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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가해자의 ‘주홍글씨’만 중요한가

중앙일보 2012.08.30 00:30 종합 34면 지면보기
기선민
중앙SUNDAY 기자
“피의자의 인권이 피해자의 고통, 국민의 알 권리보다 중요한가.”



 24일 서울 중곡동 부녀자 살인사건 용의자 서진환의 현장검증이 실시되자 트위터 등에선 여론이 들끓었다. 그가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철저히 가리는 조건으로 현장검증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그는 체포된 후부터 줄곧 “얼굴이 언론에 공개됐느냐”에 촉각을 곤두세웠다고 한다. 이런 태도에서 재범행 가능성이 엿보였다고 하면 신경과민일까. 어쨌든 범행 당일 비아그라까지 챙겨먹고 주부를 성폭행하려다 무참히 살해한 전과 11범의 얼굴은 끝내 공개되지 않았다.



 무죄추정 원칙, 국가인권위원회 권고 등이 아니더라도 피의자의 인권이 지켜져야 한다는 사실쯤은 누구나 안다. 그런데도 사람들 마음 한 구석에선 뭔가 울컥 치밀어 오른다. 가해자의 권리에만 지나치게 신경쓰다 보면 피해자의 고통이 간과되는 결과가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교육과학기술부와 일부 진보 성향 교육감들 사이에 벌어진 논란도 이런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폭력 사실을 생활기록부에 적어 입시에 영향을 미치게 하는 게 맞느냐를 놓고 팽팽히 맞선다. “한 번 실수로 평생 낙인을 찍는 건 비교육적인 처사”란 일부 교육감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그런데 그들에게 묻고 싶다. 가해자에게 ‘주홍글씨’가 새겨지는 걸 우려하는 만큼 그동안 교육현장에서 피해자의 상처와 고통을 배려해 왔는가. 학교폭력에 관한 논의의 순서가 어쩐지 바뀐 느낌이 들어서 하는 말이다.



 학교 폭력과 관련해 학부모들 사이엔 속담을 빗댄 오래된 푸념이 있다. “절(학교)이 싫지도 않은데 왜 중(피해 학생)이 떠나야 하나.” 아직까지도 적지 않은 학교폭력 사건이 피해자가 전학 가는 걸로 봉합되는 현실을 투영한 말이다. “당사자끼리 해결할 문제”라고 방관하는 주지 스님(교장과 교사), “성장기에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는 상대방 중(가해 학생과 부모)의 뉘우침 없는 태도는 피해자를 두 번 울린다. 절이 싫지도 않은데 중이 떠나야 하는 모순이 생기는 것이다. 현실이 이런데도 가해 학생 권리부터 챙기는 건 과연 합리적인가.



 곽노현 교육감은 또 최근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숨막히는 경쟁교육을 엄벌하지 않고 아이의 미래를 엄벌한다고 학교폭력이 해결되겠느냐”고 했다. 과열경쟁이 학생들의 폭력성으로 발현된다는 주장엔 부분적으로 동의한다. 그렇지만 구조적 요인이 크다고 잘못을 저지른 사람의 책임이 가벼워지는 건 아니다. 벌을 주자는 건 아이의 미래가 아니다. 아이가 저지른 행동이다. 행동엔 책임이 따른다는 걸 배우는 건 민주사회 시민교육의 기본이다.



 ‘순간의 실수’로 판단되는 사소한 위반은 교사 재량에 맡기면 된다. 비행 학생이 개선 노력을 할 경우엔 교사 소견을 첨부해 이 또한 입시에 반영되도록 할 일이다. 학생들이 행여 이번 논란을 학교폭력에 대한 관용의 신호로 받아들이진 않을까 우려된다. 피해자 중심으로 사고하는 건 보수와 진보를 가릴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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