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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미당·황순원 문학상] 자연재해 앞에선 모두 평등하다고 ?

중앙일보 2012.08.29 00:19 종합 27면 지면보기
편혜영의 ‘블랙아웃’은 심리적 재난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현대인은 재난에 지나치게 예민하거나, 재난에 오히려 무덤덤하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불안의 근원은 여러 가지다. 정체불명의 대상일 수도, 미지의 세계일 수 있다. 반복되는 일상도 불안을 야기한다.

본심 후보작 지상 중계 ⑨ 소설 - 편혜영 ‘블랙아웃’



 소설가 편혜영(40)은 이처럼 다양한 불안과 공포의 층위를 두루 훑어 온 작가다. 그로테스크하고 하드고어적인 언어로 불안과 공포를 그려온 작가는 지난해 출간한 소설집 『저녁의 구애』를 거치며 반복되는 일상의 불안에 주목해 왔다.



 “일상은 두 가지 속성이 있어요. 반복적으로 동일하게 영위되는 일상을 거리를 두고 보면 섬뜩하죠. 그런데 그 반복되는 일상을 잃을까 사람들은 두려워하고 불안해요.”



 황순원문학상 본심에 오른 단편소설 ‘블랙아웃’은 또 다른 측면의 불안에 주목한다. 주인공인 조효석은 벙커를 파는 회사인 올세이프의 계약직 애프터서비스맨이다. 올세이프의 눈에 비친 세상은 위험천만이다. 언제라도 핵이 사용될 만큼 정치상황은 위태롭고 환경위기는 극심하며, 자연재해와 질병에 인류는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지난해 동일본 대지진 이후 벙커 구매자가 늘었다는 기사를 읽었어요. 벙커의 주요 목표가 재난 상황에도 일상 생활을 영위토록 해주는 거라고 하더군요. 안전하게 몸을 지키는 벙커가 일상 생활을 유지하는 전제 조건이 된 거죠.”



 올세이프가 파는 건 벙커가 아니다. 두려움이다. 잃을 게 많은 사람에게 ‘벙커는 재난이 닥쳤을 때 삶을 평소처럼 유지하게 해준다’고 강조한다. 고가의 벙커를 사는 사람은 ‘안전하고 안전한’ 사람들이다. 재난은 평등하고 민주적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을 엿 먹이듯 위험도 불평등한 것으로 바꾸는 게 벙커인 셈이다.



 “자연재해 앞에서 평등하다고 생각하면 덜 불안할 텐데 자연재해에 대비할 수 없는 사람에게 불행이 닥친다는 걸 깨닫게 되며 두려워지는 거에요. 계급 차이 때문에 느끼는 불안이죠.”



 ‘나만 소외됐다’는 불안감은 우연히 들른 슈퍼마켓에서 극대화된다. 조효석을 방재청 공무원으로 착각한 매니저가 방재광장의 존재를 귀띔하자 조효석은 모욕감을 느낀다.



 “벙커는 일반적으로 갖기 힘든 물건이에요. 그런데 슈퍼마켓 직원도 방재광장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곤 불행함과 불안을 느껴요. 조효석의 두려움은 재난을 당하는 게 아니라 재난을 피할 방재광장이나 소개지, 벙커가 없어서예요. ”



 ‘재난작가’라는 우스개 별명이 생길 정도로 그의 작품에는 지진 등이 자주 등장한다. “지진은 예측 불가능한 재해에요. 지층이 어긋나고 도시의 형태가 바뀌고 재난이 극대화된 상태죠. 견고하리라고 생각되는 땅이 흔들린다는 점에서 더 은유적이에요.”



 이쯤 되면 편씨의 작품은 불확실성에 대한 탐구라는 생각에 미치게 된다. “불확실성은 우연한 계기로 와요. 작은 사고가 결정적인 틈을 만들죠. 일상 도 마찬가지에요. 똑같은 생활이 반복되다 단 한 번 동일성이 깨지는 순간, 균열이 생겨요. 그 균열이 일상을 바꾸지는 않지만 방황하게 하니까요.”



◆편혜영=1972년 서울 출생.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아오이가든』 『사육장 쪽으로』 『저녁의 구애』. 장편소설 『재와 빨강』 『서쪽 숲에 갔다』. 한국일보문학상(2007), 이효석문학상(2009), 오늘의 젊은예술가상(2010) 동인문학상(2011)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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