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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개 시·군·구 분만실 0 … 분만병원 절반 폐업 위기

중앙일보 2012.08.29 03:00 종합 4면 지면보기
애 낳으러 버스를 갈아타고 한 시간 이상 간다. 그것도 수도권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 경기도 여주군 임신부 홍모(30)씨는 이천시 양정분산부인과로 원정진료를 다닌다. 여주에 산부인과가 두 개 있지만 애를 받지 않아서다. 만삭의 몸으로 시내버스를 타고 여주터미널로 가 버스를 갈아타고 이천으로 간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한 시간 이상 가기가 버겁다. 환승과 대기시간을 합하면 1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왕복 세 시간이다. 10여 차례 이상 이렇게 원정진료를 다녔다. 홍씨는 “이달이 산달인데 진통이 언제 올지 몰라 막막하다”고 했다. 여주군에는 2년 전 마지막 남은 분만 산부인과가 분만을 포기했다. 여주군이 나서 운영비를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병원 측이 거절했다. 매년 900명가량의 임신부가 이천·원주·분당 등지로 원정을 간다. 여주군 이현숙(49) 보건소장은 “ 군내 네 명의 산부인과 전문의들에게 분만 전문병원 공동개원을 권유했으나 허사였다”고 답답해했다.


붕괴된 출산 인프라

 전국에서 분만 산부인과가 없는 시·군·구는 54곳이다. 지난해 이들 지역의 신생아는 1만8769명(보건복지부 자료). 인접 시·군이나 대도시로 원정을 다닌 ‘출산 난민’이다. 지난해 출생아(47만1265명)의 3.91%다. 전남 해남군 등 분만 산부인과가 한 곳뿐인 시·군·구 32곳에서도 산부인과가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분만이 의사들의 기피 분야로 굳어지면서 ‘출산 인프라’가 무너지고 있다. 분만 산부인과는 2007년 전국 1011곳에서 지난해 763곳으로 줄었다. 이 중 실핏줄 격인 산부인과 의원은 710곳에서 484곳이 됐다. 분만실을 운영하려면 최소한 월 20건은 애를 받아야 하는데 763곳 중 15건 이하인 데가 361곳으로 이들도 폐업 위기에 몰려 있다.



 부산 강서구와 같은 대도시에도 분만실이 없다. 강서구 보건소 김진씨는 “구내에 분만 산부인과가 없는 지 오래됐다. 새 아파트 단지가 생기면 달라질까 기대한다”고 말한다.



 산부인과 전문의도 줄고 있다. 2000년 250명이던 신규 산부인과 전문의는 올해 90명으로 급감했고 남자는 10명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산부인과 의사의 45%가 50세가 넘을 정도로 고령화돼 애를 받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출산 인프라 붕괴의 원인은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인 데다 고령 산모가 늘면서 의료사고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낮은 출산율이 출산 인프라를 허물고 인프라 붕괴가 출산을 어렵게 하는 악순환에 빠졌다.



 대한산부인과학회 신정호(41·고려대 구로병원 산부인과 교수) 사무총장은 “이대로 가다간 10년 후에는 외국에서 의사를 수입해야 할 것”이라며 “무과실 분만 의료사고 배상금 재원을 의사들에게 부담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경북 상주시 손성락(54) 산부인과 원장은 “문을 닫지 않고 명맥을 유지하는 산부인과의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게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일본처럼 광역 자치단체에서 의과대학 본과 3, 4학년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대신 그 지역 산부인과에서만 근무하는 ‘지역공공의사제’를 도입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중앙일보·인구보건복지협회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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