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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의 정치학

중앙선데이 2012.08.26 02:21 285호 31면 지면보기
12월 대선을 향해 뛰는 후보자들은 한결같이 인상이 좋다. 부드럽고 편안하고 대체로 가식(假飾)이 없어 보인다. 물론 개인적 판단이지만, 마음에 든다. 인상이 험악하고 보기 싫은 사람이 대통령이 돼서 매일 언론 매체에 나온다고 생각해보라. 스트레스 지수만 높아지고 얼마나 지겹겠는가. 누가 대통령이 되든 최소한 인상에서 풍기는 거부감은 없을 것 같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해맑은 웃음, 민주통합당 손학규 후보의 친근한 미소, 정세균 후보의 넉넉한 웃음. 모두 일품이다. 오랜 정치생활을 하며 많은 유권자들을 마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굳어져서 그럴까. 억지웃음 같은데도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문재인 후보는 웃음이 착해 보이고 김두관 후보는 좀 뚱한 대로 된장 맛이 난다. 안철수 교수는 마냥 천진하다. 이들의 웃음엔 대중을 끄는 힘이 조금 부족해 보이지만 꾸밈도 없으니 그 또한 좋다.

허남진의 세상탐사


웃음이 보기 좋은 우리 후보자들이 선거철뿐 아니라 평소 정치현장에서도 많이 웃어줬음 좋겠다. 살벌함과 증오로 가득 찬 여의도 정치에 웃음이 전파된다면 국민들도 그만큼 즐겁지 않겠는가. 박근혜 후보의 이른바 대통합 행보를 두고 여론이 후한 점수를 매기는 것도 바로 그런 염원이 반영된 것이지 싶다. 사실 박 후보의 일련의 행보는 파격도 아니요, 광폭정치라고 할 수도 없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으로서 전직 대통령들을 찾아 예를 표하는 일종의 의전 절차일 뿐이다. 그걸 생략하는 게 오히려 비정상이요, 지탄거리가 될 수 있다. 그런데도 이 지극히 정상적인 행보에 박수를 치는 건 그만큼 우리의 정치 지형이 왜곡되고 척박해져 있다는 방증이다.

화해·상생의 정치를 기다리는 목마름이 간절한데도 민주당은 아직 그걸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다. 박 후보의 행보에 민주당 측은 “환영한다”면서도 ‘진정성’이니 ‘정치쇼’니 토를 달았다. 마지못해 맞장구를 쳐주는 모습이 왠지 좀스럽게 비친다. 아무렇지 않게 “함께 대통합의 길을 열어가자”고 대범하게 나왔더라면 어땠을까. 민주당 지지층이 돌팔매질을 했을까. 대다수의 중간층은 통 큰 모습을 반겼을 게 틀림없다.

역대 대선의 승패는 중간 지대를 누가 얼마나 끌어들이느냐는 중원 공략에서 판가름 났다. 오늘날 중원에 사는 사람들은 저급한 좁쌀정치에 신물이 난 정치 혐오자들이다. 안철수 교수 스스로도 지적했듯 ‘안철수 현상’이란 바로 그걸 말해주는 것이다. 정치 혐오자들의 마음을 되돌리려면 기존의 정치 행태로는 어림도 없다. 헐뜯고 깎아내리고 배격하는 뺄셈 정치가 아닌, 끌어안고 타협하는 덧셈의 큰 정치를 실천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게 정치쇼라도 상관없다. 오히려 멋있고 제대로 된 정치쇼를 보고 싶어 한다. 민주당으로선 ‘진정성이 있느냐’고 쏘아붙일 게 아니라, 스스로에게 ‘우리는 과연 진정성 있는 통합의 모습을 보여줬는가’라고 자문했어야 옳다.

민주당은 지금 위기다. 대선 경선이 한창 무르익는데도 경선 후보들의 지지율은 지지부진이다. 야권의 원로회의에서조차 링 밖의 인사에게 눈을 돌리는 상황이다. 당 내부에선 안철수 교수가 출마 선언을 하는 순간 당이 와해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팽배해 있다. 그냥 위기가 아니라 절체절명의 위기다. 그 위기는 바로 중원을 포기한 채 ‘내밭갈이’에만 열중하는 근시(近視)정치, 반대·비판 일변도의 뺄셈 정치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트윗공화국의 대통령이 되려는지 트위터의 내 편들이 박수 치고 좋아할 공약과 다짐, 비난만 내놓는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도취돼 있는 사이 비어 있는 중원으로 상대는 통합과 경제민주화라는 웃음 정치를 들고 성큼성큼 무혈 입성하는 중이다. 이대로 가면 민주당엔 희망이 없다.

그러나 12월 대선은 이제 초입이다. 민주당이 지금부터라도 중원을 향한 통합과 덧셈의 새 정치를 선보인다면 상황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네 명의 주자 모두 나름대로 자격도 충분하다. 풍부한 국정경험, 화려한 정치 경력, 인품까지 박근혜 후보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다. 보기 좋은 웃음까지도 그렇다. 그런 웃음에 걸맞은 긍정의 정치로 중원 공략에 나선다면 아직 승산은 있다. 대신 서둘러야 한다. 박근혜가 한발 앞서 시작한 웃음 정치를 따라잡으려면 미적거릴 틈이 없다. 민주당에 이런 주문을 하는 건 웃음 정치를 겨루는 희망의 선거판이 보고 싶고, 그걸 통해 탄생할 통 큰 정치인이 보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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