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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미당·황순원 문학상] - 본심 후보작 지상중계 ⑩·끝

중앙일보 2012.08.31 00:41 종합 27면 지면보기
전위의 시, 서정이 살포시 스며들다



시 - 황병승 ‘앙각쇼트’ 외 9편




시인 황병승은 ‘한국 시의 뇌관’이었다. 시로 다 말해 더할 말이 없다는 그의 세 번째 시집이 올 가을 나온다. [사진 문학과지성사]


시인 황병승(42)은 한국 시단의 ‘문제적 작가’다. 소위 ‘미래파’로 분류되는 한 극단(極端)의 상징인 동시에 2000년대 이후 한국시의 변화 한복판에 서 있는 작가여서다.



 2005년 세상에 나온 그의 첫 시집 『여장남자 시코쿠』가 던진 충격파는 컸다. 문학평론가 이광호가 “황병승은 동시대 한국 시의 뇌관이다”라고 평했듯 기존의 문법을 넘어선 황병승을 둘러싼 논란은 팽팽했다. 『여장남자 시코쿠』는 최근 문학평론가 75명이 뽑은 한국 대표시집에 1990년 이후 출간된 시집 중 최승호 『세속도시의 즐거움』(1990)과 함께 이름을 올렸다.



 자신의 시를 둘러싼 뜨거운 논란에도, 해석 불가의 시인이라는 세간의 평에도 정작 황병승 자신은 이렇다 저렇다 말을 더하지 않았다. 6년 전 미당문학상 본심 후보작 인터뷰와 똑같이 이번에도 그는 “자신의 시에 대해 말해야 할 때가 제일 싫다”고 했다.



 “내 시집에는 메타시들이 여러 편 있다. 시로써 충분히 이야기했다고 생각한다”는 변(辯)으로 입을 닫았다. 왜 시를 쓰는지 설명하고, 시가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은 부질없는 이야기란 것이다. 모든 걸 독자의 몫으로 남기겠다는 뜻이리라.



 그는 설명하지 않았지만 그의 시는 변화의 시기를 건너는 듯하다. 예심위원들은 그의 시에 등장하는 시적 주체가 자신을 향하며 성찰하는 모색기를 거치고 있다고 평가했다. 주로 외부로 방향을 틀었던 그의 시에서 자기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예심위원인 류신 중앙대 교수는 “황병승의 시에 서정이 들어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수투성이의 첫사랑을 훑은 ‘커튼 뒤에서’ 같은 작품이 그렇다. ‘너무 많은 자들이 상처 입었고 너무 많은 자들이 떠나갔다’고 읊조렸다.



 방향을 바꾸는 건 앞으로 나갈 속력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말이기도 하다. 전위의 최극단에 서있는 그가 머뭇거리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그런 탓일 테다. 예심위원인 송승환 시인은 “황병승이 자기 언어를 세공화하며 다소 정체되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올 가을 그의 세 번째 시집이 출간될 예정이다. 절판됐던 첫 시집 『여장남자 시코쿠』도 복간된다. 예심위원인 조재룡 고려대 교수는 “황병승의 경우 첫 시집의 임팩트(충격)가 워낙 강해서 이를 어떻게 메워가는 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5년 만에 나오는 시집의 행보가 궁금해지는 이유다.



하현옥 기자



◆황병승=1970년 서울 출생. 2003년 ‘파라21’로 등단. 박인환문학상(2010) 수상. 시집 『여장남자 시코쿠』 『트랙과 들판의 별』.





가까이 가고픈, 그러나 닿을 수 없는 …



소설 - 한강 ‘에우로파’




한강은 단편소설을 잘 쓰지 않는다. 쓰고 싶을 때 쓰고 오랫동안 묵혀둔다. ‘에우로파’도 천천히 쓰인 소설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에우로파(Europa)’는 목성의 달이다. 이 위성은 표면이 흠집 하나 없는 매끄러운 얼음으로 덮여있다. 수많은 운석이 에우로파에 떨어져 자국을 남기지만 얼음이 녹았다가 다시 얼기를 반복하면서 흔적을 없앤다. 그러니 에우로파는 자기치유 능력이 있다.



 소설가 한강(42)은 에우로파에 대해 이렇게 썼다. ‘지구의 달처럼 하얗지만 지구의 달처럼 흉터가 패지 않은 달, 내 삶을 끝까지 살아낸다 해도 결국 만질 수 없을 차가움.’ 황순원문학상 본심 후보에 오른 단편소설 ‘에우로파’는 상처를 지우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인간의 조건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은 빨간 구두에서 시작됐다. 작가는 지난해 가을 처음으로 빨간 구두를 샀다. “그냥 괜히 사봤어요”라고 했다. 검정색 원피스에 검정색 구두를 신고 사진 촬영을 위해 스튜디오에 나타난 작가가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신고 나가긴 멋쩍어서 울적할 때마다 한 번씩 꺼내 발을 넣어보곤 했어요. 그러다가 이런 구두를 신고 다니는 사람은 누구일까 생각했죠.”



 주인공인 ‘나’는 생물학적으론 남성이지만 여성이 되고 싶다. 친구 인아는 그에게 화장을 시켜주고, 옷을 빌려주고 하이힐을 신겨준다. 한편, ‘위대함이 결핍돼 있다’며 자신의 속물성을 자책하는 인아는 화염병이 난무하는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며 탈출구를 찾는다. 처음엔 빨간 구두를 신은 인아처럼 되고 싶었고, 이제 ‘나’는 노래하는 인아를 사랑하게 된다.



 “경계 위에서 흔들리는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나’는 남자이지만 여자가 되고 싶고, 그러면서 또 여자를 사랑해요. 인아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고통받고요. 경계 위에서 흔들리는 사람끼리 서로 상처를 입히기도 하고, 서로를 바라보기도 하고, 한번쯤 껴안아보기도 하는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소설에서 ‘나’와 인아는 멀어질 수도, 닿을 수도 없는 거리에 있다. 둘은 마치 ‘오래된 연인’처럼 서로를 가장 잘 아는 듯 하지만 정작 상대방이 서 있는 그 경계의 낭떠러지는 가늠할 수 없다.



 “인간이 격절(隔絶) 속에 살아가고 있는 거죠. 얼음의 별인 에우로파는 상처의 흔적을 지우고, 혼자 돌잖아요. 우리는 따뜻한 몸을 가진 사람이라 상처를 없앨 수는 없어요. 그리고는 더 이상 거리를 좁히지 못한 채 그렇게 밖에 살지 못하는 거죠.”



 하지만 작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다고 말하는 것 같다. 아무리 염원해도 ‘에우로파’가 될 수 없지만, 우리가 ‘달’이 될 수밖에 없는 숙명임을 서로 잘 알기 때문이다. 작가는 인아의 입을 통해 ‘프랙탈’의 개념을 이야기 한다. 몸 속의 혈관, 하천의 지류, 나뭇잎 속의 연맥이 모두 닮았다는, 그래서 우리의 삶이라는 게 근원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다음의 인아의 목소리는 한강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지하철 출구를 빠져 나올 때마다 생각하게 돼. 함께 수학적인 곡선을 그리며 걷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중략) 이상하지 않아? 그 사람들은 결코 내 삶의 안쪽으로 들어올 수 없고, 나 역시 그들의 삶으로 들어갈 수 없는데, 함께 그 선들을 그리고 있다니.’



김효은 기자



◆한강=1970년 광주광역시 출생. 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한국소설문학상·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이상문학상 등 수상. 소설집 『여수의 사랑』, 장편소설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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