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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노동·육식 없는 세상 예언 ... ‘종말 시리즈’ 대가

중앙선데이 2012.08.26 02:12 285호 28면 지면보기
중앙포토
현대인은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미래에 대한 걱정을 떨치지 못한다. 지금 누리는 안전하고 안락한 삶이 언젠가는 위기에 봉착할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을 갖는다. 그래서인지 1970년대부터 ‘미래학’이란 새로운 학문이 사회과학의 한 분야로 자리 잡고 있다.미래학의 선조는 '유토피아'의 작가 토머스 무어와'새로운 아틀란티스'>의 저자 프랜시스 베이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 이상론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현대 미래학은 과거와 현재 상황을 각종 데이터와 함께 과학적으로 심층 분석하고 미래를 진단한다. 대부분의 미래학자들이 처음부터 미래학에 천착한 것은 아니고 경제·사회·역사·지리·철학·환경·과학 등의 전문분야 연구를 미래학에 접목시킨 경우가 많다.

박재선의 유대인 이야기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

미래학은 이제 하나의 패션이 됐다. 많은 미래학자의 백가쟁명시대가 열렸다. 미래학자의 인플레 현상이다. 그래도 몇몇 스타 학자는 유명세를 탄다. 제3의 물결 권력이동 등의 화제작을 펴낸 언론인 출신 앨빈 토플러는 미래학의 원로다. 자크 아탈리, 리처드 왓슨, 스테픈 호킹스, 레이 커즈와일, 대니얼 핑크 등도 많이 알려진 미래학자다. 이들 중엔 유대인이 많다. 유대인이 미래학에 밝은 이유는 그들의 교육 배경에서 찾을 수 있다. 유대인 교육의 기본은 지적 호기심과 상상력을 극대화시켜 실용적 창의력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부질없고 허황한 것’으로 치부하고 암기에 의한 지식의 주입만 강요하는 우리 교육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학창시절 열렬한 월남전 반전 운동가
또 한 명의 유대인 미래학자가 각광을 받고 있다. 제러미 리프킨(사진)이다. 1945년 미국 덴버에서 태어난 러시아계 유대인이다. 명석한 두뇌의 리프킨은 펜실베이니아대(U-Pen)의 최고경영자과정인 와튼 스쿨을 마쳤다. 보스턴 소재 텁츠대 법학, 국제관계대학원 플레처 스쿨도 나왔다. 학생 시절엔 열렬한 월남전 반전 운동가였다. 73년엔 미국 독립전쟁의 불씨가 된 ‘보스턴 티파티’ 200주년을 맞아 또 시위를 벌였다. 당시 사건이 일어났던 바닷가에서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야합해 유가를 올리는 독점 석유기업에 항의한 것이다.경제·경영학자인 리프킨은 행동주의 철학자로 분류된다. 그는 77년 수도 워싱턴 인근 베데스타에 경제동향연구재단(FOET)을 설립해 왕성한 저술·강연 활동을 벌이고 있다. 20개국 500여 대학에서 강연했다. 94년부터 모교인 와튼 스쿨의 교수로 재직했다. 또한 유럽연합, 유럽의회, 그리고 유럽 여러 나라 정부 수반의 정책자문역을 맡고 있다. 한창 잘나가는 학자다.

리프킨은 미래의 자연환경 변화에 따른 에너지 문제에 특히 관심이 많다. 총 19권의 저서를 내놓았다. 80~81년에 나온 엔트로피 I, II 권으로 기존 과학이론에 도전하는 논리를 펴 과학계의 반발을 샀다. 몇 권의 ‘종말’ 시리즈물도 있다. 소유의 종말 육식의 종말 노동의 종말 등이다. 육식의 종말에선 육식의 중단에 이어 자연을 회복시키는 생태계 르네상스의 출현을 언급했다. 노동의 종말에선 미래엔 소수의 엘리트를 제외한 인간의 노동은 단계적으로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또 바이오 테크 시대에선 산업시대가 지난 후 유전자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언해 종교계를 부글거리게 했다.

미국식 발전 신화의 종말과 함께 유럽에서 대체에너지 개발과 활용이 활발할 것이라고 전망한 유러피언 드림도 있다. 공감의 시대로 적자생존과 무한경쟁의 종말을 예고하기도 했다. 제3차 산업혁명에선 첨단 통신기술과 재생 에너지가 결합하는 새로운 형태의 산업혁명이 이루어질 것임을 예언했다.
리프킨은 지난 5월 방한해 KAIST에서 강연회를 가졌다. 재생 에너지의 활용과 에너지와 통신의 결합으로 새로운 경제·사회 혁명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체로 그의 저서 제3차 산업혁명 내용과 유사한 취지의 강연이었다.

리프킨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갈린다. 혹자는 그를 미래의 지구적 구조와 경제, 환경관계를 내다보는 선각자라고 극찬한다. 또 인문·사회·자연과학의 경계를 허물고 보다 넓은 시야로 인간 사회의 미래를 조명하는 혜안을 갖고 있다고 치켜세운다. 반면 과학계는 그에 대한 반감이 크다. 과학도가 아닌 경제학자가 지엽적 과학지식을 끄집어내 자신의 논리에 억지로 꿰어 맞추는 사이비 선동가로 폄하한다. 잘나가는 인물에 대한 호불호는 항상 있지만 그래도 리프킨이 색다른 소리를 내는 석학이란 점엔 다수가 동의한다.

5월 방한 때 KAIST서 경제사회혁명 강연
다른 관점에서 미래학자 열풍을 들여다보자. 우리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선 이들 스타 미래학자를 극진히 모신다. 세미나와 강연회를 조직하고 이들을 초청해 한 말씀 듣는다. 언론도 이들의 발언을 비중 있게 다룬다. 고액의 강연 사례도 나간다. 그래선지 몇몇 미래학자는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했다.
이들 미래학자의 주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긴 어렵다. 이들의 논리를 검증할 수 있는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러는 참고할 것도 있다. 그저 과거에 듣지 못하던 색다른 논리 정도로만 치부할 일도 아니다. 다만 이들의 주장은 대체로 세계 전체를 대상으로 한 일반론이 주류를 이루므로 우리 실정에 부합하지 않는 것도 없지 않다. 학문의 세계에서 시대별 조류는 존중되어야 하지만 진지함이 결여된 흥행성은 배제됨이 바람직하다. 명성 있고 베스트셀러 저술이 있는 세계적 석학을 분별없이 모셔와 그들의 훈수를 듣는 것도 이제는 선별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아니면 우리도 장기적으로 그들에 필적할 수준의 인재를 길러내는 노력을 병행하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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