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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 우암 → 겸재 ‘사대부 188년의 인연’

중앙일보 2012.08.28 00:33 종합 25면 지면보기
겸재 정선은 퇴계 이황으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퇴우이선생진적첩’ 첫머리에 ‘계상정거도’를 그렸다. 그림 속 서안을 앞에 둔 인물이 퇴계다. 도산서당에 은거하며 ‘회암서절요서’를 쓰던 장면이다. 1000원 지폐 뒷면 도안(왼쪽 작은 사진)으로도 알려진 그림이다. [사진 K옥션]


퇴계(退溪) 이황의 ‘회암서절요서(晦菴書節要序·1558)’, 우암(尤庵) 송시열의 발문, 그리고 1000원 지폐 뒷면 도안으로도 알려진 겸재 정선의 ‘계상정거도(溪上靜居圖·1746)’ 등 4폭의 그림. 이 모든 것이 14면의 서화첩 ‘퇴우이선생진적첩(退尤二先生眞蹟帖, 이하 진적첩)’에 담겨 있다. 188년에 걸쳐 조선 성리학의 두 거성과 화성(畵聖)의 붓끝을 스친 이 서화첩은 1975년 보물 제585호로 지정됐다.

이황·송시열 발문에 정선 그림 실린 서화집 공개
한때 위작 시비 … “진품” 결론 나
추정가 27억~45억 … 11일 경매



 진적첩이 미술품 경매 시장에 나온다. 국가 지정 문화재의 경매는 처음이다. 추정가 27억∼45억원. 구매자가 나타난다면 한국 고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 기록을 세울 수도 있다. 지금까지의 기록은 지난해 3월 18억원에 낙찰된 ‘백자청화운룡문호(白磁靑畵雲龍文壺)’가 갖고 있다.



 1558년 4월, 퇴계 이황은 ‘회암서절요서’를 썼다. 회암은 성리학을 완성한 주자(朱子)의 아호. 『회암서절요』는 퇴계가 방대한 『주자대전(朱子大全)』을 섭렵하고 그 요체만 뽑아서 묶어낸 책이며, ‘회암서절요서’는 그 서문의 초고다. 퇴계는 납작납작, 투박한 특유의 행서로 넉 장짜리 초고를 적었다.



 이 초고는 퇴계의 손자, 그 외손자, 그리고 그 사위 박자진에게로 전해졌다. 박자진은 이걸 들고 수원 무봉산중에 은거하던 우암 송시열에게 갔다. 우암은 1674년과 82년 두 차례에 걸쳐, 미끈한 행서로 “정말 퇴계 글씨가 맞고 보관을 잘했다”는 내용의 발문을 썼다. 노론의 좌장 우암이 맹렬하게 대립하던 남인의 뿌리 퇴계를 칭송한 글을 한 서첩에 남긴 것이다.



 ‘퇴우이선생진적첩’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퇴우는 퇴계와 우암을 이른다. 조선 성리학의 기틀 을 만들고 발전시킨 두 대학자의 행서를 모은 이가 박자진, 겸재 정선의 외조부였다. 서첩은 박자진의 큰 증손자를 거쳐, 겸재의 차남 정만수에게 양도됐다. 일흔 살 겸재는 여기 ‘계상정거도’를 비롯한 네 폭의 그림을 그렸다.



 ‘계상정거’는 물러나 시냇물 흐르는 곳 위에 자리잡고 고요히 산다는 뜻. 이황의 호 ‘퇴계’와 상통한다. 그림은 도산서당에서 ‘회암서절요서’를 쓰는 퇴계의 모습이다. 첩이 만들어지고 전승된 이력을 그림으로 옮긴 것이다. 서화첩은 이렇게 완성됐다.



 진적첩은 여러 사람을 거쳐 1973년 이강호씨 손에 들어왔고, 2년 뒤 보물로 지정됐다. 그 아들인 이영재(82)씨에게로 40년간 전해지다가 이번에 경매를 통해 공개된다. ‘계상정거도’가 세상의 주목을 받은 것은 2007년 신권 1000원 지폐 뒷면 도안으로 쓰이면서다. 앞면엔 퇴계 초상이 있다. 그림은 이듬해 위작 시비로 몸살을 겪었다. 이동천 북경 중앙미술학원 박사가 저서와 공개 강연회를 통해 “정선의 그림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문화재위원회는 형광 X선 분석기를 통한 과학감정을 거쳐 진품이라 결론지었다.



 경매엔 이밖에 백자청화접시 10점, 18세기 전반기의 백자 달항아리(높이 43㎝) 등 고미술품과 근·현대 미술품 등 총 164점(추정가 총액 91억원)이 출품된다. 출품작은 9월 1∼10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K옥션에서 전시된다. 경매는 11일 오후 5시. 02-3479-8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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