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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 진영의 전직 대통령 묘소 참배 ,경제민주화로 이념 스펙트럼 확장

중앙선데이 2012.08.26 00:42 285호 6면 지면보기
2004년 8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을 찾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박 대표가 “아버지 시절에 여러 가지로 피해를 보고 고생하신 데 대해 딸로서 사과 말씀 드린다”고 한 데 대해 이후『김대중 자서전』에서 “나는 그 말이 참으로 고마웠다”고 적었다. [중앙포토]
# 1992년 대선을 2개월여 앞둔 10월 14일. 김대중(DJ) 당시 민주당 대표가 국회 대표연설에 나섰다. 그는 ‘뉴 DJ 플랜’에 대해 “모든 국민이 민주적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더불어 잘사는 사회 속에서 대화합을 이루는 정치”라고 주장했다.2012년 대선을 110여 일 앞둔 8월 20일.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가 전당대회에서 후보 수락연설을 했다. 그는 “이념과 계층, 지역과 세대,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모두가 함께 가는 국민 대통합의 길을 가겠다”고 말했다.

# 97년 대선을 2주 앞둔 12월 5일.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는 경북 구미의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찾았다. 박 전 대통령의 아들 지만씨를 만나 “박 전 대통령과 나는 생각의 차이는 있었지만 누구보다 서로를 잘 이해했다”며 “동서(東西) 화합을 이루고 싶다”고 했다.2012년 8월 21일. 박근혜 후보는 경남 김해 봉하마을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다.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를 만나 “제 꿈은 어떤 지역에 살든 모든 국민이 꿈을 이루고 행복하게 사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적 껴안은 오바마·링컨처럼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가 국민 대통합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얼핏 보면 DJ와 비슷한 길이다.박 후보가 말하는 ‘대통합’은 DJ가 말한 ‘대화합’과 같은 맥락이다. 상대 진영의 전직 대통령 묘역이나 생가를 찾아 화합메시지를 보내는 방식도 비슷하다. 2007년과 2002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였던 이명박과 이회창은 후보로 선출된 뒤 전직 대통령을 찾지 않았다. 현충탑에만 참배했을 뿐이다.외연 확대를 위해 이념 스펙트럼을 확장하는 전략도 유사하다. DJ는 92년 대선 때 시장경제·개방경제를 옹호하는 ‘뉴 DJ 플랜’을 내걸었다. 이런 뉴 DJ의 ‘우클릭’에 대해 진보진영에선 ‘변절’로 비판했다. “민주 대 반(反)민주 구도를 포기해 6공 심판이란 선거 쟁점을 없애 버렸다”는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뉴 DJ 플랜은 중도층을 공략하는 ‘준비된 대통령’의 이미지를 형성시켜 97년 대선 승리의 발판이 됐다.

보수 이미지의 박 후보는 경제민주화로 ‘좌클릭’ 중이다. 2009년 5월 미국 스탠퍼드대 연설에서 ‘원칙이 바로 선 자본주의’를 언급한 게 시작이다. 이후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주장했다. 대북 문제에선 노무현 정부의 10·4 선언을 계승하고 북한과 대화의지를 밝히는 등 유연해졌다.전향적인 인재 영입도 닮은꼴이다. DJ는 92년 대선 때 재야 인사 위주로 인재를 영입했다가 패배했다. 97년 대선 땐 “젊고 참신한 전문직 인사와 여성을 우대해 영입하라”고 지시했다. 천정배·추미애 등 200여 명이 수혈됐다. 특보단은 단장 문희상 의원을 제외하곤 모두 40대 의원으로 꾸렸다. 보수와 중도, 호남·영남·중부권으로 지역이 안배된 교수들을 만나며 ‘DJP 연합’에 대한 논리를 만들었다.

박 후보 측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인사를 포함해 중도 개혁인사를 찾고 있다. 박 후보는 23일 “사람을 발굴하는 거는 저의 일과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그래서 항상 찾고 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조원진 전략기획본부장은 “최장집·조국 교수 같은 인물이 대상이다”고 귀띔했다. 당에선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DJ 처조카 이영작 전 한양대 석좌교수를 포함한 동교동계 인사, 조순형 전 의원 등의 영입설이 나온다.

“당분간 대담한 행보 이어질 듯”
물론 ‘박 후보의 DJ 따라잡기’라곤 말하기 힘들다. 무엇보다 DJ 성공의 핵심은 ‘DJP 연합’이다. DJ는 호남 지역과 진보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충청과 보수에 공동정부의 지분을 약속하고 손을 잡았다. 박 후보는 정치공학적 접근에 대해 거부감을 보여 왔다. 2007년 대선 경선 때 “우호세력을 확보하기 위해 자리나 지분을 약속하자”는 의견이 나오면 박 후보는 “사람 빚을 만드는 건 곤란하다”며 반대했다. 당시 캠프에선 이를 두고 ‘박근혜의 액면정치’라고 불렀다.5년이 흐른 지금 박 후보는 여전히 ‘지지율 50%의 벽’에 갇혀 있다. ▶수도권 ▶20~40대 ▶중도층에선 아직도 결집력이 약하다. 박근혜 캠프에선 “어떤 식으로든 중도층과 민주화세력을 끌어안아야 한다”며 ‘100% 대한민국’ ‘박근혜가 바뀌네’ ‘박근혜가 바꾸네’ 등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캠프는 박 후보에게 5·16 등 과거사와 정수장학회 등의 문제에서 ‘대담한 행보’를 건의하고 있다. 캠프 정치발전위원이던 중앙대 이상돈 교수가 건의한 인혁당 사건 희생자 유족과의 만남도 검토 중이다. 다음 달 말인 추석을 전후해선 과감한 정치 개혁 구상도 나올 예정이다. 비례대표 공천 개혁, 기초단체장의 정당 공천 폐지, 권력형 비리 근절, 4년 중임제 개헌 등이 대상이라고 한다.

박 후보 측 함승희 전 의원은 24일 “DJ에게 배울 게 있다면 배워야 한다”며 “버락 오바마가 힐러리 클린턴을, 또 링컨이 자신에게 맞선 정적을 국무장관으로 임명하는 식의 행보가 있어야 ‘100% 대한민국’ 구호가 힘을 발휘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폐쇄적이었던 이회창 전 후보의 행보와 반대로만 가면 된다”고 덧붙였다.경희사이버대 안병진(미국학)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진보 후보는 경제 문제에 취약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DJ는 준비된 대통령이란 구호로 이를 극복하고 JP로 외연을 확대했다”고 말했다. 이어 “박 후보는 정확하게 반대 방식으로 가고 있다”며 “진정성 여부를 떠나 본인의 협소한 지지기반을 넘어야 중도층을 흡수할 수 있다는 점은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또 “그런 만큼 당분간 깜짝 놀랄 대담한 행보가 이어질 것 같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명지대 김형준(정치학) 교수는 “중도층을 잡기 위해 경제민주화,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는데 보수대연합도 못하는 상황에서 경제민주화를 할 수 있겠느냐는 불신을 만들고 있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5·16과 유신에 대한 입장 변화가 없는데 대통합을 하겠다면 결국 이벤트로 보이지 않겠느냐”며 “외연을 진심으로 넓히고 싶다면 자신만의 특화상품을 내세워 중도층을 끌어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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