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설] 반발 여론에 밀려 무산된 피임약 재분류

중앙일보 2012.08.30 00:01 종합 34면 지면보기
피임약 재분류 방안이 각종 단체들의 반발 여론에 밀려 무산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 6월 발표했던 피임약 재분류 방안에 따르면 사전피임약은 의사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으로, 사후에 먹는 긴급피임약은 일반의약품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기존에는 이와 반대로 사전피임약은 일반의약품, 긴급피임약은 전문의약품이었다. 그동안 식약청의 재분류 방안에 대해 많은 전문가와 공익 관계자들은 국민건강 차원에서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피력했고, 식약청도 여전히 새 분류안의 방향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그 이유는 이렇다. 호르몬 의약품인 피임약의 습관적 복용은 부작용을 낳는다. 특히 사전피임제의 경우 21일간 지속적으로 먹어야 효능이 있기 때문에 장기 복용이 불가피한 약품인데, 장복에 따라 혈전증과 심근경색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손쉬운 접근을 막을 필요가 있다. 또 이 약은 어린 여학생들이 생리주기 조절용으로 아무 위기의식 없이 먹고 있기 때문에 주의 환기가 필요하다. 반면에 긴급피임약은 불의의 임신을 막기 위해 사흘 안에 먹어야 하기 때문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종교계와 여성계, 의사와 약사 간의 입장과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많은 논란을 낳았다. 또 긴급피임약의 일반의약품 분류로 청소년들의 성생활이 문란해질 것이라거나 사전피임약의 전문의약품화로 낙태가 늘어날 것이라는 등의 갖가지 반발 여론이 확산됐다. 그동안 여러 차례 공청회를 열고 의견수렴을 했지만 각자 상반된 견해에서 물러나지 않자 식약청은 3년간 더 모니터링하겠다며 물러섰다.



 피임약의 경우 출산과 낙태 등 사회문제와 연결돼 있고, 기존의 사용 관행과 문화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기는 하다. 하지만 국민건강과 관련된 정책을 반발의 목소리가 크다고 해서 ‘원칙’에서 물러선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떤 정책이든 원칙은 고수하면서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혼선은 그때그때 적절하게 대응해 나가야 한다. 여론에 밀려 국민건강 우선의 원칙을 저버린 식약청의 결정은 그래서 아쉽다.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