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계 10번째 센추리클럽 가입 … 런던올림픽 2만 관중 기립박수

중앙일보 2012.08.28 03:12 2면
런던올림픽에 심판으로 참가했던 김홍래 교사가 부심들과 경기 전 기념촬영을 했다. 이날 김 교사는 센추리클럽에 가입했다. [사진 김홍래 교사]


“선수 못지않게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필드를 뛰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휘슬을 불 때의 짜릿함에 매력을 느낍니다. 2016년 브라질 리우올림픽에서도 심판으로 뛰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하키 국제심판 아산고 김홍래 체육교사



  최근 폐막한 런던올림픽에서 뜨거운 활약을 펼친 국가대표 심판이 있다.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하키 심판을 맡은 김홍래(42·아산고 체육교사)씨다. 런던올림픽에 참가한 국제심판 중 유일한 아산 출신이다. 그는 대회기간 내내 공정하면서도 매끄러운 경기진행으로 하키인들로부터 ‘퍼펙트 심판’이란 찬사를 받았다.



  특히 김 교사는 런던올림픽에서 예선 4경기와 순위결정전 2경기에 심판으로 배정되면서 ‘센추리클럽’에 가입했다. 센추리클럽은 국제경기에서 100회 이상 참가한 심판에게 주어지는 자격이다. 현재 센추리클럽 가입 심판은 전 세계적으로 10여 명에 불과하다. “다른 무대도 아닌 올림픽에서 센추리클럽에 가입하게 돼 영광스럽습니다. 앞으로 지도자와 선수뿐만이 아니라 심판양성에도 힘이 되고 싶습니다.”



 김 교사는 런던올림픽 예선 인도와 독일전이 있던 8월 3일을 잊지 못한다. 경기시작 전 한국인 심판으로는 유일하게 센추리클럽에 가입하며 런던하키스타디움을 가득 채웠던 2만여 관중들에게 기립박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너무 감격스러웠습니다. 한국 하키의 명예를 드높였다는 생각에 자부심을 갖게 됐죠.”



 

베이징대회 메달 좌절 딛고 심판으로 우뚝



그는 아산중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지난 1980년 처음 하키 라켓을 잡았다. 이후 두각을 보이며 주니어 대표와 상비군을 거쳐 시니어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1990년 북경 아시안게임에 출전했지만 아쉽게 매달 획득에는 실패했다. 김 교사는 그때 운동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슬픔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때는 아시안 게임에서 동메달만 따도 군대를 면제 받았어요. 하지만 군대 가게 돼 운 건 아니었어요. 열악한 환경 속에서 동료들과 함께 노력했지만 눈앞에서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이 너무 아쉬워 눈물이 났어요.”



  군대에 갔다 온 그는 1997년 운동을 그만두고 아버지의 권유로 고향 아산으로 왔다. 그 뒤 아산고등학교 체육교사 겸 하키부 코치로 부임해 후배양성에 힘썼다. 남들과 같은 방식의 지도력으로는 뛰어난 선수를 배출할 수 없다는 생각에 코치를 하면서 심판 자격증을 획득했다.



  국내의 큰 경기에서 심판으로 뛰며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 정보를 제공했다. “아이들에게 다른 팀의 전술을 제공해주는 일이 보람돼 시작하게 됐죠. 심판으로 뛰면 경기의 전체적인 흐름을 읽을 수 있거든요. 아이들 실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됐어요.”



 그렇게 심판에 입문해 경력을 쌓았던 김 교사는 2003년에 국제 심판 라이센스를 따고 2007년 국제하키협회(FIH)의 심판등급 중에서도 가장 높은 월드레벨에 올랐다. FIH의 심판등급은 인터내셔널(6.5점), 프로미싱(7점), 그레이드 1(8점), 월드 디벨로프먼트(8.5점), 월드(9점 이상) 레벨 순이다.



아시아서 2명뿐인 ‘월드레벨’ 심판에 올라



런던올림픽 하키 예선전에서 김홍래 교사가 심판을 보는 모습.
아시아에선 김 교사를 포함해 2명만이 월드레벨에 올라 있다. 대회가 끝난 후 심판 매니저가 판정에 대해 여러 가지 평가를 하는데, 월드레벨은 평가 결과가 최상급인 9점 이상을 받는 심판을 뜻한다. 매 경기 판정 시비가 전혀 나오지 않는 면도날 같은 날카로운 판정을 했다는 말이다. 또한 그는 다른 국제심판들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남들보다 훨씬 빨리 월드레벨로 올라섰다. 현재 12명의 월드레벨 남자 심판 가운데 경력이 11번째로 늦다.



  “제가 운이 좋은 것도 있죠. 국제 심판이 되자마자 아시안 게임과 베이징 올림픽, 월드컵 하키 등 굵직한 대회는 모두 뛰었으니까요.”



 국제심판인 탓에 시간상 여유가 없어 하키 코치직에선 물러났지만 아직도 김 교사는 후배 양성에 관심이 많다.



  “유럽의 경우 하키 선수가 넘쳐 납니다. 선수들에게 균등한 기회를 주기 위해 매년 국가대표의 반 이상을 교체 하죠. 그와 반대로 우리나라 국가대표는 30세 이상의 노장선수가 반이나 되요.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또한 김 교사는 런던에서 봤던 유럽 관중의 하키사랑도 부러워했다. “매 경기마다 매진 사례였어요. 선수뿐 아니라 심판인 저 역시도 힘이 나고 흥분되더군요. 앞으로 하키를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그는 끝으로 심판 양성에도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런던올림픽에서 우리나라만 유독 심판판정에 불이익을 많이 받은 이유 중 하나도 인정받는 국제심판이 없기 때문이라고 조언했다. “유능한 심판이 있다면 적어도 억울한 판정은 없을 겁니다. 그만큼 영향력 있는 인물이 있다는 것이니까요. 대한체육회에서 인기 종목만 심판양성에 힘쓰지 말고 비인기 종목의 심판 양성에도 힘써줬으면 좋겠어요.”



  조영민 기자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