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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밥집 주방장·점원 … 되찾은 내 청춘 명함이예요

중앙일보 2012.08.30 03:13 2면
그들은 더 이상 ‘황혼의 인생’이 아니다. 고령자기업에 들어가면서부터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직원 대부분이 노인인 식당에서 주먹밥, 국수를 만들어 판다. 카페에서 음료와 와플을 만들기도 한다. 큰 돈을 벌진 못하지만 “아침에 출근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한다. 이들은 일할 기회를 잡아 삶의 의미를 되찾은 행운아들이다.


일이 있어 행복한 시니어들

글=조한대 기자 , 사진=장진영 기자





‘청춘 주먹밥’ 직원 유경임(왼쪽)?김정숙씨가 손수 만든 주먹밥을 들어 보이고 있다.
지난 17일 낮 12시. 서울지하철 석촌역 8번 출구 지하에 있는 ‘청춘 주먹밥’은 분주했다. 주황색 유니폼을 입고 손님을 맞는 사람들은 만 60세가 넘은 이들이다. 두 사람은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기 바빴고 한 명은 손님에게 주문을 받았다. 이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 중 젊은이라고는 송파노인복지센터 직원 한 명뿐이었다. 종업원 대부분이 노인인 이유는 이곳이 노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만들어진 고령자 기업이기 때문이다.



 종업원 6명이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8시까지 오전·오후조로 나눠 근무한다. 주 메뉴는 주먹밥과 국수. 주먹밥은 참치마요네즈·참치김치·멸치·고추소고기 등 종류가 다양하다. 가격은 1500~1900원이다. 국수를 추가하면 4800~5300원에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  단골 손님인 문형인(51)씨는 “음식 맛이 한결같고 깨끗하다”며 “직원들도 항상 친절해 두 달 동안 매일 같이 여기서 점심을 해결했다”고 말했다.



 이곳은 지난 3월 문을 열었다. 지난해 11월 송파노인복지센터에서 서울시 고령자기업 육성지원사업에 이 사업을 신청했다. 지원금 6400만원을 받아 장소를 구하고 인테리어 작업을 했다.



 개장 때부터 이곳에 다닌 김정숙(67)씨는 16년 동안 한정식집을 운영했던 음식점 전문가다. 자녀들을 모두 대학에 보낸 뒤 홀가분한 마음으로 식당을 처분했다. 쉬면 좋을 줄 알았는데 3, 4년이 흐르자 도둑같이 우울증이 찾아왔다. 김씨는 “아침에 일어나도 할 일이 없었다”며 “거울 속에 너무나 늙어버린 내 얼굴을 보면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친구를 만나도 별로 재미있지 않았다. 손자를 봐야 하는 친구들 때문에 일찍 헤어지기 일쑤였다. 다시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학교급식도우미 자리를 잡았다. 한 달 손에 쥐는 돈은 20만원이었다. 그마저도 방학 때는 쉬어야 했다. 1년을 일했지만 실제로 일한 기간은 7개월에 불과했다. 마음 속으론 ‘커피숍 같은 곳에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사치일 뿐이었다. 괜찮은 일자리가 도무지 없어서였다. 그러다 송파노인복지센터에서 청춘주먹밥 직원을 뽑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경쟁이 치열했다. 5명을 선발하는데 30~40명이 몰렸다. 한정식집을 운영했던 경험 덕분이었을까. 그는 선발자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이 사업에 참여하면서 그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 무료함 대신 활기참이 생겼다. 50만원 월급으로 남편, 손자에게 용돈을 주고 친구들에게 밥을 사는 즐거움은 덤이다. 그는 “젊은 사람처럼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을 할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점이 정말 행복하다”며 “친구들이 나를 무척 부러워한다”고 자랑했다.



 서초구 방배노인종합복지관 1층에는 고령자기업 ‘2080 THE COFFEE #’이 있다. 만 60세 이상 노인들이 커피와 간단한 간식을 만들어 파는 카페다. 이곳은 2010년 개장했고 복지관측에서 청춘 주먹밥과 같이 서울시 사업 지원금을 받아 지난 4월 증축 개소했다. 4명이었던 직원도 12명으로 늘렸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운영하며 4명 1개조로 한 주에 이틀 출근한다.



 직원 이병영(62)씨는 전직 외교관이었다. 25년 외국 생활 중 대부분을 중남미에서 보냈다. 국가보안시설물관리회사 대표도 지냈다. 이씨는 퇴직 후 2, 3개월 간 골프도 치고 해외여행도 다니며 실컷 노년의 여유를 즐겼다. 그러다 어느 순간 허전함을 느꼈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없구나’라고 생각하니 씁쓸했다. 이씨는 “목적 없이 무의미하게 인생을 보내기보다는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후 지역 봉사활동을 하며 무료함을 달랬지만 그래도 뭔가 채워지지 않는 게 있었다. 그러다 이곳 바리스타에 도전했다. 2주 교육 과정을 거쳐 ‘전문직’을 갖게 됐고 2년 동안 이 일을 해오고 있다. 그는 “노인들에게 최고 복지는 일자리”라고 힘주어 말했다.



 방배노인종합복지관 임은정(30) 복지3팀장은 “젊은 사람들이 우연히 이 카페를 방문했다가 세련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어르신들을 보고 놀라는 경우가 많다”며 “고령자들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노인에 대한 사회 인식도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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