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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 당한 박근혜 대통합 꽃다발

중앙일보 2012.08.29 01:33 종합 8면 지면보기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28일 청계천 전태일 동상에 헌화하려 하자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장이 막고 있다. [뉴시스]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전태일 재단 방문이 28일 유족들의 거부와 시위대의 저지로 무산됐다. 대선 후보로 결정된 다음 날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하고 권양숙·이희호 여사를 예방하는 등 ‘국민대통합’ 행보에 나선 박 후보가 처음으로 거센 반발에 부딪히게 됐다.

전태일 재단 방문, 유족 반대로 무산 … 박 캠프 “그래도 계속할 것”



 ‘전태일’(1948~70)이란 이름은 노동운동을 상징하고 있다.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재단사로 일하던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기인 1970년 11월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근로기준법 화형식과 함께 분신자살했었다. 박 후보는 당초 재단을 방문해 전태일 열사와 어머니 이소선 여사를 추모하고 분신 당시 옆에 있었던 친구 김영문씨, 청계피복노조위원장 출신인 최종인(전태일재단 회장)씨 등과 면담할 계획이었다. 박 후보 측근은 “이른바 ‘박정희 시대’의 피해자들에게 화해의 손길을 건넴과 동시에 산업화·민주화 세력을 함께 안고 가겠다는 의미가 있었다”고 말했다.



 박 후보가 오전 10시30분쯤 서울 종로구 창신동 전태일 재단에 도착하자 전태일 열사의 친구인 김준용 국민노동조합총연맹 자문위원이 박 후보를 안내해 사무실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재단 입구에 나와 있던 쌍용차 노조원들과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단체연대회의 등 시민단체 회원 60여 명이 “노동권은 외면하면서 전태일을 이용하지 말라”고 소리치며 입구를 막아섰다.



 전 열사의 동생 전태삼씨도 유족 성명서를 낭독하며 “쌍용차 문제 등 노동자 문제부터 시정하고 오는 게 순리다. ‘전태일 정신’이 없이 재단을 찾아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전 열사의 동생인 민주통합당 전순옥 의원도 성명을 내고 “5·16 쿠데타와 유신, 군사독재에서 지금의 정수장학회까지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없다면 지금의 말과 행동은 그 진실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박 후보 측은 당초 김준용 자문위원과 접촉해 재단을 방문해도 좋다는 말을 들었으나 유가족들은 “사전에 박 후보의 방문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고 했다. 김준용 위원은 기자들에게 “재단이랑은 얘기가 됐는데 (유가족이랑 조율이 안 돼) 이렇게 됐다”고 설명했다.



 재단 입구에서 발걸음을 돌린 박 후보는 김준용 위원의 안내로 인근 ‘전태일 다리’로 이동해 전태일 동상에서 헌화를 하려 했지만 역시 시위대에 의해 가로막혔다. 김준용 위원이 박 후보에게 꽃다발을 대신 받아 동상 앞에 헌화했지만 시위대들은 “(박 후보가) 무슨 자격으로 여길 오느냐”고 고함치며 꽃다발을 발로 걷어찼다.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장소로 이동한 박 후보는 굳은 표정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미래도 찾기 어려운 분들의 문제를 잘 해결하겠다. 일하는 사람들이 행복한 그런 나라를 꼭 만들겠다”면서 재단을 찾은 뒤 약 30분 만에 발걸음을 돌렸다. 박 후보가 떠난 뒤에도 시위대들은 김 위원의 멱살을 잡고 욕설하며 “당신이 제 정신이냐. 노동자를 이렇게 이용하지 말라”고 항의하는 등 소란스러운 상태가 이어졌다.



 새누리당 이상일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박 후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아무리 방해를 하고 장막을 친다 해도 국민대통합 행보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박 후보의 최근 행보가 일방적으로 이뤄져 상대 측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봉하마을 방문 당시에도 노무현 재단 측은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인 통보 수준으로 방문이 이뤄지는 건 예의상 맞지 않다”고 했었다. 이번에도 전태일 유족들은 “너무 일방적인 통행이라서 맞이할 준비가 돼있지 않다”는 입장을 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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