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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경술국치일에 고노 담화를 생각한다

중앙일보 2012.08.29 00:03 종합 34면 지면보기
‘고노 담화’는 1993년 일본의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이 종군위안부, 즉 전시 성노예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을 천명한 문서다. 그러나 담화는 발표 직후부터 일부 일본 정치인들에 의해 줄곧 무시당하고 천대받아 왔다. 고노 담화의 기구한 처지는 일본 정계의 퇴행적이고 반인권적인 역사인식을 드러내는 생생한 방증(傍證)이다. 자기들 스스로 조사단을 꾸려 결과를 발표해 놓고는 총리까지 나서서 부인하는 형국이니 피해자 입장에서 어떤 심정이 들겠는가. 사실 고노 담화는 법적 책임이나 배상 얘기가 빠진 반쪽짜리에 불과했다. 그런데 반쪽마저 잘못된 것이라고 우기니 기가 막히는 것이다.



 그제 일본 국회에서도 노다 요시히코 총리와 각료들이 고노 담화 흠집내기에 열을 올렸다. 노다 총리는 “(위안부를) 강제연행한 사실을 문서로는 확인할 수 없었고, 일본 쪽의 증언은 없었다”고 말했다. 마쓰바라 진 공안위원장은 아예 고노 담화 수정 여부를 각료회의에서 논의하자는 주장을 폈다. 선명하게 오버랩되는 장면이 있다. 2007년 아베 신조 당시 총리는 “협의(狹義)의 강제성은 없었다”는 궤변으로 종군위안부 모집 과정의 강제성을 부인했다. 일본 각료회의는 아베의 말을 복창이라도 하듯 ‘정부가 발견한 자료 중에는 군이나 관헌에 의한 (종군위안부) 강제연행을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기술이 없었다’고 결의했다. 그러면서도 그제 노다 총리의 말과 똑같이 ‘고노 담화를 기본적으로 계승(답습)한다’고 표명했다. 아베·노다가 되풀이한 ‘기본적으로’라는 표현에서 담화를 괜히 발표했다는 후회와 몰염치가 읽힌다. “일부 부모가 딸을 팔았던 것으로 본다”(2007년 시모무라 하쿠분 관방부장관), “어려운 시절 매춘은 매우 이익이 남는 장사”(이달 24일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 등 조연급들의 망언조차 하나도 변한 게 없다.



 그렇게 거추장스럽고 불편하다면 차라리 고노 담화를 폐기해 버리는 편이 정직하다. 우리가 기대한 것은 일본 정부·정치인의 건전한 양식과 올바른 역사의식이었다. 최소한 제3자인 미국·캐나다·네덜란드 의회가 종군위안부 결의안을 통과시킨 취지에라도 공감해 주길 바랐다. 피해자들이 언제 담화문을 구걸이라도 했다는 말인가. 더 황당한 것은 자민당 총재 재출마를 노리고 있다는 아베 전 총리다. 그는 고노 담화를 부정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정권을 다시 잡으면 미야자와 담화, 무라야마 담화 등 과거사에 관련된 다른 담화들도 모두 손보겠다고 나섰다. 이런 정치인이 차기 총리를 노리고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 같은 극우성향 인물이 차세대 총리감 1위로 꼽히고 있으니 걱정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오늘은 경술국치일이다. 일본에 의한 대한제국 강제병합 102주년이 되는 날이다. 종군위안부 피해도 따지고 보면 경술국치에서 시작된 비극이었다. 치욕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는 각오를 새삼 다지면서, 일본 정치인들의 진지한 성찰과 반성을 다시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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