는 현상 타파의 본능을 갖고 있다. 상황 돌파와 상대방 자극은 엄청나다. 외교 무대는 보좌로 해결할 수 없다. 리더십 역량이 집결되는 분야다. 하지만 대선 이슈에서 외교·국방 문제는 뒤로 밀려 있다. 대선 무대는 초라하고 왜소해졌다.



 동북아 정세는 소용돌이다. 한 세기 전과 비슷하게 짜이고 있다. 구한말 선조들이 탄식했던 ‘천하대란(天下大亂)의 엄중한 정세’다. 한국은 그때와 다르다. 부국강병은 경이적이다. 중국의 위세는 부활했다. 그러나 한반도의 지정학적 속성은 그대로다.



 다음 대통령 임기 중에 한반도 질서는 본격 재편된다. 한·미 동맹은 재구성된다. 북한 김정은 세습체제의 지속성이 판가름난다. 일본은 달라져 존재하고 중국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동북아 3국은 치열한 외교·군사 경쟁을 벌일 것이다.



 리더십의 역사적 상상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지도력 수준이 민족의 장래를 판가름한다. 망국의 수난사는 외교 비전을 갖춘 지도자상을 요구한다.



대선 풍경은 바뀌어야 한다. 한국의 생존 책략은 수출과 외교다. 후보들의 국정 역량을 경쟁시키고 따질 시간이 많지 않다. 그 점검은 유권자의 핵심 권리다. 외교·국방 문제가 대선 쟁점의 윗자리로 올라가야 한다. 대선의 성공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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