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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의 인생’ 열어줄 또 하나의 금메달 딸까

중앙선데이 2012.08.26 01:20 285호 19면 지면보기
김연아 선수가 24일 서울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올댓스케이트’ 아이스쇼에서 오프닝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그의 다음 목표는 IOC 선수위원이다. [뉴시스]
‘포커페이스’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이달 13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아빠 미소’를 지은 순간이 있다. 김연아 선수의 이름이 나왔을 때다. 런던 올림픽 폐막 다음 날 IOC 본부 힐튼 파크레인 호텔 집무실에서 기자와 만난 로게 위원장은 특유의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한·일전 축구 경기에서 독도 세리머니로 문제가 된 박종우 선수의 메달 박탈 가능성에 대한 얘기가 나왔을 땐 언성을 높였다. 그러나 ‘유나 킴(김 선수의 영어식 명칭)’ 이름이 나오자 표정이 일순 확 밝아졌다. 김 선수의 IOC 선수위원 진출 가능성을 묻자 “실력도 있고 똑똑한 유나에게 상당한 특권이 있는 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중립을 견지해야 하는 IOC 위원장으로선 예외적인 지지 발언이다. 하지만 기뻐하기엔 이르다. 로게 위원장의 ‘아빠 미소’가 김 선수의 당선 보증수표는 아니기 때문이다. 올림픽계에선 전지전능에 가까운 IOC 위원장이라고 해도 선출직 선수위원 당락엔 관여하지 못한다. 선출직 IOC 선수위원은 전적으로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의 손으로 뽑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로게 위원장도 오히려 자유롭게 김 선수에 대한 호의를 마음껏 표현했을 터다.
 

김연아·진종오의 새로운 도전, IOC 선수위원

문대성 위원, 2016년까지 임기
‘IOC 선수위원 김연아’가 성사되기까진 상황이 꽤 복잡하다. 출마부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자격이 까다롭다. 후보는 ▶당해 연도 혹은 그 직전 올림픽에 출전 경력이 있어야 하며 ▶국가올림픽위원회(대한체육회)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 ▶각 국가에서 한 명 이상은 나올 수 없다는 관례도 지켜야 한다. 현재 한국 몫 선수위원으론 문대성(무소속) 국회의원이 이미 활동 중이다. 논문 표절 문제가 있으나 위원직을 유지하고 있다.논문 표절 사태의 파고를 넘는다고 가정할 때 2008년 뽑힌 문 위원의 임기는 2016년 브라질 리우 올림픽까지다. 그렇다고 김연아 선수가 바로 출마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여름올림픽에선 여름종목 선수들만 출마할 수 있다는 규정이 발목을 잡는다.

이래저래 김 선수는 2016년 이후 올림픽에서의 출마를 노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그러려면 2014년 소치 올림픽 출전이 필수다. 그가 지난달 태릉선수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소치 올림픽까지 현역 선수로 뛰겠다는 뜻을 밝힌 배경이 여기에 있다. 밴쿠버 겨울올림픽 이후 스포츠계에선 “김연아 선수가 은퇴의 뜻을 굳혔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왔다. 그가 마음을 다잡고 2014년 출전으로 마음을 돌린 것은 IOC 선수위원을 향한 집념의 반영이다. 김 선수 본인도 기자회견에서 “소치 올림픽에서의 현역 은퇴는 IOC 선수위원을 향해 새로운 도전을 하겠다는 의미”라며 “평창올림픽 유치활동을 하면서 IOC 선수위원에 대한 관심과 꿈을 키웠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2014년 소치 올림픽 출전 후 홈그라운드에서 열릴 2018년 평창올림픽을 통해 선수위원으로 선출되는 게 김 선수의 베스트 시나리오다.

김연아 선수(맨 오른쪽)가 지난해 7월 남아공 더반 IOC 총회에서 평창 올림픽 유치를 위한 프레젠테이션을 마친 뒤 자크 로게 IOC 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김 선수는 유치위원회 홍보대사를 하면서 IOC 선수위원의 꿈을 키웠다. [중앙포토]
하지만 의지만으로 후보가 되기는 어렵다. 국내에도 쟁쟁한 경쟁자들이 포진해 있다. 런던 올림픽 사격 2관왕 진종오 선수도 최근 한 인터뷰에서 IOC 선수위원의 뜻을 밝혔다. 그는 “선수위원이 돼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한다”며 “하고 싶다고 되는 건 아니다. 영어 실력도 더 키워야 하고 선수위원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도 더 공부해야 한다”고 조심스러워했다. 그러면서도 “만약 된다면 선수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현장의 목소리를 IOC에 전달하며 선수·연맹·지도자 간 갈등을 해결하는 선수위원이 되고 싶다”고 상당히 구체적인 포부를 밝혔다.
진 선수의 경우 2016년 여름올림픽 선수위원 선거 출마자격을 이미 갖추고 있는 데다 2016년 올림픽 출전 가능성도 밝다. 진 선수가 2016년 선수위원 선거 출마를 희망한다면 김 선수의 출마 방정식은 복잡해진다. 대한체육회를 포함한 스포츠계의 중재가 필요한 부분이다. IOC 선수위원에 출마할 수 있는 선수는 종목을 불문하고 각 국가별 한 명뿐이며, 대한체육회의 추천을 받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로게 위원장 역시 13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김 선수의 IOC 선수위원 출마에 대해 “선수위원 후보로 나설지 여부는 선수 본인과 대한체육회가 결정할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입국, 호텔 국기 게양 ‘국빈급 대우’
IOC 위원의 정원은 최대 115명이다. 이 중 개인 자격 위원이 70명, 선수위원 15명, 국가올림픽위원회(NOC) 대표 15명, 국제연맹(IF) 대표가 15명이다. 선수위원의 경우 개인 자격 위원(1999년 이후 선출된 경우 정년 70세, 99년 이전 선출은 80세)보다 임기만 8년으로 짧을 뿐 동등한 국빈급 혜택을 누린다. ▶거의 모든 국가에 비자 없이 입국이 가능하며 ▶투숙 호텔엔 해당 국기가 게양되고 ▶올림픽 기간엔 통역과 차량이 무상 제공되며 ▶올림픽 개최 도시 선정에서 투표권을 가진다. 무엇보다 국제스포츠계를 대표하는 이너서클의 일원으로 활동하는 영광을 누린다.
선수위원은 IOC 내에서 선수들의 권익을 대변하기 위해 81년 만들어진 제도다. IOC 규정에 따르면 15명 중 선출직은 12명이다. 8명은 여름종목, 4명이 겨울종목에서 뽑힌다. 나머지 3명은 IOC 위원장이 대륙·성·종목별 형평성을 따져 지명하는 IOC 선수분과위원회 위원 중 선정된다. 선수위원 자격으론 ▶영어 또는 IOC 공식 언어인 불어에 능통할 것 ▶선거가 치러지는 대회 폐막식 기준으로 18세 이상 ▶도핑 규정을 위반한 적이 없을 것 등이다.

선수위원 선거는 올림픽 대회 막바지에 치러지고, 당선된 위원들은 폐막식에서 정식 소개되는 영광을 누린다. 투표권자인 동료 선수들에게 선물을 돌리거나 과도한 홍보행위를 할 경우 당선이 된다고 해도 무효처리된다. 따라서 평소의 인지도와 친분이 중요하다. 거미줄 같은 선거운동 제약 규정을 피해 가면서 인지도를 얻는 방법도 여럿이다. 2006년 토리노 겨울올림픽에서 선수위원 선거에 출마했다 고배를 마셨던 강광배 현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FIBT) 부회장은 통화에서 “함께 출마했던 어떤 일본 선수는 경기 기간 중 거의 매일 선수촌 식당 입구에 서서 말없이 고개 숙여 꾸벅 인사를 했다. 아무도 경쟁자로 생각하지 않았던 후보였는데, 20여 명의 후보 가운데서 3위로 아깝게 떨어지는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고 회고했다.

강 부회장의 코치를 받은 문대성 위원은 베이징 올림픽 때 선거 전략을 업그레이드했다. 선수촌 입구에서 태권도 도복 차림으로 뒤로차기 등의 기술을 선보이며 이목을 끌었다. IOC에서 과도한 선거운동이라며 제재가 들어오긴 했으나 압도적 표 차로 당선됐다. 대신 그 이후 IOC의 선거운동 단속은 강화됐다는 후문이다.
이번 런던 올림픽 직전 열린 124차 IOC 총회는 선수위원들에게도 의미심장했다. 8년 임기를 마친 나미비아 육상선수 출신 프랭크 프레데릭스 선수위원이 개인 자격 정식 IOC 위원에 선출됐기 때문이다. 현재 45세인 프레데릭스 위원은 70세까지 임기를 보장받는다. 선수위원 임기 만료 후 정식 IOC 위원으로 진출한 첫 케이스로 알려졌다. 선수위원 자리가 정식 IOC 위원으로 갈 수 있는 도약대가 될 수 있음을 처음으로 보여 준 셈이다.

신임 IOC 위원들은 IOC 총회에서 취임선서를 하고 IOC 위원장은 올림픽의 상징 오륜이 새겨진 금메달을 신임 위원들의 목에 걸어 준다. 선수위원들에겐 제2의 인생을 열어 주는 또 다른 금메달인 셈이다. 이 또 하나의 금메달을 목에 걸기 위한 물밑 레이스는 이제 막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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